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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ESC] 음악, 사람, 골목이 ‘삼위일체’ 이룬 트리니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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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동남쪽 트리니다드 도착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도시

첫날 만난 거리의 악사 프랭크

가사 개사해 내 얘기 노래해

거리 예술가 수가 그 도시 문화 지수

한때 야전병원이었던 클럽도 신기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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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에서 동남쪽으로 340㎞, 트리니다드로 가는 길. 택시를 잘못 잡아탄 것일까? ‘이소룡·성룡·이연걸’의 팬으로 무협영화를 가장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택시기사는 운전 중에도 앞 유리창을 향해 팔을 쭉쭉 뻗어댔다. ‘왼손으로 막고, 오른손 찌르기’를 시연할 땐 양손이 운전대를 떠났다. 쿠바에선 최첨단 자율주행이 이미 시작된 걸까? 설마! 분명 출발 전 차량을 확인하지 않았나. 1956년산 쉐보레. 아바나를 벗어난 지 벌써 3시간째, 대체 저 무협영화는 언제쯤 끝날까? 택시기사가 가상의 적을 향해 장풍을 날리고 제 혼자 비명을 지르는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났다. 세 액션 배우의 삼위일체인 운전사 때문에 이렇게 비명횡사하는 걸까? 성부, 성자, 성령이시여, 부디 저 영화가 무협 시리즈물은 아니길...“트리니다드 도착했습니다.” 차가 멈췄다. 종착지가 쿠바 동쪽 끝 바라코아가 아니길 천만다행이었다.

아바나 숙소에서 소개받은 까사(집)는 1박당 25쿡(달러). 사흘 밤을 잘 테니 70쿡으로 깎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집주인은 단칼에 거절했다. “지금 쿠바 전역에 빈방이 없다”며.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5쿡 때문에 온 마을을 뒤질 순 없는 노릇. 결국 75쿡을 고스란히 지불하고 방으로 들어섰다. 후와 덥다, 여러모로 더웠다. 그때 맞은편 에어컨이 눈에 들어왔다. 딸각. 전원을 돌렸다.(‘눌렀다;가 아니다.) 순간 덜덜 덕 쿵 윙 응. ‘공장이 내뿜을 만한 소음’이 박민규의 <카스테라> 첫 문장을 카리브의 섬으로 소환했다.

이 냉장고의 전생은 훌리건이었을 것이다

그 냉장고의 전생이 최악의 축구 참사가 벌어졌던 날 리버풀 측 훌리건이었다면, 이 에어컨은 반대편에서 “들이받아!”를 외치던 유벤투스 측 훌리건이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날의 참사로 둘 다 하늘나라로 갔다. 순서는 소설 그대로다. 신은 ‘너희들은 열을 좀 식히는 게 좋겠다’며 한 녀석을 냉장고로, 다른 녀석을 에어컨으로 환생시켰다. 대신 두 녀석을 멀찍이 떨어뜨리는 게 지구 평화에 이로울 거라는 생각으로 냉장고는 한국으로, 에어컨은 쿠바로 보냈다. 둘 다 엄청난 굉음을 내질렀지만 다행인 건, 냉장고는 24시간 풀가동해야 제 기능을 발휘하지만, 에어컨은 그럴 필요까진 없다는 것. 그래서 전생이 훌리건이었을 에어컨과 사이좋게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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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를 만난 건, 도착 첫날 식당에서였다.

흰 담벼락, 흰 실내 벽, 흰 식탁보, 흰 피부의 북아메리칸과 유러피언으로 가득 찬 식당. 기타를 메고 앞에 선 악사는 왠지 긴장되어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땀방울이 송골송골 이마에 가득했다. 나는 바닷가재와 맥주를 주문한 후 식당 밖으로 나왔다, 요리가 나오기 전 밤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문 앞의 의자에 스물을 갓 넘긴 듯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이 도시는 정말 아름답네요!” 말을 건넸다. 쿠바에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연정의 대상은 이성일 수도, 이성이 아닐 수도. 트리니다드에선 자갈 깔린 골목과 사랑에 빠질 것 같았다.

“우리도 여기가 좋아서 석 달 째 지내고 있어요.”

“우리라면....?”

“저 사람(기타를 멘 악사)이 남친이랍니다.”

“그전엔 어디서 지냈는데요?”

“여기서 차로 80km 떨어진 튜나스가 고향이에요.”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서 쿠바가 북한과 비슷할 거라고 여기면 오산이다. 농산물, 공산품 등 물자는 부족하지만, 쿠바인은 자유로이 도시를 오가고, 인터넷과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바깥 세계와 접한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인류의 실험실 같은 곳. 지난 100년 사이 대부분의 실험실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쿠바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실험 중이다. 하긴 이기고 지고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인류가 보다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보다 나은 길을 찾는 게 중요한 거니까.

“여기서 한 달 정도 묵으면 참 좋겠어요. 월세는 보통 얼마 정도죠?”

“다른 쿠바 친구들이랑 집을 빌려 같이 써요. 방 한 칸에 월 30쿡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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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악사가 다가와 여자에게 말했다. “식당 주인이 안에서 기다려도 된대.” “그냥 여기서 기다릴게” 여자의 대답에 사내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오늘도 수입이 없으면 어쩌지? 저녁거리도 사야 하고, 월세도 밀렸는데...’ 속을 알 순 없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지쳐 보였고, 사내는 의기소침했다.

