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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다른 돈’이 돈다…1년 사이 6배 몸집 불어난 ‘지역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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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사회] 유행처럼 번지는 지역화폐 ①

할인받아 화폐 구매, 골목상권 소비

“매출 늘어”…지역경제 대안으로 부상

올해 광역·기초 177곳 2조3천억원 발행

‘묻지마 도입’…양적 확대 치중 우려도

“지역주민 참여와 관심이 성공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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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역화폐란 전 국민이 사용하는 법정화폐와 달리 특정 지역 또는 집단 내에서만 사용하는 돈을 말한다. 외국에서는 역사가 200년 가까이 됐지만, 한국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국내의 경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체 가치 실현을 위해 소규모로 지역화폐를 발행한 것이 시작이었는데, 최근 정부가 지역경제를 살린다며 ‘할인 상품권’ 성격의 지역화폐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외 지역화폐 실태 등을 두차례에 걸쳐 점검한다.

지난 10일 오후 찾은 30년 역사를 가진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삼미시장. 시장 중앙 건물에 걸려 있는 ‘삼미시장 상인회는 시흥화폐 시루를 환영합니다’라는 펼침막이 눈에 띄었다. 시루는 떡 이름이 아니라 시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 이름이다. 시장에서 족발·보쌈을 팔고 있는 박미영(가명)씨는 “하루 매출의 10~20% 정도는 시루로 결제하는 것 같다. 모바일이 가능해지면서 젊은 손님이 많이 늘었다”며 “시루 모바일은 카드와 달리 수수료가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탄생한 시루는 종이와 모바일 두 종류가 있다. 농협에서 파는 종이 시루는 상품권처럼 사용할 수 있고, 모바일은 앱을 깔고 계좌를 연결하면 거래가 가능하다. 시루를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은 백화점·대형마트 등을 제외한 약 5천곳으로, 시흥에 있는 소상공·자영업체(1만7천여개)의 30% 정도다. 시흥에 사는 김미선(가명)씨는 “밥이나 커피를 사 먹을 때나 학원비, 슈퍼 등에서 시루를 사용한다”며 “한달에 40만원까지 5~10% 할인을 받을 수 있어 안 사면 손해”라고 말했다. 이처럼 시루는 가맹점도 소비자도 이득이라 인기가 많다. 지난해 30억원에 이어 7월 현재 114억원어치를 발행했고 올해 말까지 300억원 규모를 계획하고 있다.

시흥이 시루를 만든 것은 지역경제와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서다. 시흥시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비중이 높고, 서울과 경기도 부천·광명·안산 등이 가까워 소득의 역외유출이 심한 편이다. 100만원을 벌면 45만원 정도는 시흥시 밖에서 소비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내가 사는 동네에 돈을 돌게 하겠다는 정책이다. 소비도 늘고 대기업 쏠림현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소상공인들의 상황이 나아지면 지역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시흥시, 2년 준비…지역화폐팀 조직 둬

시흥은 한발 더 나아가 민간과 지방정부가 긴밀하게 협력하고, 공동체 활성화에도 상당한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 전국에서 모범사례로 꼽힌다. 이재환 시흥시 주무관(지역화폐팀)은 “지역경제 활성화는 왜 해야 하나?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공동체 활성화라는 가치를 놓고 갈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시흥은 시민사회와 지방정부가 지역화폐 준비만 2년을 했다. 2016년부터 찾아가는 설명회 150여회, 지역화폐 학교 개설, 열린토론회, 시민 대상 설문조사 등을 진행했다. 시흥은 지방정부와 시민사회 30인으로 구성된 ‘시흥화폐 발행위원회’가 시루에 대한 모든 것을 논의하고 있다. 예컨대 경기도 다른 곳에선 지역화폐로 편의점 결제가 가능한데 시흥은 할 수 없다. 대기업인 본사에 수익이 많이 흘러가는 편의점은 가맹점에서 제외했다. 이 주무관은 “편의점을 넣었다면 지역화폐 활성화에 도움이 됐겠지만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가치는 훼손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위원회에서 오랜 논의 끝에 결정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시에 지역화폐팀이 있는 것도 시흥시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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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흥처럼 지방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는 ‘상품권 형태’의 지역화폐가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소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지방정부(광역·기초)가 발행한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는 3714억원인데, 올해는 2조3천억원으로 예상돼 1년 사이 6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방정부도 66곳에서 177곳으로 111곳이나 증가한다. 종이 화폐가 가장 많고 카드, 모바일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역화폐는 소비 촉진을 위해 유효기간(5년)을 둔다.

