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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딜린저 시대의 무법 혹은 낭만(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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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딜린저 시대'라 불리는 대공황기 범죄시대의 대표적 악당 존 딜린저가 1934년 오늘 사살당했다. fbi.gov

존 딜린저(John Dillinger, 1903~1934)는 대공황 시대 미국 최악의 범죄자지만, 한편에선 미국판 ‘로빈 후드’라 불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는 경찰서를 4곳이나 습격했고, 주립교도소를 2차례 탈옥했고, 은행을 34차례나 털었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그 전신인 법무부 검찰국(BOI) 원년의 ‘공공의 적(Public Enemy)’으로 수배된 이탈리아 마피아가 아닌 미국 태생 범죄자였다. 그는 숱한 범죄 행각 중 단 한 번도 서민의 재산에 손대지 않았고, 밀고로 체포 위기에 몰린 적은 많았지만 시민을 볼모 삼아 그들의 뒤에 숨은 적도 없었다. 그런 정황 때문에, 또 당시 대공황 경제 위기의 거친 민심과 계급적 분노 때문에 일부 시민들은 그를 영웅시했다. 그를 소재로 한 마이클 만의 영화 ‘퍼블릭 에너미’도 그에게 우호적이었다. 딜린저 역을 맡은 배우 조니 뎁의 대사 즉 “경찰을 적으로 돌리면 살아남을 수 있지만 시민을 적으로 돌리면 살아남지 못해”란 말이 실제 딜린저의 말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30년대 이른바 ‘딜린저시대(범죄의 시대)’의 서민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프랑스계 미국인 아버지와 독일계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딜린저는 청소년기부터 싸움과 좀도둑질에 익숙했다. 20세에 미 해군에 입대했다가 불명예 제대했고, 결혼 후 식료품점을 털다가 체포돼 9년8개월 옥살이를 했다. 범행 일체를 시인하면 가벼운 형을 선고하겠다는 지역 검사의 말을 믿고 자백했다가, 끝까지 범행을 부인한 공범(징역 3년형)과 달리 중형(12년 형)을 선고받은 거였다. 가석방 후 본격적인 범죄행각의 바탕에는 국가와 공권력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었고, 이후 그의 범행 대상은 늘 주와 연방기관, 은행이었다. 범죄 희생자도 모두 경찰과 교도관이었다.

그는 루마니아 출신 불법 이민자였던 한 포주의 밀고로 34년 7월 22일 시카고 ‘바이오그래프 극장’ 인근에서 잠복 중이던 FBI 요원들에 의해 사살됐다. 당시 그는 애인(Evelyn Frechette)과 함께 W.S. 반다이크 감독의 갱 영화 ‘맨해튼 멜로드라마’를 보고 나오던 길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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