사내가 식당으로 들어가고 기타 소리가 들렸다. 나도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들은 음식을 먹고 술 마시고 떠드느라 악사의 노래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주눅 든 사내의 목소리는 좌중을 장악할 수 없었다. 나는 악사의 반주에 맞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기타 코드를 오르내리는 악사의 손가락이 차츰 부드러워졌다. 아는 노래라 따라 불렀다. 악사가 자신감을 얻은 듯 목청을 키웠다. 그러자 사람들이 대화를 멈추고 악사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울림 좋은 사내의 목소리는 젊은 날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를 연상케 했다. 노래가 끝나자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쳤다.

성공적인, 첫 곡이었다.

세 곡을 부르고 악사는 뜨거워진 몸을 식혔다. 사내 앞에 바구니가 있었다. 조악하게 인쇄된 시디(CD) 몇장. 앨범 표지에 사내의 사진과 함께 이름이 씌어 있었다. 프랭크 바티스타.

“프랭크? 네가 직접 부른 음반이니?”

“응, 내 이름이야.”

“한장에 얼마니?”

“10쿡!”

1만2천원. 바닷가재를 한 마리 더 사 먹고도 남을 돈이었다. 망설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지갑을 열었다, 어린 두 연인이 오늘 밤 편히 잠들기를 바라며. 열을 식힌 프랭크가 다시 기타를 들었다. 내가 낸 10쿡 외 바구니엔 동전 하나 쌓이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환했다. 내가 음반 수록곡 리스트를 보고 신청곡을 호명하자 프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빔 벤더스 감독이 잊힌 가수와 악사들을 찾아내 만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찬찬 Chan 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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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는 가사를 개사해 부르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이곳으로 와서 다음엔 마야리로 간다네.” 자신감에 찬 남친의 노래를 여친이 바라보며 웃었다. 식당을 떠나며 프랭크가 고맙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프랭크가 고마웠다. 그가 없었더라면 하얀 식당은 텅 빈 식당 같았을 테니까. 나는 거리에서 만나는 예술가들의 숫자가 그 도시의 문화적 풍요를 재는 바로미터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풍요는 연대를 표현할 때 더욱 확장되는 거라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 트리니다드(Trinidad)는 ‘삼위일체’란 뜻. 관광객과 호객꾼들로 가득한 아바나에서 미간을 찡그리던 여행자도 트리니다드에선 황금시간, 자갈 깔린 골목을 걸으며 음악의 황홀경에 빠져든다. 바이올린과 일렉트릭 베이스 기타 혹은 아프리칸 드럼과 아코디언 등 다양한 크로스오버 음악이 안겨주는 낯선 충격과 경이로움. ‘중세풍 골목,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 음악’이 삼위일체를 이룬 세계 속으로 여행자는 융해되었다가 휘발되어 날아오른다.

참, 트리니다드에서 잊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면, 아얄라다. 늦은 밤, 산으로 가는 오솔길을 지나자 캄캄한 공터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주변에 변변한 식당이나 가게도 없는 데 줄지어 선 사람들. 뒤를 따르자 ‘Ayala’ 간판 아래로 내려가는 돌층계. 전 세계 유명 클럽은 모두 섭렵한 클러버도 입을 다물지 못할 풍경이 펼쳐졌다. 상상해보라, 밤마다 환선굴이 나이트클럽으로 변신한다면? 전쟁 시 야전병원으로 사용되던 석회암 동굴이 평화 시를 맞아 나이트클럽으로 문을 연 것이다.

밤 나들이에서 돌아오면 전생에 훌리건이었던 에어컨을 깨웠고, 녀석은 미친 듯이 몸을 흔드는 허풍선이 웃음소리를 터트리며 나를 반겼다. 푸푸 하하 하하하. 녀석이 내지르는 웃음소리에 전염됐는지 나까지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분명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린데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웃음이든, 울음이든, 희열이든, 분노든...억누르지 않고 터트리기도 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소리치고, 뒤엎기도 하면서 세상은 적당한 온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거 같았다. 늘 조금씩 부족하고, 그래서 완벽하진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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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다드에서 지내는 동안 프랭크, 욜리 커플과 거리에서 마주치곤 했다. 프랭크는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골목을 지나는 날 보면 눈을 찡긋하거나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정들자 이별이라고, 트리니다드와 헤어질 날이 왔다. 다시 짐을 싸고 잊어버린 물건이 없나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에어컨을 끌 차례였다. 사람이 없는 방을 식힐 필요는 없으니까. 작별인사를 나눴다. ‘안녕.’ 손잡이를 비틀었다. 그러자 엄청난 샤우팅을 질러대던 녀석이 털털털트트드드 하며 멈췄는데, 그 소리가 길 떠나는 내게 던지는 당부 같았다.

“달아오르지도 않은 열은 식힐 필요도 없어. 때로 달아오르는 것도 나쁘진 않아. 달구고 식히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철은 단단해지지. 인간도, 혁명도, 인류의 역사도 다르지 않아. 뜨거워지는 걸 두려워하면 단단해지지도 않는다는 걸, 명심해.”

글·사진 노동효(<남미히피로드> 저자·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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