정부, 판매액 4%를 국비로 지원

지역화폐가 우리 사회 고질적인 문제인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아직 지역화폐가 지역경제를 얼마나 활성화하고 있는지 실증적인 연구는 부족하지만,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사이에서 “지역화폐 때문에 매출이 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며 인기가 치솟고 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조선소 등이 문을 닫으면서 직격탄을 맞은 군산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지역화폐(군산사랑상품권)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뜨겁다. 군산시가 지난해 11~12월 지역화폐를 사용하고 있는 골목상권 등 가맹점을 전수 조사한(8400곳) 결과, 66.5%가 매출이 올랐다고 대답했다. 정부의 연구 결과도 지역화폐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행안부가 지난해 1월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맡긴 ‘고향사랑상품권의 경제적 효과 분석 및 제도화 방안’ 연구 결과를 보면, 강원 양구군의 경우 지역주민이 타 지역 소비를 줄이고 지역 내 골목상권을 이용하면서 소상공인 1인당 추가 소득이 2.13% 늘었다고 분석했다.

중앙정부가 지역화폐 활성화에 재정을 투입한 것도 날개를 달았다. 행안부는 지역화폐 판매액의 4%를 국비로 지원한다고 밝혔고, 애초 올해 2조원 발행을 예상해 4%인 800억원을 내려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역화폐가 생각보다 인기가 있자 발행 규모를 2조3천억원으로 예상해 92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지방정부가 지역화폐를 복지정책과 연결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경기도는 산후조리비, 청년 배당 등 경기도의 대표적 정책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로 하면서 지난 4월부터 31개 모든 시·군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지역화폐가 퍼지고 있지만 시민사회 협력, 공동체 활성화라는 가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경쟁적으로 지역화폐를 도입하고 양적 확대에 나서는 등 남발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초단체 한 관계자는 “지역화폐 효과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소상공인의 요구가 많았다. 여기에 행안부가 발행액의 4%를 지원한다고 하면서 재정이 어려운 지방정부 입장에선 일단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곳곳에서 갈등도 생기고 있다. 올해 지역화폐를 시작하려고 조례안까지 만든 부산시는 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안일규 부산 경실련 팀장은 “지역화폐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제대로 만들어야 하지 않냐”며 “부산시는 지금까지 시민사회와 논의를 한 적도 없고, 지역화폐에 대한 구체적 방향도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초단체에서도 불만이 나왔다. 지난 9일 열린 ‘제2회 부산시 최고정책회의’서 노기태 부산 강서구청장은 “다른 시·도에서 한다고 해서 검토 없이 도입하면 안 된다. 지역화폐를 구·군마다 발행하면 발행비·운영비 등 불필요한 재정이 소요되고, 소지역주의에 매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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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단체 간 과도한 경쟁…“재정 따라가기 힘들 정도”

