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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수출 규제에도 한국 관광객은 와라? 상황 따라 달라지는 일본 말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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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람 말은 행동했을 때 믿어도 늦지 않다'

세계일보

22일 경남 거제시 칠천량 해전 공원을 방문한 ‘노 모어 왜란 실행위원회’ 회원들. ‘노 모어 왜란 실행위원회’는 일본에서 인권운동을 펼친 고 최창화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1992년 결성됐다. 이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말하고 있다. 사진=김해연 전 경남도의원 제공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한국말은 동사가 끝에 위치해 행동을 나타내는 동사를 읽거나 들어야 어떤 말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일본어도 한국과 문법이 거의 유사해 이 말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문법을 떠나 일본 사람들과 오랜 시간 접해보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했을 때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일본인들은 식당에서 점원을 부를 때 보통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이라고 한다. 간혹 나이 많은 남성들이 여성 점원을 “오네짱(언니·누나)”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남녀노소 구분 없이 “스미마셍”이라고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말은 일본어책에 ‘미안합니다’라고 나오는데 ‘심심풀이 해설’ 등 유래에는 ‘일본사람들은 식당 점원에게 주문을 부탁해 미안한 감정으로 이 말을 사용한다’는 해설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식으로는 ‘저기요’, ‘이모님’ 등으로 볼 수 있다.

즉 상황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단순 여행이 아닌 일본 사회에서 그들과 오래 마주한 경험이 있다면 처음에는 혼란스럽지만 나중엔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변명이 된다.

다른 예로 일본사람에게 무엇인가 부탁했다고 가정했을 때, 상대가 다소 경직된 얼굴로 이유나 구체적인 사항을 묻지 않고 “와카리 마시다, 리까이 시마시다(알겠습니다)”등으로 말하는 건 “당신이 말한 건 이해하겠다”는 말이다. 말장난 같지만 이 경우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겠다 그러나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러한 말을 한국식으로 이해해 일본사람의 도움을 기다리면 실망하기 쉽다. 그래서 ‘일본사람 말은 행동과 일치했을 때 믿어도 늦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상황이나 상대의 표정 등의 분위기나 친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고노 외무상 “민간교류 계속해야”

‘일본사람 말은 행동했을 때 믿어도 늦지 않다’는 말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이달 1일 반도체 소재 등 3개 원자재 품목의 대(對)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발표한 데 이어 한국을 우방국 명단인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한국에서는 불매운동이 일며 일본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항의가 이어지지만 일본 외무성의 수장은 “양국 사이 민간 교류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노 외무상은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서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국민들 사이의 교류가 제대로 계속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도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상황에 변함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은 얼핏 정치적 해석에서 벗어나 양국의 민간분야의 우호를 걱정하고 고민한 발언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뒷면에는 강제징용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일본 측 입장을 되풀이하며 한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만 그것을 들어줄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또 그의 발언은 일본이 보복 조치를 단행한 뒤 한일 관계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양국 사이 민간 교류가 잇따라 중단되는 가운데 나왔다.

일본 관광청과 재계에서는 ‘한국의 일본 불매운동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불매운동이 일본에 미칠 영향은 없다’고 자신했지만 한국의 불매운동이 날로 거세지며 지자체 민간 교류 사업을 시작으로 우리 국민들이 일본 여행을 잇달아 취소하는 등의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오자 관광업으로 생계를 잇는 자국민을 우려한 발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고노 외무상도 왜 한국에서 반발하는지 잘 안다. 또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고조돼 불매 운동으로 확산한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공식 석상에서는 듣고 보기 좋은 말로 체면과 잇속을 챙기려는 모습이 드러난다.

◆한국 못 믿지만 군사정보는 교류해야

아베 정부가 대 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하며 “안전 보장상 한국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일본 정부 당국자는 22일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전략물품(수출규제 품목)’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키로 한 것은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체계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오는 8월말 연장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언급하자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은 (협정) “파기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 안전보장에 있어서 한·미·일의 연계는 상당히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은 한국을 신뢰할 수는 없지만 한국을 통해서 계속해서 정보 교류는 하고 싶다는 모순된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앞서 고노 외무상도 일본 측 입장만을 되풀이하면서 한국을 통해 계속 관광 수입은 얻고 싶다는 모순된 생각을 드러냈다.

일본은 역사 왜곡을 비롯한 적반하장 반응 그리고 모순을 이어오고 있다. “민간교류 계속해야”, 군사정보는 교류해야 한다는 등 일본이 한 말을 이행하기 위해 그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 끝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본사람 말은 행동했을 때 믿어도 늦지 않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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