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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여자의 적은 여자다" 고정관념이 만든 여성비하 버젓이 광고로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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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뉴스나 방송을 보면 일본 여성들은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비하(이하 비하)’나 성차별에 화 날일이 많아 보인다.

아사히신문도 여성을 향한 도 넘은 행동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논란이 된 비하나 성차별 문제, 인식 등을 재해석하는 특별코너를 만들었다. 코너에 실린 최근 기사를 보면 올 상반기에만 일본 대기업 3곳에서 여성과 관련한 속설을 소재로 광고와 콘텐츠를 제작·배포해 논란을 일으켰다. ‘노이즈 마케팅’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이들 기업은 여성을 주 고객층으로 해 제품 홍보보다 논란을 키웠다.

세계일보

◆‘여성의 OO은 XX다‘

신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여성과 관련한 속설을 소재로 한 기업 광고가 공개된 뒤 비판과 논란을 부른 사례가 잇따랐다.

올해 2월 화장품, 캐릭터 잡화 등을 판매하는 한 기업은 ‘여자라 즐겁다’는 문구와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밸런타인데이 광고를 게재했다. 광고는 얼핏 여성 캐릭터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그린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과 옷을 잡아당기고 치마를 들쳐 올리는 등 서로를 괴롭히고 있다. 이 광고의 콘셉트는 ‘여성의 우정을 비하’한 것이다. 앞에서는 선물에 기뻐하며 미소 짓지만 뒤에서는 서로 선물을 차지하기 위해 방해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또 한 제과업체는 육아용 앱 홍보사이트를 개설하면서 ‘남편을 위한 아내 마음 번역’이라는 콘텐츠를 공개했다. 이 제과업체는 ‘여성의 말은 본심이 따로 있다’는 콘셉트로 상황별 ‘여성어(女性語)’를 해석 했다고 소개했다. 예컨대 “나 못생겼지”라는 말은 “난 예쁘니까 당신은 그렇다고 말해” 등과 유사한 해석을 달았다.

그런가 하면 한 백화점은 여성 얼굴에 파이를 집어 던진 모습에 ‘여성시대 따윈 필요 없다’라는 문구를 달아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쳤다.

◆공공연히 말할 수 없지만 공공연히 말하는 이야기

이들 광고의 공통점은 여성과 관련해 속설로 전해지는 말을 과장을 더 해 표현했다는 점이다. 즉 공공연히 말할 수 없지만 일부에서 공공연히 말하는 걸 현실로 끄집어낸 것이다. 앞서 밸런타인 광고는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속설을 공공연히 드러냈고, 제과업체는 ‘여성의 말에는 모순이 따른다’는 걸 표현했다.

여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광고 콘셉트로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 성차별 문제와 기업광고 전문 저널리스트 지부 렌게는 “대기업이 고객인 여성을 향해 이같은 광고를 게재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여성을 둘러싼 편향적인 생각을 없애고 여성 차별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기업이 되레 고정관념을 조장하고 확고히 한 게 문제”라는 견해를 밝혔다.

반면 ‘여성시대 따윈 필요 없다’는 광고를 만든 백화점은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한 여성을 응원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여성을 비하할 목적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광고는 ‘여성에게 책임있다’는 메시지가 담겼고 파이에 범벅이된 여성의 모습이 불편함과 동시에 이해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와 관련 지부 씨는 이 광고가 “여성이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사회 현상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지만 ‘여성 스스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자기 책임론을 표현한 것”이라며 “사회적 메시지로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계일보

◆‘지어낸 건 아니다’ vs ‘모두가 그런 거 아냐’

광고는 여성들의 강한 항의로 얼마 가지 못해 삭제됐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논란은 인터넷에서 남녀 성대결로 번지며 고정관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거나 반박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광고 내용을 지지하는 쪽은 ‘없는 얘길 지어낸 건 아니다’라며 ‘공공연히 드러나 문제가 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대하는 쪽은 ‘일부에서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과 ‘광고와 같은 여성이 있더라도 극히 일부’라고 반박하며 맞선다. 이 밖에도 반대쪽 의견을 들은 일부는 광고 속 여성과 같은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라는 의견과 여기에는 일부 여성들이 동조하며 자성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고정 관념 얽매이지 말아야”

지부 씨는 “광고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은 기업의 광고가 고정 관념이나 편견을 조장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TV 등의 대중매체도 해당한다.

그는 “기업은 광고에 고정관념에 공감을 불어넣어 반응 얻기보다 잘못된 편견이나 생각에 의문을 던지고 이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최근 해외 기업은 광고에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점이 소비자의 지지를 모으는 지름길”이라고 충고했다.

해외에서 가끔 동양인을 비하하곤 하는데 이 말을 듣고 기분 나쁘지 않은 동양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부에서 가끔 여성들을 비하하곤 하는데 이 말을 듣고 기분 나쁘지 않은 여성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글처럼 조금만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어떨까 한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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