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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백색국가 제외` 日시행 앞두고 맞펀치…실효성보단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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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日 경제전쟁 / 정부, 수출우대국서 日배제 ◆

매일경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본을 수출통제 우대국에서 배제하는 전략물자 수출입 고시 변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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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본을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하기로 한 것은 일본이 1, 2차 무역보복 조치를 잇달아 시행한 데 따른 대응 조치다. 일본은 지난달 4일부터 3개 소재 수출통제 조치에 이어 28일부터는 한국만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조치까지 시행할 예정이다. 정부의 거듭된 조치 철회 요청과 국제 여론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연쇄적인 무역보복 조치를 강행하면서 정부도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전략물자 수출입 고시 개정안은 최근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조치와 내용상 거의 비슷하다. 일본은 기존 3년 단위로 수출을 허가받는 포괄허가제를 적용받다가 건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개별허가제로 전환됐다. 정부가 관리하는 전략물자 품목은 총 1735개다. 이 중 민감품목(597개)을 제외한 비민감품목(1138개)이 원칙적으로 건별허가제로 바뀌는 것이다. 개별허가의 경우 심사기간이 5일에서 15일로 늘어나고 제출 서류도 3종에서 5종으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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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자율준수(CP) 기업을 통한 수출의 경우에는 일본처럼 정부도 포괄허가제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일본은 총 1300여 개 CP 기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154개 CP 기업을 지정하고 있다. 이 중 일본으로 수출하는 '가의2' 지역에는 최우등 기업(AAA등급)에만 포괄허가를 허용하기로 했다. AAA등급 CP 기업은 11개다. 수출 허가 유효기간이 종전 3년에서 2년으로 줄어들고 수출 기업이 제출해야 될 서류는 1종에서 3종으로 늘어난다. 비전략물자는 캐치올(상황허가) 규제를 받게 되면서 종전 인지(Know), 통보(Inform) 요건을 적용받던 일본은 이번 조치로 의심(Suspect) 요건도 적용받게 됐다.

이처럼 일본만을 겨냥한 별도 분류 기준을 마련한 만큼 맞대응 조치가 분명하지만 정부는 애써 보복 조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박태성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일본에 대한 상응 조치라면 똑같이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겠지만 이번 조치는 국내, 국제법 틀 내에서 적법하게 제도를 변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과 달리 지난 2일 일본에 우대국 배제 방침을 사전 통보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또 일본 수출통제 제도의 부적절한 운영 사례가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과거 일본의 전략물자가 북한으로 밀반출된 여러 사례를 그 근거로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정부 '입'으로 일본에 대한 맞대응을 공식화할 경우 정부의 향후 대응 카드가 크게 줄어드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각종 국제회의에서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알리며 국제 여론전을 가속화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까지 추진하는 정부 입장에선 일본에 대한 맞대응이란 점이 부각될 경우 전략에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당초 8일 발표하기로 했다가 추가 검토를 이유로 연기한 것도 이 같은 우려에서다. WTO 규정상 제소 결과가 나오기 이전 보복 조치를 금지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1, 2차 무역보복 조치가 GATT 11조(수출제한 금지), 1조(최혜국 대우) 등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도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조치에 대해 맞불을 놓으면서 일본의 2차 조치에 대해선 사실상 제소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WTO 제소는 현실적으로 3개 품목의 수출을 제한한 1차 조치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마저도 최근 일본이 한 달 만에 수출 허가를 내주면서 피해 입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중순까지 일단 제소를 위한 준비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WTO 사무국과 주제네바 일본대표부에 제소장 전달과 함께 양자 협의를 요청하는 것으로 제소 절차가 시작된다.

일본에 대한 수출통제 요건을 강화한 이번 조치가 실제 일본에 타격을 주긴 어렵다는 실효성 문제도 있다. 이번 제도 변경에도 정부가 별도 통제 품목을 지정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품목은 석유제품이 52억1390만달러로 가장 많고 철강(40억달러), 일반기계(30억달러), 석유화학(21억달러) 등이다. 대부분 범용재여서 정부가 수출통제에 나선다고 해도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 수출통제로 애꿎은 국내 수출 기업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이번 조치와 함께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것도 일본에 대한 실질적 공격보다는 이를 지렛대로 삼아 일본과 협상에 나서겠다는 의도가 강하다는 분석이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의견 수렴 기간 중 일본 정부가 협의를 요청하면 정부는 언제, 어디서든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사토 마사히사 일본 외무성 부대신은 12일 한국 정부가 '백색국가' 명단에서 일본을 제외한 것과 관련해 자신의 트위터에 "일본의 수출관리 조치 재검토에 대한 대항 조치라면 WTO 위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한국으로부터 일본으로 (수입하는) 미묘한 전략물자는 거의 없는 것은 아닌가. 실질적 영향이 없을지도?"라고 적은 뒤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교도통신은 이와는 별도로 외무성 간부가 "과잉 반응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임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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