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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인의 궁핍한 현실…히틀러도 ‘이 그림’을 좋아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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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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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는 수십 장의 연설문보다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준다. 하지만 시인의 삶은 녹록치 않다. 19세기 독일 화가 카를 슈피츠베크는 ‘가난한 시인’에서 주인공이 처한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면서도 위트 있게 표현한 그림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화폭 속엔 나이 든 시인이 다락방 구석에 낡은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있다. 입은 깃펜을 물고 있고, 손가락으로는 뭔가를 세고 있다. 천장에서 새어 들어오는 빗물을 막기 위해 우산은 펼쳐져 있고, 그가 쓴 글 뭉치는 땔감 대신 사용됐다. 천재적 시인의 이상화된 모습이 아니라 그가 직면한 궁핍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림은 예술가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담고 있지만 그림 속 시인은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택한 삶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머리에 쓴 원뿔 모양의 모자는 프랑스 혁명 때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 된 프리지아 모자를 연상시킨다. 이는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저항하고 자유와 욕망 실현을 위해 자발적 가난을 택한 시인의 의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림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히지 말고 정신적 즐거움을 추구하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슈피츠베크는 원래 약사였지만 25세 때 아버지 유산을 물려받은 후 전업화가가 됐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그는 당대 독일 중산층 사람들의 일상이나 사회의 모습을 신랄하게 풍자한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는 이는 드물었다. 그림 속 캐릭터들이 너무 정감이 가고 재미있게 표현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독재자 히틀러도 그의 그림을 가장 좋아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들이 모나리자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바로 이 그림이다. 자유와 이상을 위해 기꺼이 현실적 어려움을 인내하는 시인의 모습은 독일인들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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