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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추가 경제보복 분위기 조성하는 日…'맞보복' 계획없는 韓 [김현주의 일상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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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추가 경제보복 가능성…비상 걸린 당정청, 총력 대응 돌입 / 문 대통령 여름휴가까지 취소…국무총리, 장관도 휴가 포기 / 日 비판하는 국제사회 목소리 높지만 완고한 입장 유지 / 내달 하순쯤 韓 추가 규제 가능성 / 일본인 10명 중 6명 "韓 수출규제 지지"…추가 보복 분위기 조성하는 듯 / 단기간 내 일본 정부가 태도 바꿀 가능성 매우 낮아 / 다양한 상황 철저하게 대비해야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겨냥해 추가적인 경제보복이 예상되는 가운데, 당정청이 총력 대응에 돌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초 29일부터 휴가를 쓰기로 했으나 일본의 수출규제, 추가경정예산안 등 산적한 현안으로 인해 휴가를 취소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여름 휴가를 가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다음달 떠나기로 한 휴가를 취소했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단 하루만 쓰려던 휴가 계획을 결국 포기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휴가 일정을 취소했다.

최근 일본의 잇따른 경제보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이어지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은 완고한 모습이다. 아베 신조 총리 정부는 이르면 오는 2일 각의에서 한국을 수출허가 간소화 대상국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절차대로라면 우리나라는 다음달 하순쯤 백색국가에서 제외된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법령 개정 관련 의견 공모에 4만건 이상 응모했고, 대부분 찬성이라는 내용과 수출규제 지지 응답이 58%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알리면서 추가 보복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이 단기간 내 태도로 바꿀 가능성은 현재로선 매우 낮아 보인다. 만약 일본이 추가 보복을 자행할 경우 사실상 우리나라 주요 업종 대부분이 이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국내외 여론전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외교적 해법도 모색해야 한다며 실무적으로도 만반의 대비를 갖추는 등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세계일보

다음달 2∼3일 열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만나자는 한국 정부의 제안을 일본 측이 또 거절, 미국에서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한일 양국을 넘어서 미국과 글로벌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29일 취재진에게 "일본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에게 RCEP 장관회의를 계기로 만나자는 제안을 했는데 일정상의 이유로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주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한국 측의 공개적인 양자협의 제의를 거부한 데 이어 유 본부장 명의의 제안 역시 거절한 것이다.

유 본부장은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밝혔듯 일본과는 언제 어디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RCEP 현장에서도) 이런 기회 있기를 바란다"고 재차 촉구했다.

지난 23일부터 사흘간 미국 출장을 다녀온 유 본부장은 "미국 주요 인사들을 두루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양국 간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를 문제 해결의 도구로 이용한 매우 위험한 선례임을 알렸다"고 밝혔다.

◆日 수출규제, 한일 넘어 글로벌 경제에 악영향

유 본부장은 "일본의 조치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어서 현 상황이 엄중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한일 양국을 넘어서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미국 기업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통제를 강화한 이후 반도체 가격이 20% 이상 급등했다. D램 가격(8기가·현물 기준)의 경우 조치 다음 날인 지난 5일 3.03달러에서 32일 3.69달러로 상승했다.

유 본부장은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형성된 국제 무역질서를 흔들고 동아시아 역내 안보를 위한 한미일 공조를 약화할 수 있음을 부각해 설명했다"며 "아울러 한국의 수출통제제도와 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서는 근거도 없으며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런 설명을 토대로 유 본부장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조속히 철회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 측 인사들에게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유 본부장에 따르면 로스 장관은 이번 조치가 미국 산업과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공감했다.

그러면서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유 본부장은 전했다.

그는 "미 의회 인사와 싱크탱크 및 각계 전문가들도 일본의 조치가 미국 경제는 물론 한미일 3각 협력 등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공감하고 목소리를 보태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와 보다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미국 업계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놓았다.

유 본부장은 "그간 미국 업계는 일본 조치의 영향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만나보니 '일본 측의 조치로 인한 영향을 체감하기 시작했다'면서 직접 서한을 주고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서한에는 전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 반도체산업협회, 정비기술산업협의회, 컴퓨터기술산업협회, 소비자기술협회 등 반도체·정보기술(IT) 관련 업계는 물론 전미제조업협회와 같은 일반 제조업계까지 참여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일방적인 수출통제정책의 변화는 글로벌 공급망에 혼란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업계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외교당국 "미국 업계, 일본 조치 영향에 침묵하고 있지만…"

유 본부장은 "미 정부와 의회, 업계, 싱크탱크 등 전문가 집단에서 일본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 글로벌 공급망과 국제무역질서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퍼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국내적으로는 한국 기업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상무부 등 미 정부와도 논의를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WTO 개발도상국 우대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선 "이번 상무부와의 만남에선 논의하지 않았지만,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난 2월부터 WTO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온 사안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며 "미국의 동향,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관계 부처와 협의해서 대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미국 방문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이날 오전 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한 후 귀국한 김승호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일본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했다.

김 실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본에 '눈을 뜨고 귀를 열라'고 충고했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성 대신(장관)이 트위터를 통해 한국이 WTO에서 막무가내식으로 행동했다는 뉘앙스로 글을 쓴 데 대해 일침을 놓은 것이다.

