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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90년대생 리포트]①스티브 잡스 꿈꿨지만, 현실은 공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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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게 태어났지만…외환위기·금융위기때 성장

에코붐 세대로 출생아 늘었는데 경제 성장 뒷걸음

직장서 좇겨나는 부모 보면서 `안정적 직업` 선망

스마트폰 소통·인권·공정 민감…불합리에 제 목소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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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보경 기자] 야근하려는 팀장이 팀원들에게 저녁식사로 무엇을 시켜줄지 묻자 젊은 직원은 음식 대신 “퇴근 시켜주세요”라고 한다. 저녁 회식을 제안하려는 상사에게 막내 사원은 “내일 뵙겠습니다”라며 선수를 친다. 그 사원은 이미 검도복으로 갈아 입고 퇴근후 취미활동 준비까지 마친 상태다.

최근 직장내 90년대생 직원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광고의 한 장면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대목에는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조직에 불만이 있더라도 꾹 참고 회사를 다녔던 기성세대들과 세대간 마찰을 겪고 있다. `요즘 애들`이란 표현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90년대생은 조금 더 특별하다.

◇경기침체와 함께 성장한 90년대생

최근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1970년생~1999년생 남녀 600명을 상대로 한 `일과 동료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근무시간에 대한 세대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일찍 출근해 정해진 출근시간 전까지 업무 시작 준비를 마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에 대해 90년대생은 35.0%만 `그렇다`고 했다. 반면 80년대생은 43.0%가 동의했고 70년대생은 절반이 넘는 54.0%가 동의했다. 또 `야근, 주말 근무를 해서라도 내가 맡은 일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대해선 90년대생의 32.5%만이 동의한 반면 80년대생과 70년대생 동의비율은 각각 42.5%, 43.0%였다.

90년대생이 다른 이유를 알려면 그들의 성장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풍요로운 경제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성장기 대부분은 오히려 경기 침체 하에서 보냈다. 외환위기(1998년)에 유년기를,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때 청소년기를 겪었고 지금 와선 혹독한 취업난을 경험하고 있다.

취업난은 태어날 때부터 어느정도 예고됐다. 90년대생은 2차 베이비부머(1968~1977년생)의 자녀인 2차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다. 정부 산아제한정책이 1980년대 말부터 풀리면서 60만명대로 줄었던 출생아 수는 에코붐 세대가 등장하면서 70만명대로 다시 늘었다. 출생아가 늘어난 만큼 일자리를 얻기 힘들어진 셈. 외환위기 이후 2010년 청년실업률은 7.7%였고 2014년부터 9%를 넘겼다가 지난해 말엔 9.5%까지 치솟았다. 반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0년 6.5%에서 지난해 2.7%로 급하강했다.

부모인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녀에게 들려줄 `성장 신화`를 경험했다면 90년대생은 그 영향으로 삶의 매 순간 `현타 오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인 현타는 헛된 꿈이나 망상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을 뜻한다.

◇안정적인 회사를 찾는 건 당연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층 취업 시험 준비자중 일반직 공무원 시험 준비자 수가 30.7%에 달했다. 90년대생을 `9급 공무원 세대`라고 할 만큼 공시생이 넘쳐난다. 일부에선 공무원을 최고의 직업으로 꼽는 이 세대들에게 도전정신 없다고 비꼬기도 한다. 사실 90년대생도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과정을 거쳤고 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을 롤모델로 삼아왔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버지 세대가 수시로 구조조정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작 이들은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호하게 됐다.

고용시장 불안은 90년대생에게 평생직장의 개념도 없애 버렸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7년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29세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안정적인 회사`(31.3%)였다. `급여가 높은 회사`(20.1%)나 `발전 가능성이 큰 회사`(14.8%)는 후순위로 밀렸다. 20대 10명 중 7명은 중소기업 취업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안정적이라면 회사 규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직장이 있는 20대 3명 중 1명(35.1%)은 이직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30대 이직 의향(19.2%)보다 높다. △더 나은 보수·복지(53.1%) △더 나은 안정성(16.1%) △더 나은 근무환경(12.7%)을 위해 이직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복지와 안전성은 직장 선택의 최우선 고려 요인이다. 이렇다 보니 20대 직장인 10명 중 8명(81.7%)은 스스로 그만둔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런 90년대생들에게 `조직과 미래를 위해 참고 인내하라`는 선배 세대의 가르침은 도무지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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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무기·불합리한 관행은 바꾼다

90년대생의 무기는 스마트폰이다. 직장에서도 상사 도움 없이 웬만한 정보는 스스로 찾을 수 있다.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기술은 오히려 선배들을 앞선다.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MS )를 통해 어려서부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했고 자기 목소리를 주저없이 냈다.

적극적 의사 표시와 권리 주장은 중·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전후로 일어난 청소년 인권운동은 학생인권조례로 두발 규제도 없앴고 성적에 따른 차별 대우도 부당한 것이라고 외쳤다. 이후 2014년 세월호 사고, 2017년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사회에 대한 불신 팽배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함께 얻었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돼 더 논리적으로 불합리한 회사 관행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게 했다.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근무시간과 개인시간의 구분할 것을 당당히 요구며 정당한 대우와 월급을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90년대생의 사회 진출과 함께 최저임금법, 주 52시간 근무제,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등이 연이어 시행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90년대생의 사고방식이 다름 아닌 주류로 자리잡게 할 전망이다. 앞으로 회식으로 단합을 다지고 근무시간 외의 업무지시도 감내하던 조직문화가 바뀌는 건 필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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