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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만리포니아’에서 효리처럼 SUP 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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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유일의 서핑 명소 태안

미 캘리포니아 닮은 해변·낙조

파도 약할 때 SUP 체험 제격

서핑보다 쉽고 전신 운동 효과

중앙일보

충남 태안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낙조를 감상하며 SUP를 즐기는 사람들. 만리포는 서핑의 메카인 미국 캘리포니아와 분위기가 비슷해 ‘만리포니아’라는 별명도 얻었다. 국내 서핑 명소인 강원도 양양, 부산보다 한갓지고 일몰도 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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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수상 레저를 즐기고 싶다면 SUP가 어떨까. SUP? 스탠드 업 패들(Stand up paddle)의 약자다. 문자 그대로 두 발로 물 위에 선 채로 노를 젓는 해양 레포츠다. 원래는 하와이 원주민의 이동수단이었는데 서핑의 원형에 가깝다고 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인 데다 이효리, 야노시호 등 연예인이 SUP를 즐기는 장면이 방송에 나오면서 국내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서퍼에게 ‘만리포니아(만리포+캘리포니아)’로 통하는 충남 태안 만리포에서 SUP를 체험했다.



파도 좋을 땐 말리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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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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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틀었다. 왠지 이 노래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만리포니아 가는 길, 한적한 서해안고속도로와 끈적한 옛 노래가 제법 잘 어울렸다.

만리포에 도착했다. 횟집 줄지어 선 해변도로를 500m쯤 달리니 서핑 숍이 하나둘 나타났다. 아직 방학 전이어서 해수욕장은 한산했고, 서핑 강습을 받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였다. 태안은 태풍 다나스의 영향이 미치지 않아서인지 바다가 순했다.

조금 유치하면서도 입에 착 감기는 조어 ‘만리포니아’는 서너 해 전부터 서퍼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서핑 마니아가 만리포를 발견한 건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그러나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터졌다. 태안 바다가 주춤하는 사이 부산 송정해수욕장, 양양 죽도해수욕장 등이 서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다시 태안 바다가 북적인다. 태안 서핑업체 ‘엠엘피 서프’ 이형주(41) 대표의 설명이다.

“서해안의 거의 모든 해수욕장을 헤집고 다녀봤는데, 만리포만 한 데가 없더라고요. 평소엔 바다가 잔잔한데 한 번 좋은 파도가 몰려오면 캘리포니아 말리부나 헌팅턴 비치가 부럽지 않은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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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포 해수욕장은 서해 유일의 서핑 명소다. 큰 파도가 치는 날이면 서퍼들이 몰려온다. [사진 엠엘피 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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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이 파악한 2018년 만리포 서핑 인구는 약 2만5000명이다. 2020년에는 5만 명을 예상한다. 서핑의 인기에 힘입어 태안군은 서퍼 전용 샤워대를 설치했고, 다음 달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서핑 연습을 할 수 있는 ‘볼 파크’를 착공한다. 태안군 허현정 전략사업단 주무관은 “만리포 해수욕장 한편에 실내 풀장에서 서핑 연습도 할 수 있는 교육 센터를 지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 젓다 지치면 일광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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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는 노를 젓다 피곤하면 보드에 앉아 쉬어도 된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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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 인구 대부분이 여름에 바다를 찾는다. 그러나 적절한 파도가 필요한 서핑은 봄 가을이 더 유리하다. 한여름 서핑을 즐기러 나섰다가 바다가 너무 얌전해 실망한 서퍼가 속출했다. 그들 상당수가 SUP로 눈을 돌렸다. 서핑보다 배우기 쉬우면서 파도가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만리포 서핑 인구의 20% 정도가 SUP를 즐긴단다.

바닷물이 해안 가까이 밀려온 오후 4시, 3m가 넘는 보드와 노를 챙겼다. 엠엘피서프 조현우 강사를 따라 바다로 나갔다. 보드에 엎드렸다가 일어나는 법, 노 젓는 요령 등을 배웠다.

바다로 들어갔다. 작열하는 태양은 뜨거웠지만, 물속은 시원했다. 무릎 꿇은 채 노를 젓고 파도가 약해지는 깊이까지 나갔다. 그리고 스탠드 업. 중심을 잡느라 사시나무처럼 두 다리가 떨렸다. “균형이 안 잡히면 무릎을 조금 굽히세요.” 강사의 지시를 따르니 금세 안정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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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해안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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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고 넘어지기만 반복하다가 체력이 고갈됐던 서핑의 추억을 떠올렸는데 SUP는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서핑은 엎드린 채 두 팔로 ‘패들’ 동작을 해야 하는데 SUP는 노가 있으니 편했다. 무엇보다 굳이 파도를 타지 않아도 되니 여유로웠다. 쓰러질 듯 기우뚱하다가도 중심을 잡으며 바다를 헤쳐나가니 대단한 기술을 터득한 것처럼 뿌듯했다. 두어 번 물에 빠지긴 했지만 도리어 시원했다. 노 젓다 지칠 땐 보드에 앉아 일광욕을 즐겼다.

오후 7시 만리포에 낙조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피서객은 모두 돌아가는데 SUP 장비를 챙긴 서퍼들은 하나둘 바다로 뛰어들었다. 보드에 드러눕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려견과 함께 SUP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국내 서핑 명소로 통하는 동해 쪽에서는 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태안=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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