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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우’르헨티나 접고 ‘좌’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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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의 MB’ 현 대통령, 대선 예비선거서 좌파 후보에 참패

친시장 정책에도 실업률 상승…작년 IMF 구제금융 ‘치명타’

긴축재정 후 민심 ‘연임 불가’…10월 본선서 역전 어려울 듯

“굴욕적인 참패”(파이낸셜타임스), “예상 못한 완패”(블룸버그)

지난 11일(현지시간) 실시된 아르헨티나 대선 예비선거(PASO)에서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직 대통령이 약 15%포인트 격차로 2위로 뒤처진 결과에 대한 외신의 평가다.

1·2위 싸움이 팽팽할 것이라던 예측을 깨고 ‘중도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47%의 지지로 32%에 그친 마크리 대통령을 제친 것이다. 이 같은 예비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증시와 페소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경제·금융전문 매체들은 아르헨티나 증시 등에 닥친 충격파를 속보로 전하면서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의 귀환을 우려한 시장에 패닉이 왔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작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이 이 같은 선택을 한 배경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당연히 미국 유학파에 기업 CEO 출신 ‘시장주의자’ 마크리 대통령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 특히 2015년 대선에서 12년 만에 좌파 부부 대통령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마크리의 연임에 거는 기대가 컸다. 예비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을 보이면서 쉽게 예측하기 힘든 결과가 예상됐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마크리 대통령의 완패였다.

좌파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것이 예상 밖이었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대혼돈에 빠져든 것이다. 더구나 1위를 차지한 페르난데스 후보와 러닝메이트를 이룬 부통령 후보는 마크리 취임 직전인 2007~2015년 연임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이었다. 아직 예비선거에 불과한 선거 결과를 두고 ‘좌파의 귀환’으로 부르는 이유다. 수차례 금융위기와 국가재정 파탄 상태를 겪은 아르헨티나 국민들로서는 정권교체로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마크리 심판’ 카드를 집어든 것이다.

물론 두 달여 뒤인 10월27일에 있을 대선 본선에서 역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정치·선거전문가들은 확률을 낮게 본다. 나머지 중도·우파 후보들의 예비선거 지지율을 모두 합하면 약 13%인데 마크리 대통령이 이를 다 가져가도 결과를 뒤집기는 힘들다. 아르헨티나는 대선 본선에서 1위 후보가 45% 이상을 득표하거나, 2위 후보와 10%포인트 이상 격차(40% 이상 득표 시)가 나는 경우 결선투표를 치르지 않고 1위를 당선자로 확정한다. 이번 예비선거 결과가 이 경우다.

아르헨티나 일간 라나시온은 “예비선거에서의 저조한 득표로 정치적 위기에 놓인 마크리 대통령이 증시·환율시장 급락에 따른 경제적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숙제까지 안게 됐다”며 본선에서 역전할 가능성을 낮게 봤다.

자동차회사 CEO를 지낸 마크리대통령은 200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에 당선된 후 대중교통 체계 개혁과 시청 계약직 공무원 2400여명 해고 등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에선 ‘아르헨티나의 이명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2015년 대통령 당선 이후 외자유치 활성화, 규제 폐지 등을 앞세우며 친시장 노선을 걸었지만, 공공요금 폭등 등 인플레이션과 대량 정리해고에 따른 실업률 상승 등으로 특히 서민들의 생활여건이 악화됐다. 치명타가 된 것은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에 56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이었다. 그 조건으로 IMF에 재정적자 폭 절반 축소를 약속하면서 공공요금 인상, 복지 지출·보조금 삭감 등 긴축재정에 들어갔고 민심은 들끓었다. ‘연임 불가’ 여론이 우세해진 것이 예비선거 결과다.

10월 대선에서 이대로 마크리의 패배가 확정될 경우, 앞서 남미를 휩쓸었던 ‘핑크 타이드(온건 사회주의 물결)’ 퇴조의 신호탄을 쏜 인물이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우파 바람’을 일으키며 지난해 집권에 성공한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칠레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과 정부에까지 연쇄작용을 일으킬지도 주목된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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