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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당·정·청, 기업 오라가라…“소통은 좋지만 효과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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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위기 극복엔 100% 동감”

방침 하달 일방통행 회의 우려

“소재 지원 법안 신속 처리를”

중앙일보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위한 2차 민관정 협의회가 14일 국회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단체사진 촬영 후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손경식 경총 회장, 김영주 무역협회 회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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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본 사태’ 아니었으면 이렇게 청와대와 자주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소통하는 건 좋지만 해외에서 비즈니스하는 기업이 이런 자리에 자주 나가는 건 부담스럽죠.”

14일 한 10대 그룹 임원은 최근 부쩍 잦아진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기업인 호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기업인들을 불러 일본 수출규제 대책 회의를 공개적으로 소집하면서 기업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30대 기업 총수가 긴급 간담회를 연 이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정부 내 유관부처가 여는 각종 간담회에 기업 임원들을 지속적으로 호출하고 있어서다.

13일에는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양정철 원장이 4대 그룹(삼성전자·현대자동차·LG·SK) 산하 경제경영연구소 임원들을 국회로 불러 의견을 들었다. 같은 날 박영선 중기벤처부 장관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목표로 대기업(삼성전자·현대자동차·LG디스플레이·SK하이닉스)과 중소기업 10개사 임원들을 모아 놓고 간담회를 열었다. 14일엔 국회에서 일본 수출규제 대책 민관정 2차 정책협의회가 열렸다.

재계는 당·정·청 주도의 이 같은 호출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14일 “정부와 민간이 한마음으로 이번 위기를 극복하자는 데는 100% 동감한다”면서도 “기업과 잘 안 만나던 정부가 이번 사태 이후 자주 공개회의에 부르는 것 같아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전례 없는 경제전쟁인 만큼 정부와 소통이 필요하지만 보여주기식 자리가 많은 것 같아 (회의의) 효과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고위 임원들이 나가는 회의보다도 실무진이 정부와 소통을 지속하고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게 효과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2017년 7월 정부 출범 후 문재인 대통령이 주요 그룹 총수와 만난 이후 한동안 재계와 거리를 뒀다. 올해 초 문 대통령이 5대 기업 총수를 청와대에 초청하면서 소통이 재개된 모양새였다.

정부 주도의 대책회의가 정부 방침을 기업에 하달하는 자리가 될 우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5대 그룹 임원은 “회의에 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우리 입장을 얘기하지 않는다”며 “정부 입장과 주문을 듣는 자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영선 중기벤처부 장관은 13일 “연말까지 불화수소 국산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그동안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사줬더라면 일본 의존도가 낮았을 것이라며 대기업 역할을 강조해 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산 소재·부품을 국산으로 대체하겠다는 게 정책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며 “국내 기업들이 국제 시장에서 비교우위를 가지는 제품을 생산하도록 정책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달 “(국산 불화수소의)품질이 문제”라며 국산화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업들은 위기 극복에 필요한 법안 처리 등 정치권의 구체적인 조치를 더 기다리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14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다음 달 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를 앞두고 기업들은 초조하다”며 “(벤처 활성화 법안을 비롯해)일본 수출규제에 적기에 대응하기 위해 부품 소재 관련 법안 처리에 힘써 달라”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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