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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왜 모계사회를 이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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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암컷이 임신∼양육 도맡아…암컷 연대와 지식전파가 생존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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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와 함께 두뇌가 크고 사회생활을 하는 고래는 대표적으로 모계사회를 이루는 동물이다. 암컷 중심으로 무리가 움직이고, 자식에게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전파한다. 심지어 딸만 우대하는 ‘성차별’이 나타나기도 한다. 고래는 왜 암컷이 사회의 중심에 서게 됐을까.

루크 렌델 영국 세인트 앤드루스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영국 왕립학회 철학회보 비(B)’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고래의 행동생태학에 관한 연구결과를 종합해 이 문제를 검토했다. 연구자들은 모계사회의 기원을 육지에서 바다로 간 고래의 조상에서 찾았다.

4900만∼4000만년 전 바다로 간 육지 포유류는 전혀 다른 세계에 적응해야 했다. 딱딱한 땅 위에 살다 3차원 공간으로 갔다. 바다에서는 이동이 훨씬 쉽고, 먹이 자원을 빼앗기지 않으려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먹이가 풍부한 데다, 바다에는 먹이를 숨기거나 저장할 곳도, 방법도 없다. 연구자들은 “큰돌고래를 32년 동안 지켜보아도 남의 먹이를 훔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는 한 연구자의 관찰 결과를 소개했다.

그러나 바다환경은 더운피 동물인 고래에게 체온 유지라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14종의 수염고래는 몸집을 불려 여름 동안은 플랑크톤이 번성하는 온대와 극지방 바다에서 다량의 먹이를 섭취해 지방으로 비축하고, 나머지 6개월은 사실상 단식하는 방식으로 적응했다. 이빨고래 76종은 초음파를 내쏘아 먹이의 위치를 파악하는 ‘반향정위’ 방식으로 다양한 먹이를 효율적으로 사냥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문제는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기르는 일이다. 연구자들은 “다른 모든 포유류처럼 고래도 암컷이 임신, 수유, 젖떼기, 양육 등 번식에서 핵심적 구실을 한다”며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어떤 고래 수컷도 교미를 하면 그걸로 끝이지 양육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일부다처 또는 다부다처의 생식 방법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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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가 바다에서 체온을 잃지 않으려면 빨리 자라 단열 기능이 있는 지방층을 쌓아야 한다. 어미는 새끼의 빠른 성장을 위해 지방이 풍부한 모유를 다량 분비한다. 몸길이가 30m인 대왕고래가 새끼에게 먹이는 모유의 양은 매일 220㎏에 이른다. 어미에겐 엄청난 에너지 부담이다.

어미에 바짝 들러붙어 헤엄치는 새끼는 물결을 거스르는 일종의 저항으로 작용한다. 몇 달 자란 새끼는 안전과 수유, 쉬운 유영을 위해 어미의 배와 꼬리 사이에서 헤엄치는 ‘유아 자세’를 취한다. 당연히 어미는 헤엄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새끼는 생후 4개월 때부터 젖 뗄 때까지 기간의 39%를 이런 자세로 지낸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수유 기간에 어미는 평소보다 먹이를 40% 더 먹어야 한다. 그러나 새끼 때문에 큰돌고래와 흰고래는 잠수시간을 줄인다. 깊이 잠수해 오징어 등을 사냥하는 향고래는 보모가 새끼를 대신 봐준다.

젖을 뗀 새끼 고래를 돌보는 일도 오로지 어미의 몫이다. 수염고래 새끼는 태어난 첫해 어미를 따라 열대바다에서 극지방 먹이터까지 장거리 이동을 하는데, 어미가 가르쳐 준 경로를 익혀 되풀이한다. ‘전통 지식’을 전수하는 셈이다. 이동지식뿐 아니라 새로운 사냥지식도 어미를 통해 전수된다. 혹등고래가 바다 표면에 꼬리를 내리쳐 물고기를 사냥하는 신기술은 모계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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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새끼를 기르는 힘겨운 과정에서 책임을 온전히 떠맡는 어미와 새끼 사이의 유대는 고래 사회의 주춧돌”이라며 “엄혹한 환경에서 암컷끼리의 혈연과 연대가 협동 사냥과 공동 방어, 정보 공유 등을 통해 무리의 생존능력을 높여준다”고 밝혔다.

암컷이 지배하는 사회는 대형 이빨고래 종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향고래 수컷은 10대 초반 무리를 떠나고 다양한 모계의 암컷끼리 수십 년 유지되는 안정된 중층 사회구조를 이뤄 공동육아 등을 해 나간다. 범고래도 모계 혈연관계가 사회를 지탱한다. 연어를 잡아먹는 범고래 집단에서는 먹이가 부족할 때 늙은 암컷의 생태 지식이 모계 집단의 생존을 좌우한다. 범고래 등 일부 고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포유류에서 유일하게 아직 생식능력이 있는 암컷이 폐경 한다. 나이 든 암컷은 생식을 젊은 암컷에게 넘기고 자신은 돌봄에 치중함으로써 무리에 기여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관련 기사: 사람과 범고래는 왜 중년에 폐경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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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이빨고래가 아닌 큰돌고래에서도 암컷이 지배하는 사회구조의 모습이 발견된다. 큰돌고래는 수컷이 작은 동맹을 이뤄 떠나고 암컷이 새끼들과 무리를 이룬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샤크만 큰돌고래에서 어미가 새끼 가운데 암컷과 유독 강한 유대를 맺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돌고래 어미는 바로 옆에서 헤엄치는 새끼 돌고래를 배려해 자신의 잠수시간을 줄이는데, 그런 배려는 새끼가 암컷일 때만 나타났다. 또 사냥기술을 전수할 때도 아들보다 딸에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이 집단에서 수컷보다 암컷 새끼가 나중에 어미의 사회 네트워크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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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고래 암컷의 사회적 역할을 비교 분석하는 것은 사람이 포함된 영장류 사회에서 암컷의 사회적 역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예컨대 현대 인간사회에서 여성이 왜 지도적 위치에 과소 대표되고 있는지, 또 그 해결책은 뭔지를 생각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endell L, Cantor M, Gero S, Whitehead H, Mann J. 2019 Causes and consequences of female centrality in cetacean societies. Phil. Trans. R. Soc. B 374: 20180066. http://dx.doi.org/10.1098/rstb.2018.006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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