발행액수 최고치를 찍고 있는 인천을 바라보는 시선도 따갑다. 모바일앱과 선불카드가 결합한 ‘인천이(e)음카드’는 6% 캐시백을 받을 수 있는데, 기초단체 사이에 경쟁이 붙으면서 미추홀구 8%, 서구는 10%, 연수구가 한시적으로 11%까지 늘렸다. 쉽게 말해 100만원을 쓰면 연수구 주민들은 11만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캐시백은 세금으로 지원한다. 백화점·대형마트 등 인천에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300여곳을 제외한 편의점·커피숍 프랜차이즈 등 모든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고, 이용액수 한도도 없다. “안 쓰면 바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현재 발행액은 2303억원이 됐고, 이 속도라면 올해 말까지 1조6천억원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가 감당해야 할 세금만 640억원이다.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5일 열린 ‘인천이음카드’ 관련 토론회에서 “재정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결제 한도액을 정하거나 캐시백을 조율하는 문제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도 난색을 보였다. 행안부 관계자는 “예산의 한도가 있어서 과도할 경우 발행액의 4%를 다 맞춰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재정 문제뿐만 아니라 현금 여유가 있는 고소득층에게 세금(캐시백) 혜택이 많이 가고, 기초단체마다 캐시백 비율이 달라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지역사회가 지역화폐의 양적 확대에만 매달리지 말고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화해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전 한밭레츠, 경기도 과천 품앗이 등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우리나라 지역화폐는 소규모 단위이긴 해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뭉쳐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지역화폐를 만들었다. 지금도 40여곳 이상에서 운영되고 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교환하기도 하고,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나서는 경우도 있다. 물론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 수가 적어 확장성이 떨어지는 등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기에는 한계가 있는 모델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양준호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지역화폐는 시민의 참여와 관심 등 민간 거버넌스가 없으면 성장하기 어려운 사업”이라며 “기존에 있던 공동체 중심의 지역화폐 단체와 물리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서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병조 경기연구원 연구위원도 “지역화폐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주민, 소상공인,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사회적 기업 등 모두 모여 논의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지역화폐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화폐를 활용해 다양한 개혁을 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양준호 교수는 “지역화폐 시장이 커지면 프랜차이즈 업체의 경우 본사와 가맹점 사이에 불공정한 문제를 푸는 사회적 합의를 하거나, 지역에서 번돈을 다시 지역에 투자를 해야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개혁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또 “인천 남동공단에 볼펜 공장이 있다고 가정하면 가장 핵심 재료인 스프링과 심을 지역화폐를 이용해 지역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시스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넘서 지역 산업의 선순환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지역화폐·제로페이·온누리상품권…같은 점과 다른 점

소상공인·자영업자 혜택은 공통점

제로페이는 QR코드 기반 결제수단

온누리·지역화폐는 상품권 정책

온누리상품권과 제로페이는 지역화폐(상품권)와 성격은 다르지만 공통점도 많다. 헷갈려 하는 소비자도 있고, 조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2009년 7월 정부가 시작했다. 모바일과 종이 형태로 돼 있고, 5~10%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지역화폐와 비슷하다. 하지만 중앙정부(중소벤처기업부)가 주도하고 전국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전통시장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은 다르다. 지역화폐는 지방정부 주도, 지역에서만 소비, 지역경제 살리기 등의 성격을 가졌다. 온누리상품권은 지난해 판매액이 1조5천억원을 넘겼고 올해는 2조원까지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할인 혜택이 큰 만큼 일부 상인과 상품권 브로커들이 수천만원어치 상품권을 대거 매입한 뒤 은행에서 현금화하는 소위 ‘상품권 깡’을 하는 등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쪽에서는 “온누리와 지역화폐가 전통시장 상인들을 비롯한 소상공인들의 매출 증대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만큼 상호 협력 관계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로페이는 지난해 12월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소상공인들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낮추기 위해 도입했다. 소비자가 앱을 깔고 스마트폰으로 큐아르(QR) 코드를 찍으면 소비자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돈이 이체되는 방식으로, 전국 가맹점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가맹점 매출액에 따라 수수료는 0~0.5%로 신용카드보다 저렴하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에게 혜택이 간다는 점에서 온누리·지역화폐와 비슷하지만 큐아르 코드에 기반한 결제수단의 하나로, 상품권 방식인 온누리·지역화폐와는 다르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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