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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취재일기] 큰 정치 했던 DJ, 그를 기린 출판회엔 ‘골목대장 정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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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3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김대중전집 30권 완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앞줄 왼쪽부터) 유성엽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손병두 박정희대통령 기념재단 이사장, 정동영 평화당 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희상 국회의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권노갑 평화당 고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김성재 출간위원장, 김홍업 전 의원, (뒷줄 왼쪽부터) 박명림 김대중도서관 관장, 한 사람 건너 설훈 민주당 의원, 김홍걸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 김희선 전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한정 민주당 의원, 박지원 평화당 의원, 김옥두 전 의원,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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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 서거 10주기를 닷새 앞둔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김 전 대통령 전집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행사가 열린 지하 1층 컨벤션홀엔 김대중 정부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맨 앞줄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앉았고, 그 뒷줄에 박지원 평화당 의원이 앉았다.

이 대표는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이었다. 대학 친구인 이 대표에게 이끌려 정계에 입문한 정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DJ의 대변인이었고, 김대중 정부에선 여당 최고위원이었다. 박 의원은 청와대 공보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다. 셋은 김대중 정부 성공을 위해 손을 맞잡았던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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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집


셋은 이제 각자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정 대표와 박 의원은 행사장에서 악수도 하지 않았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박 의원이 속한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정치)는 전날 평화당 탈당을 발표했다. 정 대표는 이들을 “구태정치”라고 비난했다.

박 의원은 먼저 자리를 떴다. 이 대표와 정 대표도 곧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주요 정치인이 행사장을 떠난 뒤 1층에 전시된 DJ 전집을 훑어봤다. 전체 30권으로 분량만 1만7500쪽이다. 흥미로운 글이 있었다. ‘정치를 하려는 후배들에게’란 제목의 글이다.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치를 빼면 나의 인생은 거의 제로가 된다”고 했던 바로 그 정치를 떠나고 쓴 글이었다. DJ는 10개의 조언을 했다.

가장 첫머리는 이랬다. “어떻게 해서든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출세하는 정치쟁이가 될 것인지, 아니면 진리와 정의를 위해 일생을 바치고 국민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가가 될 것인지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전자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사람에게 해줄 말이 없습니다. 꼭 듣고 싶다면, 정치를 하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하려는 후배에게 정치하지 말라고 한 DJ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주변에서 국회의원을 네 번, 다섯 번 했어도 국민으로부터 이렇다 할 평가도, 존경도 못 받고 오직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된 사람을 많이 보아왔습니다”라고 했다. 실로 아픈 말이다.

DJ와 정치했던 이들이 이젠 다선 원로가 돼 민주당, 바른미래당, 평화당, 대안정치로 흩어져 있는 현재 정치 구도를 생각하니 이 조언에 특히 눈길이 갔다.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에게 ‘DJ였다면 지금 상황에서 뭐라고 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는 DJ와 함께 정치했고,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이었다. 장 이사장은 “지금은 노선이 달라서 다투는 게 아니잖아요. 각자 살려고 하는 거죠. 일부 정치인들은 DJ 이름만 빌려서 정치할 뿐 정신이나 사상을 계승하지 않았어요.”

DJ와 함께 정치했던 한 의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DJ의 리더십은 대단했어요. 결국에는 민주개혁 세력을 모아 평화적인 정권 교체에 성공했잖아요. 그런데 그 이후 그만큼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니 여기저기로 흩어졌고, 힘을 모으기가 힘들어졌죠.” 그저 ‘골목대장’ 정치를 할 뿐이란 얘기다. 그에게 과오도 적진 않겠지만 많은 이가 DJ와 같은 정치인이 사라진 정치판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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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정치팀 기자


윤성민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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