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日 탄력근로 1년, 韓 고작 3개월…최저임금도 日은 지역 차등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日 극복 액션플랜 ② / 노동 이슈에 발목잡힌 韓 ◆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미년 경제 한일전이 본격 개전했다. 정부는 일본에 의존해온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R&D)과 금융 지원 등 조치를 내놨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장기전의 승세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대표적인 전쟁터가 노동 개혁 분야다. 일본을 이기자고 하면서 정작 이를 뒷받침할 노동 관련 제도에선 한참 밀리는 상황이다. 일본에는 없는 규제까지 도입한 상황에서 과연 일본 따라잡기가 가능하겠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법이다. 경제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양국의 노동 관련 사회적 제도나 법률에서 극명한 경쟁력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은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기치 아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경직적인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마련했다. 반면 일본 국회는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법 체계 마련에 집중했다. 성과 중심의 보수 체계 도입을 골자로 지난해 6월 29일 의결한 '일하는 방식 개혁 법률'이다. 개혁 법률은 장시간 노동 근절이나 비정규직 차별 시정 같은 고용 안전성 조치뿐 아니라 근로 대가의 기준을 근로시간에서 성과로 전환한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도입 같은 조치까지 담았다. 저출산·고령화로 불가피해진 낮은 노동생산성을 되살리기 위해 일본 여당이 야당 측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한 전향적 조치다.

이미 일본은 한국보다 생산성이 높지만 그래도 정책 1순위로 생산성 향상을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4.3달러로 OECD 평균(48.1달러) 대비 7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국내총생산을 전체 근로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경쟁국인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41.8달러로 역시 OECD 평균보다는 낮지만 우리나라보다 20% 이상 높은 수준이다.

근로시간이나 최저임금만 봐도 일본의 제도 유연성은 한국과 뚜렷하게 갈린다. 양국 모두 원칙적인 주당 근로시간(한국 52시간·일본 51.3시간)은 비슷하지만, 일본은 노사 협정에 따른 특별 초과근로가 연간 360시간까지 가능하다. 신기술·신제품 연구개발 분야는 초과근무 규제에서 예외를 인정받는다. 근로시간 제도의 부작용을 보완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역시 일본은 1년이다. 반면 한국은 3개월에 불과하고, 6개월 연장 논의마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최저임금 결정 체계 역시 일본은 중앙정부에서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면 그 범위에서 지역별 차등화가 가능하다는 전제로 지자체들이 실정에 맞게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 같은 이원화된 결정 체계도, 차등화 시스템도 작동할 수 없도록 완전히 묶여 있다.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제도보다 결정적인 차이는 인식이다. 한국 정부가 강성 노조 입김에 휘둘리면서 근로자 소득 안정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구호적 조치에 열을 올리는 반면 일본은 생산성 향상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 같은 산업 현장과 근로자의 경쟁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노동 정책이 약자를 보호해주는 인권적 측면이 강하다면 일본은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제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생산성을 높이려는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일하는 방식 개혁'은 단순히 직장 내 근무 방식을 개혁하는 차원을 넘어 일본 기업문화 개혁, 나아가 일본인 라이프 스타일 변화까지 포괄하는 매우 광범위한 개혁이다.

여기에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동일노동·동일임금) △임금 인상·생산성 향상 △장시간 노동 시정 △유연근무를 위한 환경 정비 △여성·청년 인재 육성 △일과 가사, 질병 치료 양립 △전직·재취업 지원 강화 △외국 인재 수용 △고령자 취업 촉진 등을 포함시켜 전방위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임금을 높여주고 근로시간을 줄여 안정성을 강화한다는 점은 같지만 일본은 직장 이동을 쉽게 하거나 외국 인재 수용에 있어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 세계가 노동시장 안전성과 유연성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안정'에만 방점을 찍고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안전성과 유연성을 두루 겸비하는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일본 정부가 2017년 생산성 혁명을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내세운 배경에는 임금 인상만으로는 일본 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완성할 수 없고 디플레이션 탈출은 더 요원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볼 수 있다"며 "이러한 현실은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일본 정책을 참고해 중·장기 잠재성장률을 제고하는 한편 국민 소득과 생활 전반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장기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할급 임금 체계'를 통한 직무급제 확대 역시 일본이 앞서 나가는 결정적인 대목이다. 역할급 임금 체계는 직무 능력에 따른 역할 부여와 역할 수행에 따른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석우 기자 / 김연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