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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文 앞에서 한시 읊었던 문무일···총장 2년이 그 한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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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총장 검찰 떠나며 "수사권 조정 면밀히 살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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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 25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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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임기를 마치고 별도의 퇴임식 없이 검찰을 떠난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2년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으며 한시를 읊었다. 대만학자 난화이진(南懷瑾)이 저서에 인용한 주천난(做天難)이란 한시였다.

"하늘 노릇하기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는데 농부는 비 오기를 바라며 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하늘을 바라네"

하늘에게 바라는 것이 모두 달라 '하늘마저도 제 노릇 하기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문 전 총장은 청문회에서 자신에게 여러 요구를 했던 여야 의원을 생각하며 이 시를 떠올렸다. 검찰총장도 이럴진대 대통령은 더욱 어려운 자리라는 뜻을 담아 전한 덕담이라고도 했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문 전 총장의 지난 2년은 그가 읊었던 한시와도 같았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이후 정권을 창출한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을 맡으며 적폐 수사와 검찰 개혁, 검찰 과거사는 물론 현 정부를 겨냥한 수사까지, 그가 짊어졌던 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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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퇴임식을 마친 뒤 홀가분한 얼굴로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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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총장은 이날 오전 검찰을 떠나면서도 "개혁을 하려고 노력했는데 국민들 눈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수사권 조정을 해야한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그 내용에 대해선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주도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엔 끝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모두 구속한 최초의 검찰총장

문 전 총장은 재임 기간 전직 대통령과 전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하며 전례 없는 '적폐 수사'를 지휘했다. '최순실 특검'부터 이어져 박근혜 정부의 부총리와 장관, 국정원장, 청와대 수석과 경찰청장 등이 줄줄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포함해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을 기소한 것도 검찰 역사상 최초였다. 임기 후반에는 선배 검사였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까지 뇌물 혐의로 잡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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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돼 구속상태로 재판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2일 보석을 허가받고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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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차기 검찰총장의 존재감에 가려진 측면이 있었지만 수사를 총지휘했던 것은 문 전 총장이었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적폐수사에선 문 전 총장보다 윤 총장이 더 도드라졌다. 냉정하게 보면 검찰 수사가 청와대의 의중을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과거 적폐를 일소한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와 여당 지지자들은 검찰 수사에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 반대 진영에 있는 시민들은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여러 정권과 부침을 겪어왔지만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과거 정부보다 강도가 훨씬 더 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직 검찰 고위 관계자는 "더 나아갈 수 있던 수사를 문 총장이 절제한 측면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청와대도 몰랐던 현 정권 인사들의 수사

문 전 총장은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송인배·신미숙 전 청와대 비서관을 기소하며 청와대와 여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전병헌 전 수석과 관련해 청와대는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수사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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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6일 한국e스포츠협회의 자금 유용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 조사를 앞둔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의 표명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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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지검에서 맡았던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과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는 대검에서 추가 인력이 지원됐고 청와대의 공개 반발에도 전직 장관과 비서관이 기소됐다.

문 전 총장과 사법연수원 때부터 가깝게 지낸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어려운 시기에 총장을 맡아 여러 한계가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주어진 상황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 전 총장은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에서 권위주의 정부 시절 검찰의 과오를 언급하며 과거사 청산 의지도 밝혔다. 광주가 고향인 문 전 총장은 재수생 시절 광주민주화 운동을 겪으며 살아남은 것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문 전 총장 취임 5개월 뒤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검찰은 지난 2년간 487명의 과거사 피해자에 대한 재심 청구를 했다. 검찰이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려 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참모 반대에도 과거사 사과한 검찰총장, 사과 중 울먹이기도

문 전 총장은 검찰권 남용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검찰총장 최초로 사과했고 눈물을 흘렸다. 고 박종철 서울대생의 부친인 박정기씨를 찾아갔고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를 만났으며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숨진 희생자 유가족 공동체인 '한울삶'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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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해 7월 28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시민장례시장에 마련된 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 씨 빈소를 찾아 박 열사의 어머니인 정차순 여사와 인사하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두 번이나 박정기 씨의 요양병원을 찾아 문병하고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한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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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총장은 지난해 3월 병상에 누워있던 박정기씨에게 "저희가 너무 늦게 찾아뵙고 사과 말씀을 드리게 돼서 정말 죄송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박정기씨는 "고마워요, 고맙습니다"라고 답했고 넉달 뒤 별세했다.

검찰 참모들은 일부 과거사 사건에 대해선 문 전 총장의 사과를 반대했다고 한다. 검찰이 아닌 경찰의 과도한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와 오히려 검찰이 경찰의 잘못을 밝혀낸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전 총장은 "검찰이 경찰의 잘못을 밝혀내지 못한 것도 큰 잘못"이라며 사과를 이어갔다.

문 전 총장은 지난 6월 퇴임을 한달 가량 앞두고 검찰 과오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거기엔 권위주의 정부 시절 박종철·김근태 고문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함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청와대 민간인 사찰사건과 KBS 정연주 배임사건 수사 등도 포함돼 있었다.



수사권 조정 두고 반발, 양복 흔들며 “누가 흔드는 겁니까”

문 전 총장은 지난 5월 여야 4당이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을 부여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자 해외 출장 중 조기 귀국해 기자간담회를 열며 반발했다. 경찰이 검찰의 견제를 받지 않는 수사권 조정은 민주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이었다.

문 전 총장이 청와대와 여당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문 전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정권에 휘둘렸던 측면이 있다"는 질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 재킷을 벗어 흔들며 "옷이 흔들립니다. 어디서 흔드는 것입니까"고 작심 발언까지 했다. 검찰을 흔드는 것은 검찰이 아닌 정치권력이란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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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5월 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후 공항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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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엔 반발했지만 문 전 총장은 취임 직후와 퇴임 전 경찰청장을 먼저 찾아가 인사를 나눴다. 23일 민갑룡 경찰청장을 찾은 문 전 총장은 "경찰과 검찰 모두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게 첫째 임무"라며 "서로 힘을 합쳐 잘 완수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다만 24일 검찰을 떠나며 "수사권 조정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며 여권이 추진중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문 전 총장은 수사권 조정에 강력히 반발했지만 고위공직자비리사수처(공수처) 도입엔 찬성했다. 취임 직후 검찰의 범죄 첩보 수집을 담당했던 범죄정보기획관실을 폐지하고 특수수사 총량을 줄였으며 수사 과정에서 일선 검사들의 이의제기 권리를 도입하는 문무일식 검찰 개혁을 추진했다.



문무일의 조용한 개혁, 평검사들 "찍어 누르는 수사 사라지고 있다"

현직 부장검사는 "수사기관에게 정보는 힘이자 권력이다. 경찰이 정보 경찰을 폐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범죄정보기획관실을 없앤 건 검찰에게 큰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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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과 민갑룡 경찰청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손을 맞잡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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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에 있는 복수의 평검사들은 "수사 과정에서 검사들이 서면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기록을 남기는 제도가 도입돼 위에서 찍어 누르는 수사가 사라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폐지하는 등 문 전 총장이 보다 과감한 검찰개혁을 이뤄내지 못한 것에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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