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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택의 세상보기] 현실 바로보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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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제·탈원전·남북경협

취지 좋지만 이념 치우친 정책에

수개월째 한국경제 경고등 울려

환상 깨고 냉철한 판단 집중해야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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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4주년을 맞았다. 일제 36년의 식민 지배를 거치고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터전 위에서 한국은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뤘다. 세계은행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200여개국 중 제12위의 경제가 됐는데 우리 앞에는 주요7개국(G7), 거대한 인구와 땅덩어리를 가진 브릭스(BRICs) 4개국밖에 없다.

이 대견한 업적을 이룬 한국 경제가 최근 흔들리고 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수출이 지난해 말 이래 8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고 경제의 온도계인 주가지수는 2017년 2,468에서 지난해 2,041로, 최근에는 1,900대로 내려갔다. 길을 가다 문 닫은 식당을 제법 볼 수 있는데 외식업중앙회의 조사 결과 한 해 동안 전체 식당 중 31%가 폐업했다. 경기 침체의 결과로 빈 상가와 사무실도 급격히 늘었는데 내 사무실이 있는 정석인하학원 빌딩은 2개 층이 통째로 빈 상태다.

최근 한국 경제의 어려움은 미중 무역전쟁 등 대외 환경 악화에도 원인이 있지만 현 정부가 들어선 후 이념에 치우친 경제정책을 강행한 결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소득주도성장론을 바탕으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행히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2.9%로 낮아졌다. 부작용이 뚜렷한 다른 정책도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높이자는 주 52시간 근로제도의 취지는 나무랄 데 없지만 업종별·기능별 특성을 무시하고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도입 시기를 정한 건 문제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반도체 부품·소재 연구개발(R&D)을 중심으로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일본 문제가 터져 나오지 않았더라도 밤낮없이 R&D를 수행하는 연구기관들의 특성을 고려했어야만 한다. 부품·소재 국산화에만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라 판교 IT 밸리의 전자게임 업계에도 지장이 없도록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정부가 인정하는 바처럼 탈원전은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멈출 때까지 몇십년이 걸리는, 현 세대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기업과 연구기관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이직하고 대학의 원자력 전공학과가 폐지되도록 둬서는 안 된다. 전통적인 우량기업 한전이 적자로 전환된 원인과 해외 원자력 발전사업 수주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남북경협도 객관적인 실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경제 규모는 우리의 50분의 1로 전체 국내총생산(GDP)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에도 미달하는 수준이다. 북한의 무역액은 우리의 1%에 못 미친다. 따라서 북한과의 경협으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정도는 미미한 수준일 수밖에 없다. 우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는 말처럼 잠재력이 큰 게 사실이나 그 잠재력이 나타나려면 핵 합의가 이뤄지고 북한이 경제체제를 바꿔야 한다. 베트남이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한 후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기까지 7~8년이 소요된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여당은 경제위기라고 얘기하는 것을 일종의 프레임으로까지 여기고 있다. 물론 경제는 심리라는 말처럼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일이 당국자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정보와 통계를 넘어설 수는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미국보다 뒤처질 것으로 보며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한국 경제를 ‘투자와 수출이 모두 위축되며 경기 부진이 지속되는 모습’으로 진단했다. 이제 이념보다 현실에 바탕을 둔 정책을 펴야 할 때가 됐다.

[편집자 주] 서울경제신문의 새 칼럼 ‘현정택의 세상보기’가 매주 목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필자는 청와대 경제·정책조정수석과 국책연구원의 수장을 역임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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