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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자금줄이 된 ‘한국인 1호 특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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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강점기 독립운동가 정인호선생, 1909년 말총모자 특허 첫 등록

中-日에 수출하며 민족기업 키워… 구국단 결성해 임정 군자금 지원

13일 대전현충원서 추모행사

동아일보
한국인 제1호 특허권자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한 정인호 선생(1869∼1945·사진)의 애국정신과 특허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다. 특허청은 13일 국립대전현충원 정인호 선생의 묘에 특허사에 남긴 이정표를 기념하는 상징물을 부착하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증손녀 4명이 참석했다.

경기 양주 출신인 선생은 구한말 궁내부 감중관과 청도군수를 지내다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사직한 뒤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08년 초등대한역사 등 교과서를 저술해 교육을 통한 민족교육 운동에 힘쓰는 등 교육자, 저술가, 발명가로 활동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그는 1909년 8월 9일 통감부 특허국에 말총모자를 출원해 특허 제133호, 한국인 특허 1호로 등록했고 일본에도 한국인 1호로 특허를 등록했다. 일본은 1908년 한국에서 특허 제도를 시작했다.

선생은 이후 공장을 세워 말총으로 모자, 핸드백, 셔츠 등 다양한 말총 제품을 제작했고 일본과 중국 등에 수출하며 민족기업으로 키웠다. 소설가 이광복은 전기소설 ‘끝나지 않은 항일 투쟁’에서 “(선생이) 개발한 말총 모자를 일본인들이 모방하려 해 특허를 냈다”고 전하고 두 차례의 대형 신문광고를 낸 것으로 미뤄 말총모자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것으로 보인다. 당시 단발령이 내려져 모자가 유행했다. 동아일보는 1936년 1월 1일자 2면에 발명계를 조명한 ‘명랑! 발명 행진곡-모방에서 일약창안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선생의 이야기를 전했다.

선생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독립구국단을 결성해 상하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이렇게 자금을 지원한 독립운동으로 일제에 체포돼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독립운동가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선생은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그가 한국인 1호 특허권자이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록에 기록됐고 묘비에도 적혀 있다. 다만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다가 특허청의 이번 추모행사로 알려지게 됐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일본제도에 의한 한국인 1호 특허가 역설적으로 민족기업을 성장시키고 독립운동의 숨은 자금원이 됐다”며 “한국인 1호 특허가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극복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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