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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미키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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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일본의 본모습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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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8월15일 오후3시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사진). 미키 다케오 일본 총리가 경내로 들어와 참배를 마쳤다. 전후 일본 총리가 이곳에 들러 참배한 적은 없지 않았으나 종전기념일 참배는 사상 처음.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규정한 헌법 위반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미키는 ‘개인 자격’을 내세웠다. 관용차를 타지 않고 공직자 동행 없이 공물료를 사비로 냈기에 위헌이 아니라고 둘러댔다. 미키의 참배는 격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야스쿠니신사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야스쿠니신사는 1868년 신기관(神祈官) 설치령에 따라 도쿄 초혼사(招魂社)로 설립될 당시부터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시설. ‘살아있는 신(神)’인 일본 왕(天皇)을 받드는 신도(神道)를 국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기 위한 근대의 발명품이었다. 일본의 주장대로 단순한 현충시설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왕을 정점으로 하는 광신적 제정일치 군사국가’로 일제를 규정한 미 점령군이 가장 먼저 손본 게 국가 신도의 핵심인 신사다. 신관의 신분이 이때 공무원에서 민간인으로 바뀌었다. 히로히토 왕이 1946년 정초 이리저리 말을 꼬아가며 신이 아니라는 인간 선언을 한 것도 미군의 압박에 의해서다.

미키의 야스쿠니신사 방문은 두 가지 노림수가 있었다. 1차 석유파동으로 어려워진 경제여건을 호도하고 종교법인 야스쿠니를 해산해 국가 직영의 특수법인으로 바꾸자는 극우세력의 종용에 호응하기 위해서다. 한국과 중공은 물론 일본 내부 반발로 국영화 논의는 사그라졌지만 일본 극우는 뜻을 접었을까. 미키의 참배로부터 10년이 지나 종전 40주년을 맞은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찾았다.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2명을 제외한 각료 전원을 동반하고 당당하게 수상 자격으로 참배하며 공물료도 예산으로 냈다.

나카소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내용이 더 나쁘다. 극동군사재판이 사형해 바다에 버리려던 A급 전범 14명의 유골을 몰래 감춰 1978년 합사한 뒤이기 때문이다. 역대 일본 총리들은 이후에도 주변국의 반대에 아랑곳없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더니 마침내 군국주의화를 대놓고 추진하는 아베 신조 같은 극우파가 장기 집권하는 세상이 됐다. 이해 못할 점은 미국의 태도다. 전범으로 사형당한 히틀러 측근들을 독일이 기린다면 펄펄 뛸 미국이 일본은 왜 그냥 놔두는지 알 수가 없다. 미국의 묵인 아래 일본은 갈수록 침략 본성으로 되돌아간다. 미국에 패전한 후 74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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