◆김승호 "日 눈을 뜨고 귀를 열라!" 일침 가해

김 실장은 "(일본) 대사관에 언론을 모니터하는 직원은 세코 대신에게 가감 없이 전달해달라"며 "대신쯤 되면 귀국(일본)이 취한 조치가 어떤 혼란을 일으켰는지 눈으로 보고 거기에 대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지금 대신은 일본이 저지른 조치가 어떤 평지풍파와 파장을 일으켰는지 못 보고 있다.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본 내에서도 큰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며 "세코 대신은 그것을 못 듣고 있다. 귀를 여세요"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번 조치가 경제적 보복이 아닌 안보 예외조치라는 일본 측 주장에 대해서는 "안보 사항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예외가 있으면 원칙이 있는 것이고 원칙이 몸통이고 예외는 꼬리가 돼야 한다"며 현재 일본의 태도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임을 강조했다.

김 실장은 한국 정부의 필사적 노력에도 오는 8월 2일 일본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 명단)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WTO 제소 등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반도체 글로벌 경쟁사, 혼란 틈타 '반도체 코리아' 아성에 도전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생산 차질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글로벌 경쟁사들은 이를 틈 타 '반도체 코리아'의 아성에 도전하는 모습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비(非)메모리 분야에서도 경쟁사들의 '견제' 수위가 높아지면서 한국 정부가 삼성전자를 전면에 내세워 추진하는 이른바 '반도체 2030 비전'이 초기부터 위기를 맞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등에 따르면 전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 순위 '톱10'에 포함된 미국, 대만, 일본 업체들은 최근 앞다퉈 차세대 기술 및 설비 투자와 이를 위한 자금 확보에 나서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위협하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경우 최근 첨단 극자외선(EUV) 공정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세계일보

한국당 일본 수출규제 피해 신고 센터 포스터. 자유한국당 대전시당


올 1분기 매출 기준으로 인텔과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3위 반도체 기업인 TSMC는 남부 타이난산업단지에 새로운 EUV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한편 북부 신추(산업단지에 3나노 공정을 적용한 생산라인을 건설하기 위한 정부 인가를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5G 이동통신용 반도체 생산을 위해 기존의 7나노와 5나노 생산능력도 확대한다는 전략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공교롭게도 이런 투자 계획은 일본이 EUV 공정용 포토리지스트를 수출 규제 대상에 올린 직후 잇따라 공개되면서 파운드리 분야에서 2위인 삼성전자의 추격 의지를 꺾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경쟁사 견제 高高

전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2위 점유율(전체 반도체 시장 9위)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도시바메모리는 최근 회사 이름을 '키옥시아(Kioxia)'로 바꾸고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키옥시아는 일본어로 기억(메모리)을 뜻하는 '키오쿠(Kioku)'와 그리스어로 가치를 의미하는 '악시아(Axia)'를 합친 것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에 인수된 도시바메모리는 도쿄증시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2017년과 지난해 삼성전자에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내줬던 미국 인텔은 사물인터넷(IoT)과 모바일 프로세서 분야에서 꾸준히 투자를 확대하며 올들어 실적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올 2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 줄었으나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돌았고, 특히 IoT와 자율주행 사업에서는 모두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로써 인텔은 올 상반기 매출 326억달러(약 38조6000억원)를 기록,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약 30조원 추정)을 크게 상회하면서 또다시 '글로벌 반도체 권좌'를 탈환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밖에 미국 마이크론과 브로드컴, 퀄컴,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도 5G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에 대비해 첨단 공정 도입을 서두르는 분위기다.

◆닛케이 "일본인 대부분 韓 규제 찬성"

일본 정부가 수출허가 간소화 대상인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기 위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을 추진중인 가운데, 지난 24일 마감된 이 법령 개정 관련 의견공모에 4만건 이상 접수됐다고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이 29일 보도했다.

이는 애초 알려진 접수 건수 3만 여건보다 1만건 가량 많은 것이다.

닛케이는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시행령 개정안의 의견 공모에 지난 1일부터 24일까지 총 4만건 이상이 들어온 것으로 나타났다며 대부분 개인을 중심으로 한 찬성 의견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개정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일본 정부는 내달 2일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개정안을 의결하는 방향으로 조율 중이라고 덧붙였다.

닛케이는 일본 정부는 새 법령을 만들 때 이메일이나 팩스 등으로 일반의 의견을 구하는 '퍼블릭 코멘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통상은 수 건에서 수십 건의 의견이 들어오는데 4만건 이상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주무부처인 일본 경제산업성은 주요 의견을 발췌해 이번주 안에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

28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국내 항공사의 일본행 항공기 탑승 수속이 시작됐지만 카운터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


닛케이는 절차대로 진행되면 한국은 다음달 하순부터 화이트 리스트에서 공식적으로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백색 국가에서 제외되면 일본 기업이 수출할 때 식품, 목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품목이 건별 허가 대상으로 바뀐다.

일본 정부는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통상 절차에 따라 허가를 내준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군사 전용 우려가 있다고 작위적으로 판단해 불허할 수 있는 만큼 원활한 수출거래가 사실상 어렵게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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