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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운 건 승부 뒤엔 ‘시진핑 책사’ 왕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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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후진타오-시 주석 내리 보좌

중국 부상에 맞춰 새 지도이념 제시

미-중 관계, “최악의 상황 대비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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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한 통상마찰로 보기 어렵다. 미국이 정면으로 겨누는 것은 국가가 주도하는 중국의 경제발전 전략 그 자체다. 기존 패권질서를 지키려는 미국에 맞서 국가의 명운을 건 절체절명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곁에는 왕후닝 정치국 상무위원(64·당 서열 5위)이 있다.

1955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왕 위원은 저명한 학자 출신이다. 30살에 명문 푸단대 교수가 됐고, 40살에 베이징 중앙정치 무대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책 20권과 논문 200여편을 썼다.

왕 위원이 당 중앙정책연구실 정치조장에 임명된 1995년은 격변기였다. 개혁·개방을 거쳐 천안문(톈안먼) 민주화운동과 옛 소련의 몰락을 경험한 중국 사회는 이른바 ‘3신(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당에 대한 믿음) 위기’에 빠져 있었다. 왕 위원은 일찌감치 ‘주권론’에 입각해 ‘통치철학-정권안정-체제유지’를 비롯한 사회주의 현대화를 위해 철학과 사회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쩌민 당시 주석이 그를 베이징으로 부른 이유다.

그 뒤 왕 위원은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으로 이어지는 3명의 주석을 내리 보좌하며, 당 중앙위원(2002년)-정치국원(2012)-정치국 상무위원(2017) 등 권력의 핵심에서 승승장구했다. 중국의 발전단계에 맞춰 그가 내놓은 정책 기조는 고스란히 당 지도이념으로 당장(당헌)에 등재됐다. ‘공산당의 제갈공명’을 넘어 ‘공산당의 공자’라 할 만하다.

‘도광양회’(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로 표현되는 덩샤오핑 시절 중국의 대외정책에 이어 장쩌민 주석은 ‘3개 대표론’(당이 농민·노동자-지식인-자본가의 이익 대변)을 지도이념으로 삼고, 외교정책에선 ‘책임대국’을 내세우며 ‘유소작위’(필요한 역할은 한다)로 나아갔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던 때다.

이어 집권한 후진타오 주석은 ‘과학발전관’을 뼈대로 평화발전과 조화세계를 강조하며 ‘화평굴기’(평화롭게 발전해나간다)를 추구했다. 2010년 말 중국은 마침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이 됐다. 이후 집권한 시 주석이 ‘중국몽’과 ‘신형대국관계’를 내건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 뒤엔 왕 위원의 이론적 뒷받침이 있었다.

왕 위원은 1991년 펴낸 <미국 대 미국>에서 빈부격차와 기득권층이 장악한 정치권 등 미국 사회의 모순을 통렬히 비판했다. 서구식 민주주의의 ‘이식’에도 단호히 반대하며, “정치제도는 한 나라의 역사, 문화, 사회적 현실에 부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미국과 맞서는 건 되도록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때’를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을 때 <뉴욕 타임스>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서 왕후닝만큼 미국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 인물은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왕 위원은 지난 1월 중순 각 성 지도자 및 장관급이 참석한 중앙당교 세미나에서 “커지는 외부의 불확실성을 맞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대결이 전면화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한편,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는 류허 부총리(당 서열 10위)가 서 있다. 미-중 무역협상의 중국 쪽 대표인 그는 시 주석의 베이징 제101중학 동창으로, 거시경제 측면에서 중국의 미래를 설계해왔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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