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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가·망명객’ DJ의 1973년 메모엔…“일, 지배·종속밖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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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 기록물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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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들은 지배냐 종속이냐밖에 모른다.” “한·일 양국민 사이의 문을 뜻있는 동지들과의 협력으로 하루속히 열어젖혀야 한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반유신·반독재 투쟁을 벌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관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닷새 앞둔 13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의 일본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를 처음 공개했다. 1950~1970년대 당시 시사평론가, 일본 망명객이었던 김 전 대통령은 각종 기록물에서 일본의 팽창 야욕을 우려하면서도 일본의 과거사 사과와 한·일 양국 양심세력의 연대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대중도서관은 이날 <김대중전집> 30권에 포함된 언론 기고문, 메모, <옥중서신> 일본어판 서문 등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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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은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던 1953년 10월2일 ‘한·일 우호의 길’이라는 언론 기고문을 게재했다. 당시 정전협정 체결 직후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대치가 지속되던 때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 글에서 “태평양반공동맹에 있어서도 같이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한·일 양국의 반목 대립은 아주(亞洲) 반공세력의 강화는 물론 전기(前記) 반공동맹의 추진에도 치명적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썼다. 이어 “우리는 단호히 일본의 옳지 못한 태도의 시정을 얻음으로써만이 진실로 영원한 양국 친선의 튼튼한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도서관 측은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안보와 국익적 관점에서 한·일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일본에서 망명 투쟁을 하던 1973년 4월 친필로 작성한 메모글(사진)도 있다. 메모엔 “일본의 경제력, 팽창 - 재군비, 핵무장 - 대국야욕, 그들은 지배냐 종속(이냐)밖에 모른다. 연결될 것인가?”라고 적었다. 일본 ‘주오공론’ 1973년 1월호에 게재한 기고문에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의 황폐화를 딛고 일어서 지금의 일본 국가를 건설한 일본 민족의 끈기와 그 생명력, 그리고 성과에 대해 진심으로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아시아 민주공동체’ 조직을 제안했다.

1983년 <옥중서신> 일본어판 서문의 친필 초안에선 자신을 위해 구명운동을 진행하는 일본 인사들에게 감사 글을 쓰기도 했다. “몇 겹으로 닫힌 한·일 양국민 사이의 문을 뜻있는 동지들과의 협력으로 하루속히 열어젖혀야 한다”고 했다.

도서관 측은 “보편적 가치를 통한 한·일 연대를 중시하며 이 기반 위에서 한·일관계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라는 성과로 연결됐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1998년 10월 김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서명한 ‘한·일 관계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말한다.

도서관 측은 이날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김대중전집> 30권 완간 출판 기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김 전 대통령의 기록물을 공개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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