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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이슈 법의 심판대 오른 MB

MB가 내친 정두언 "MB 빨리 풀어줘라"···노영민에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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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 논설위원이 간다]

노영민 “정두언과 나는 특수관계”

지난 2월 주중대사 제안도 사실

빈소엔 여권 인사 더 많이 보여

문 대통령도 “어떻게 된 거냐” 관심



정두언 상가에서 보낸 이틀 저녁

중앙일보

정두언은 노래를 좋아했다. 앨범을 4장 낸 가수다. 의원시절 지역에서 축사 대신 노래를 했다. 2004년 7월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 전당대회에서 국회의원 밴드를 이끌며 노래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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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 전 의원이 굴곡진 20년 정치 인생을 뒤로하고 영면했다. “보기 드물게 매력적인 정치인이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명쾌한 논리와 거침없는 입담에 빠져들기 쉽다. 화법에 좌고우면이란 없다. 정책·전략 마인드로 전체 판을 잘 읽었고 싸움꾼 기질까지 갖췄다. 그래서 가끔 ‘사고’를 치긴 하지만 말이다.” 필자가 2011년 7월 고인에 관해 쓴 칼럼에 나오는 대목이다. 당시는 이명박(MB)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이었으나 권력 투쟁에 밀려 새 길을 모색하던 시절이었다. 그 후 ‘저축은행 사건 연루→구속→무죄→낙선’이란 고통을 겪는다. 최근 정치평론가로 제2의 길을 걸으며 순탄한 듯했다. 하지만 지병인 우울증이 그의 삶을 재촉했다. 지난 19일 영결식을 치렀다. 앞서 그를 추모하는 발길이 신촌 세브란스 영안실로 이어졌다. 그의 죽음을 맞는 정치권은 어떠했을까. 17~18일 이틀 저녁 상가의 풍경을 지켜봤다.

노영민 “MB 생각 끔찍이 하더라”

중앙일보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7일 오후 신촌 세브란스에 마련된 정두언 상가를 찾아 "그와 나는 특수관계였다. 남들이 모르는 우리 둘만의 특수한 뭐가 많았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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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5시 30분, 상가엔 의외의 장면이 연출됐다. 그 시각 접객실엔 범여권 인사들로 가득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조문 후 김부겸 민주당 의원과 자리했다. 그 옆엔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과 우상호·김영호·이재정 의원이, 또 한쪽엔 심상정 정의당 대표, 윤소하 원내대표가 눈에 들어왔다. 저쪽에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보였다.

평소 만나기 어려운 노 실장 테이블로 갔다. 그는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하던 정태근 전 의원과 마주 앉았다.

노영민=“친한 사이였어. 17~19대, 3대를 걸쳐 같이 활동했으니깐. 지난 2월에 봤지. 그때 MB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 건강이 너무 안 좋다고 걱정을 하더라니깐. 그러면서 구속집행정지를 해서 빨리 풀어주는 게 좋겠다고 해. 참~나 그러더라니까.”

정태근=“네 네.”

노영민=“그 정도로 MB에 대해 끔찍하게 생각하더라니까. 남들은 둘 사이가 안 좋은 거로 알고 있지만 정 의원은 MB 건강 걱정하면서 빨리 풀어주는 게 좋겠다고 했어.”

정두언은 한때 MB의 오른팔이었지만 정권을 잡은 후부터는 악연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아는 한 두 사람은 아주 불편한 사이다. 하지만 정작 MB가 구속되자 선처를 당부했다는 뒷얘기를 노 실장이 이날 전한 것이다. (※MB는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2018년 3월 구속됐다. 공교롭게 노 실장이 정 전 의원을 만난 후인 지난 3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정 전 의원 측 인사는 “겉으론 거칠게 말하지만 속은 여린 스타일”이라며 “구속된 MB에 대한 연민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 실장에게 정 전 의원과의 관계를 더 물었다.

Q : 고인과 어떤 인연인가.

A : “친했지. 남들이 모르는 우리 둘만의 특수한 뭐가 많아…. 특수관계였어.”

Q : 특수관계라니?

A : “하여간 여러 가지로….”

노 실장은 거기까지만 답했다. 두 사람은 57년 동갑내기에 한때 같은 상임위(환노위)에서 활동했다. 실제 노 실장이 밝힌 ‘특수관계’는 틀린 말은 아니다. 몇 달 전 정두언에게 주중대사 제안설이 돌았다. 이에 정두언은 긍정도 부정도 안 했다. 노 실장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나중에 정태근 전 의원에게 물으니 “사실이다. 지난 2월 노 실장이 정 전 의원을 보자고 해 만나 주중대사를 제안했다”며 “장관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거절하시라’고 했고 결국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자리에 함께한 강기정 수석은 “오늘 점심때 문재인 대통령께서 정 의원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시더라”고 전했다.

