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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신율의 정치 읽기] 총체적 난국 빠진 文정부 외교 역량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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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12일 전남도청에서 열린 전남 블루이코노미 경제비전 선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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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동조 아래 진행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한 일본인 교수는 ‘정부에서 지침이 내려왔다. 당분간 한국에 가 있으라’는 문자를 보냈더군요. 이 일본인 교수는 ‘이번에는 어쩌면 한국이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일본에서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조재길의 경제산책’ 일본 대학의 한국인 교수가 전한 내용, 2019년 7월 15일 보도)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봐도 남조선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2019년 6월 27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의 담화)

“조미 두 나라가 마주 앉아 양국 사이의 현안 문제를 논의하는 마당에 남조선이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으며 또 여기에 끼어들었댔자 할 일도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2019년 7월 6일 우리민족끼리 보도 내용)

“(취임 뒤) 3년 안에 최저임금 1만원(을 만들겠다던) 공약을 달성할 수 없게 됐다… 경제는 순환이다. 누군가의 소득은 다른 누군가의 비용이다. 소득·비용이 균형을 이룰 때 국민경제 전체가 선순환하지만, 어느 일방에 과도한 부담이 되면 악순환의 함정이 된다.” (2019년 7월 14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현 정권을 떠받치고 있던 두 개의 기둥이 있다. 하나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통한 한반도 평화정착론,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을 통한 경제성장과 분배다. 그런데 위의 언급을 보면, 그 두 기둥이 모두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 혹은 중재자 역할을 연일 부정한다. 북한 주장은 한마디로 “핵담판에서 당신들은 빠지고, 대신 남북경협이나 해서 우리한테 돈을 줘라”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운전자 혹은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상대가 그런 역할을 인정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태도는, 북한의 본래 전략인 ‘통미봉남’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미북 간 긴장 상태에서는 전략적으로 우리 역할을 인정했다, 미북 사이에 직접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본래 전략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만일 미국이 한국을 통해서만 북한과 상대하겠다고 나오면 문제는 달라진다. 하지만 미국이 그렇게 나올 확률은 희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협상을, 재선을 위한 외교적 ‘장식품’쯤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정권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던 한반도 운전자론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현 정부 또 하나의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소득주도성장인데, 이 역시 난관에 부딪혔다. 앞에 언급한 김상조 정책실장의 말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누군가의 소득은 다른 누군가의 비용이다… 어느 일방에 과도한 부담이 되면 악순환의 함정이 된다”는 말은, 결국 소득주도성장이 경제적 악순환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경제동향을 보면, 종업원을 둔 자영업자 수가 지난달 12만6000명이나 줄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이다. 반면 종업원 없이 혼자 장사하는 ‘나 홀로 자영업자’는 13만명 증가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상징되는 소득주도성장이 우리 경제, 특히 서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수치가 나오기까지 정부는 과연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이런 와중에 일본의 경제보복까지 시작됐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장기전에 돌입하면 우리 경제는 더욱 어려움에 빠지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일본과 장기전에 돌입할 경우 그 피해는 우리가 더욱 크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지적했듯, 일본 경제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웃돌 정도로 크다. 반면 우리는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0% 가까이 된다. 한마디로 우리는 수출로 먹고살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 국민이 벌이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일본에 대항하는 우리 국민들의 단결된 각오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일본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일본에 대항해야 하는데 그 방법을 찾기가 힘들다. 지금 우리 정부가 일본에 대응하는 방식은 주로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 우리가 전략물자를 북한으로 넘겼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을 때,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반박하거나, 아니면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를 통해 검증을 받자는 일종의 ‘사실 검증’을 통한 ‘경제보복 명분의 무력화 전략’이다.

이것만 갖고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항하기는 무리다. 하나의 명분이 무력화되면 일본은 또 다른 ‘소설(小說)’을 들고나올 것이다. 그러면서 경제보복을 장기간 끌고 나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도 일본에 ‘한 방’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일본을 물리쳤음을 강조하며 국민의 힘으로 대일 총력전을 펼치자고 주장했다. 공감이 가는 언급이기는 하지만, 12척의 전함(戰艦)은 국민이 모여 만든 배가 아니라 당시 조선 정부가 제공한 것이다. 정부가 일본에 구체적이고 강력한 대응책을 내놓으면서 국민에게 힘을 모아달라고 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 없이 힘만 모아달라고 하면 그 설득력은 반감된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의 사례로 일본 관광 자제를 들 수 있다. 일본은 내수에 의존하는 경제기에 가장 손쉽게 일본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일본 관광을 자제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일본의 급소를 타기팅하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따르는 ‘정부 주도형 대응’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그런 구체적인 ‘타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을 종합해볼 때 공통점이 있다. 해결책의 중심에 미국이 있다.

북한이 우리 역할과 존재를 무시하는 것도 미국과의 관계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할 것이고,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 방식 역시 미국을 통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도 이를 잘 안다. 그래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을 미국으로 급파했다. 김현종 차장은 미국에서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들에게 “공감대가 있었다는 것은, 외교라는 것은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제가 모든 것을 밝힐 수는 없지만 좀 세게 공감했다”고 말했다. 그날이 미국 현지 시간으로 7월 13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시간으로 7월 12일,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아직 미국이 중재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역시 NHK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중재할 예정은 없다”고 언급했다. 이런 일련의 발언을 종합하면 김현종 차장이 미국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이에 대해 미국 관리들이 ‘세게 공감’을 표했을 때, 또 다른 관리들은 “중재 계획은 없다”는 발언을 한 셈이 된다. ‘공감은 하되, 중재는 안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미국은 관리마다 다른 생각을 마음대로 주장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확실한 것은 지금 미국이 우리 측의 주장에 ‘공감’은 할지 몰라도 ‘중재’에 나설 생각은 없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북한은 미국과 직접 대화에 나서는 모양새고 일본은 미국의 중재에 대해 별 반응할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 미국도 한일 간 사안에 대해 중재에 나서거나 미북대화에서 우리의 역할을 인정하고자 하는 생각이 별로 없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현 정권은 외교나 경제적으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살다 보면 모든 일이 안 풀려 위기에 봉착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자신을 반성하며 솔직해지는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자화자찬한다든지 아니면 자기 변명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함과 현명함이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8호 (2019.07.24~2019.07.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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