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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어제는 남의 회사 식당, 오늘은 경찰서 식당… 싼 집 찾아 떠도는 '점심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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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이라도 아끼려 거리 헤맨다

구내식당 '외부인 출입금지'에도 4000~6000원대 식권 끊고 줄 서

지난 16일 점심시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EB하나금융 빌딩 구내식당에서는 450명이 밥을 먹었다. 이 가운데 200여 명은 '방문객 식권'을 구매한 외부인이었다. 식권 가격은 6000원. 인근 증권사에서 일하는 강병수(44)씨는 "요즘 여의도 웬만한 식당은 백반 한 그릇도 1만원에 육박하는 경우가 많아서, 싼 곳을 찾다가 여기를 발견했다"며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온다"고 했다.

비싸진 밥값이 '직장인 점심 난민(難民)'을 양산하고 있다. 음식점 대신 남의 회사 구내식당이나 편의점, 경찰서 등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조선일보

"이 회사 구내식당이 싸고 양도 많대" - 22일 점심시간 서울 여의도의 한 금융회사 구내식당에서 외부인들이 회사 직원들과 함께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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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의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이선태(49)씨의 단골집은 삼성 계열사 구내식당이다. 가격은 5500원이다. 이씨는 "이곳 구내식당은 동료 사이에 '가성비 밥집'으로 통한다"고 했다. 이런 이들이 늘어나면서, 광화문 소재 A 신용카드사의 경우 구내식당 곳곳에 '직원들을 위한 전용 공간입니다. 외부인은 인근 다른 식당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붙여놨다.

구내식당만 있는 건 아니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김우람(27)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편의점에서 점심을 때운다. 김씨는 "재테크 종잣돈을 모으려고"라고 했다. 송파구 IT 회사 직원 황모(27)씨는 배달 도시락을 애용한다. 여의도 금융업계에서 종사하는 강모(25)씨는 인터넷으로 간편식을 주문해 회사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식사 시간에 꺼내 먹는다. 그는 "싸고 건강에도 좋다"고 했다. 경찰서 식당도 인기다. 서울 용산경찰서에서는 올 상반기에 4000원짜리 일반인 식권이 매달 평균 985장씩 팔렸다.

저가(低價) 프랜차이즈 외식업의 성장도 눈에 띈다. 4000원짜리 콩나물국밥을 파는 프랜차이즈 업체는 2016년 40개에 불과했던 점포가 2년여 만에 배(倍)로 늘었다. 6900원짜리 차돌박이를 파는 고깃집은 창업한 지 2년 만에 200호점을 냈다.


※이 지면 제작에는 김소진 인턴기자(이화여대 국어국문과), 김남현 인턴기자(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윤창현 인턴기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유승 인턴기자(고려대 사학과)가 참여했습니다.



[손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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