옆 테이블의 우상호 의원은 “오늘은 한 잔은 해야겠다”며 소주를 따랐다. 두 사람은 서대문갑·을에서 각각 3선을 한 사이다. 우 의원은 “당이 달라도 다들 많이 슬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MB 정권 초에 권력 사유화를 비판하길래 ‘형, 다친다’고 말렸다. 그랬더니 ‘정치 왜 하냐. 세상 좋아지라고 도왔는데 그게 아니지 않으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날 빈소에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 나경원 한국당·오신환 바른미래당·유성엽 평화당 원내대표 등과 이재오 한국당 상임고문, 김성태·장제원 한국당, 박지원 평화당 의원 등이 조문했다.

실제 정두언의 빈소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특히 여당 의원들이 “상대당이라도 좋아했던 의원”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두언은 의원 시절, 여야를 넘나드는 소통형 정치인이었다. 정치 평론가로 변신해선 스스로 보수라고 얘기하면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날 상가에서 벌어진 풍경은 여야를 넘은 ‘정치인 정두언’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상가 첫날밤에는 의원들이 잘 안 보였다. 오후 9시를 넘어까지 윤상현 한국당·김두관 민주당·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 정도만 있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알려진 상가에선 유명 정치인들이 방송에 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5시 이전에 와야 한다”고 귀띔했다.)

정두언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극단적 선택을 하던 날 오전까지 방송에 출연했던 정두언. 그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고, 가장 힘든 건 무엇이었을까. 이틀 동안 정두언과 가까운 인사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정리했다.

Q : 최근 상황이 어땠나.

A : “두 달 전쯤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다. 공황장애까지 왔다. 그래도 요 며칠은 괜찮았다. 8월에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특강을 한다며 계획까지 세웠다. 한차례 자살 시도를 한 적도 있어 주변에서 어떻게든 같이 시간을 보내며 지내려 했다. 지난 토요일엔 지인들과 등산을 했고, 일·월요일 같이 저녁을 했다. 사망 당일에는 오전까지 정태근 전 의원과 방송을 했다. 전혀 눈치를 못 챘다.”

Q : 무엇이 정두언을 가장 힘들게 했나.

A :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은 2013년 1월 구속 때다. MB 정권을 만든 장본인이 그 정권에서 구속돼 10개월을 감옥에서 살았다. 결국 무죄였지만 말이다. 권력에서 멀어질 때도 사람들이 떠났는데 감옥에서 나오니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였다더라.”

Q : MB 당선 후 그야말로 실세였다. 그러다 이상득 전 의원 측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A : “인수위 시절 서울 통의동에 사무실이 있었다. 정 전 의원이 사정기관 관계자 A씨와 통화를 하더라. 대선 과정에서 MB 당선에 발목을 잡을 뻔했던 ‘도곡동 땅’ 문제가 있었는데 그 자료를 가져오라고 했다. 통화에서 자료가 있느니 없느니 티격태격했다. 자료를 받았는지 모르겠는데 그 말이 MB 쪽에 들어갔다. 그게 아닌데 누군가가 ‘정두언이 MB의 아킬레스건을 쥐려 한다’고 했던 거 같다. 얼마 후 MB에게 불려가 롯데호텔에서 한 시간 넘게 깨졌다더라. 그다음부터 인사작업을 하는데 이상득 사람인 박영준이 나타났고 밀리기 시작했다.”

Q : 결국 권력에서 밀려나면서 내리막을 걸은 것이라고….

A : “그래서 권력이 무서운 거 아니겠나.”

Don’t forget to remember

중앙일보

18일 오후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빈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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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에도 빈소엔 여야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 조문객이 많아 저녁에는 수저가 바닥났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박경미·제윤경·박찬대 의원과 함께 조문했고 앞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도 왔었다. 둘째 날 인상적인 장면은 밤 8시쯤 한국당 의원들이 모여 당 걱정하던 모습이다. 최근 분위기를 반영하듯 정진석·이학재 의원과 조해진·조전혁 전 의원 등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했다. 정진석 의원이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해. 당이 중도 지점에 있는 사람들을 데려와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학재 의원은 “목소리를 더 내달라”고 호응했다. 나름 절박한 모습이었다.

여권에선 최재성 민주당 의원과 정청래 전 의원이 12시까지 자리했다. 전날에도 왔던 정 전 의원은 “일주일에 서너번은 만나 술도 먹고 그랬다. 집사람보다 더 많이 봤다. 그러다 황망한 소식을 들으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상가의 밤은 여느 때처럼 깊어갔다. 정두언이 가장 좋아한 노래가 비지스의 ‘Don’t forget to remember’(잊지 말아 주오)란다. 그 노래를 접객실에 틀어놓았다. 이런 상황이 올 줄 알고 좋아한 걸까. 그 노래는 상가를 떠난 지 오랫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신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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