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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후손 70% '삶 어렵다'…8평 쪽방촌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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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75.9% 비경제 활동인구

후손 70% 극빈·차상위계층

광복투사 상당수 '무국적자'…호적 못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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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 거주 중인 독립유공자 후손(3대손까지) 중 74.2%는 월 소득 200만원에 못미치는 등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윤경 기자]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가난하다는 말이 있듯, 독립유공자 후손 상당수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국을 위해 목숨과 재산을 바친 댓가는 가난의 대물림이다.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헌신했지만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 거주 중인 독립유공자 3대까지의 후손은 약 1만7,000명이다. 그중 74.2%는 월 소득이 200만원에 못 미친다.


지난해 국가보훈처가 조사한 ‘2018 국가보훈대상자 생활실태조사’를 살펴보면 2018년 10월 기준 독립유공자 75.9%가 비경제 활동인구에 속했으며, 66%는 소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6개월 이상 투병·투약하는 경우는 72.1%로 조사돼 고령에 접어든 만큼 경제활동이 어렵고 노환에 시달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2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독립운동 후손의 70%는 극빈층이거나 차상위계층”이라며 “그분들에 대한 처우가 너무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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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통치 당시 유공자 상당수는 호적에 등재하기를 거부해 '무국적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사진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76) 씨./사진=연합뉴스


유관순 열사의 조카(막내동생의 아들) 유장부 씨도 예외는 아니다. 유 씨는 단열과 방음이 잘 안 되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지내며 녹록지 못한 삶을 보내고 있다.


수입이 넉넉하지 않아 집수리도 하지 못한 채 지냈다. 현재 그는 보훈청에서 지급되는 수당과 광복회 건물 관리인으로 근무하며 발생하는 월 80~90만원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다.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인 이우석 선생은 1994년 8평짜리 단칸방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항일운동을 위해 압록강을 건넜다. 이후 무장독립운동단체 북로군정서에서 분대장으로 활동하며 청산리 전투에도 참전했다. 광복 이후 1947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궁핍한 삶에 찌들어 살았다. 서울 관악구 철거민촌에 있는 무허가 쪽방에서 지내며 행상과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김정숙 독립운동가는 20대부터 언니인 김효숙과 함께 적극적으로 항일활동을 벌여왔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임시정부 교통부 및 법무부 총무과장을 역임하는 등 나라를 위해 힘써왔다.


그러나 김정숙과 그의 자녀는 광복 이후 생활고에 시달려야만 했다. 1963년까지만 해도 독립유공자에 대한 개념이 없어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정부 측의 연금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본이 식민통치를 위해 도입한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문제는 수많은 광복투사가 일제식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는데, 광복 후 정부에서 호적제를 정리해주지 않자 독립운동가 상당수가 ‘무국적자’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단재 선생의 부인 박자혜 여사는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고, 아들 신수범 선생은 호적에 오르지 못해 사생아 신세가 됐다. 사생아 취급을 받으며 비참한 생활을 하던 단재 선생의 아들은 1991년 작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경 기자 ykk022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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