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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러 군용기 영공 침해했는데…36년 전 소련은 민간 KAL기 격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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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종사 "군 정찰기 확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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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83년 9월 소련 영공에서 격추된 대한항공(KAL)007기의 블랙박스 본체를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있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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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타국의 군용기가 자국 영공에 들어오면 명백한 침범 행위로 간주한다. 영공은 해안선에서 바다로 12해리(약 22㎞)까지인 영해와 영토의 상공이다. 영공을 침범당하면 일반적으로 경고 방송→진로 차단→플레어 발사→경고사격의 단계를 거쳐 강제착륙을 시키거나,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격추한다.

심지어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민간기를 격추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게 1983년 9월 1일 소련(현 러시아)에 의해 격추된 대한항공(KAL) 007기다.

미국 뉴욕을 출발해 당일 저녁 서울에 도착하려던 KAL기는 오전 3시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근해에서 연락이 끊겼다. 정규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에 들어간 KAL기는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에 격추됐다. 탑승자 269명 전원이 숨졌다. 소련 정부는 사건 발생 8일만에 “자국 영공을 침범한 KAL기가 착륙 유도에 불응해 취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발표했다. 당시 전투기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2013년 언론 인터뷰에서 KAL기를 군 정찰기로 확신하고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왜 소련이 격추 명령을 내렸는지와 KAL기가 항로를 이탈한 이유 등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1978년에도 전투기로 KAL기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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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에서 수습된 KAL 007기의 잔해가 1983년 10월 김포공항에서 언론에 공개된 모습.[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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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1978년 4월에도 파리에서 출발한 KAL 707기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며 전투기를 띄워 미사일로 공격했다. 비행기는 인근에 비상착륙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2명이 숨졌다. 나머지 95명의 승객은 목숨을 건졌다. 국제사회는 소련군 전투기가 민간 항공기를 공격한 것을 강하게 비난했지만 소련은 "분명히 KAL기가 영공을 침범했다"며 격추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보다 한 달 여 전인 83년 7월에는 미국과 이란이 여객기 격추 사건으로 다퉜다. 당시 미국 해군함정 빈센스호가 이란 항공기를 군용기로 오인해 격추한 것이다. 빈센스호는 무장 선박과의 교전 중 이란항공 에어버스 여객기를 이란 공군의 F-14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했다. 이 사건은 오인 공격에 따른 과실을 주장한 미국과 고의로 민항기를 공격했다는 이란의 주장이 맞서면서 국제사법재판소(ICJ)까지 가는 외교적 분쟁으로 번졌다. 결국 미 정부는 ICJ를 통해 유가족에게 6180만 달러(약 728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이란과 합의했다.



미국, 이란 여객기 격추 땐 외교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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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 A-50 1대가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두 차례 7분간 침범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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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영공을 침범한 타국 군용기를 격추하는 사례는 최근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특히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 간에는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20일 이란 혁명수비대는 자국 영공을 지나는 미국의 군사용 무인항공기(드론)을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이란군은 남부 호르무즈간주 쿠흐모바라크 상공을 날던 미군 드론 ‘RQ-4 글로벌호크’를 대공 방어 시스템으로 파괴했다. 하지만 미국은 해당 드론이 이란 영공이 아닌 국제공역을 비행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의 드론 격추 사실을 보고받고 이란 공습계획을 승인했다가, 실행 직전 철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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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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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의 두 앙숙인 인도와 파키스탄도 영공 침범으로 부딪혔다. 지난 2월 파키스탄군은 인도와의 접경지역인 카슈미르에서 인도 전투기 2대를 파키스탄 영공에서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인도는 파키스탄 공군기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사건 후 파키스탄은 자국 영공을 폐쇄하며 타국 민간항공기의 진입을 막아오다 5개월 만인 지난 16일 다시 개방했다.



중국 전투기, 대만 상공 침범 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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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젠-11 전투기.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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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엔 양안(중국과 대만) 사이에도 긴장감이 돌았다. 중국 푸젠성에서 이륙한 중국 공군 젠-11 전투기 4대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대만 공군 전투기 경국호(IDF) 2대가 긴급 발진해 대치했고, 중국 전투기는 10분 동안 대만 상공에 머물다 돌아갔다. 중국 공군 전투기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은 것은 2011년 이후 8년 만이었다. 대만 국방부는 “중국의 행동은 국제적 책임의 결여이자 지역 안전에 대한 고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대만해협 중간선은 하나의 심리적인 선일 뿐”이라며 “중국에서는 이를 인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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