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일본군 '위안부'였던 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위안부 피해자 유족이 보낸 편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14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정부 기념식에서 김경애, 이옥선, 이용수 할머니가 기념공연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9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이 14일 오전 11시 서울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개최됐다. 기림의 날은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날로, 정부는 지난해부터 기림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기념식을 열고 있다.

이날 열린 기념식에서는 위안부 할머니 두 사람의 유가족 증언을 담은 편지를 배우 한지민이 낭독했다. 유족들이 신원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 여성가족부가 두 가족의 이야기를 대신 듣고 편지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전쟁 때 간호사로 근무한 줄 알았던 엄마가 사실은 ‘위안부’ 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후 엄마를 외면하고 부끄러워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라고 엄마가 남긴 마지막 말이 담겨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용수, 김경애, 이옥선 할머니도 참석했다. 배우 한지민이 편지를 낭독할 때 위안부 할머니들은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다음은 편지 전문.



경향신문

14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정부 기념식에서 배우 한지민이 위안부 피해자의 유족들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또래의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평양이 고향이신데, 전쟁 때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는 간호사였다고 우리 엄마는 참 훌륭한 분이라고 자랑을 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잠결에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엄마가 일본군 위안부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뭔지 무슨 일을 겪으신 건지 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1942년. 그러니까 엄마 나이 열일곱. 전쟁 때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가신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신거구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다친 어깨와 허리 때문에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 하시는 엄마를 보면서도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신 건지 엄마한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무섭기만 했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습니다. 혹시라도 내 주변의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일본말도 잘 하시고 가끔은 영어를 쓰시기도 하셨지만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 얘기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며 제게도 항상 신신당부를 하시곤 했었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써 외면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모른 체 하고 싶었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엄마. 엄마가 처음으로 수요 집회에 나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엔 어디 가시는지조차 몰랐던 제가 그 뒤,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 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해.”

엄마는 강한 분이셨어요. 그러나 엄마는 그렇게 바라던 진정한 사죄도, 어린 시절도 보상 받지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의 싸움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티셨습니다.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반드시 엄마의 못다한 소망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