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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獨 쾰른의 유혹] 대성당과 맥주 그리고 향수…쾰른에 세 번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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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Koln·독일어 표기) 혹은 콜론(Cologne·영어 표기)이라 불리는 이 도시. 독일에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이름조차 생소할지 모른다. 쾰른은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에 이어 독일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고, 한국 직항 노선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1시간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딱딱한 숫자만 나열하지 말고 쾰른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알려달라고? 그래서 정리했다. 쾰른 여행의 이유가 돼줄 세 가지, 대성당과 맥주, 향수 이야기.

◆ 쾰른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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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은은하게 조명을 밝힌 쾰른 대성당(오른쪽 2개 첨탑 건물)은 쾰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꼽힌다. [사진 제공 = 쾰른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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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보는 일에 별 감흥이 없었다. 유럽까지 가서 지겹도록 성당을 찾아다니는 것이 이해가 안됐다. 그런데 이번에 쾰른 대성당을 보고 나선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이렇게 멋진 성당이라면 멀리까지 찾아가서 볼 가치가 있겠다고.

쾰른 대성당은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고딕 양식 성당이다. 1248년부터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됐는데 19세기 말 완공됐을 당시엔 세계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실제로 쾰른 대성당을 처음 보면 일단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곧 그 큰 건축물의 외벽을 빼곡히 채운 섬세한 조각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다.

쾰른 대성당은 쾰른 중앙역 바로 옆에 자리해 있다. 기차를 타고 쾰른에 도착하면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쾰른 대성당을 가장 먼저 보게 되는데, 그때 '우와~'라던가 '헉!' 하는 감탄사를 내뱉지 않기가 더 힘들다. 너무 멋진 것을 보면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벅찬 감정을 느끼지 않나. 가슴이 벅찼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성당을 보고 그런 감정을 느낄 줄이야. 성당에 다니는 종교를 갖지 않아서 그 깊이를 다 이해하긴 어렵지만,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은 다 같지 않은가.

그러나 쾰른 대성당은 건축미로만 유명한 곳은 아니다. 동방박사 3인의 유골을 모셨다고 전해지는 황금색 함이 이곳에 보존돼 있다. 동방박사 3인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페르시아, 바빌론, 아라비아 등지로 추정)에서 예루살렘까지 먼 길을 여행한 성인들이다. 그리스도교에선 성인의 유골이나 유품을 '성유물(聖遺物)'로 여기며 기적을 낳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1164년 쾰른 대주교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동방박사 성유물 함을 가져왔고, 이 성유물 함에 걸맞은 건물을 만들기 위해 쾰른 대성당의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동방박사 성유물 함을 보기 위해 수많은 순례자가 쾰른 대성당을 찾아온다고.

쾰른 대성당은 낮과 밤에 각각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특히 야경은 절대 놓치지 말기를. 라인강을 가로지르는 호엔촐레른 브리지(Hohenzollern Bridge)와 대성당에 은은한 조명이 켜지면 쾰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 쾰른 지역 맥주, 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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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맥주 `쾰슈`는 향이 진하면서도 목 넘김이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독일 하면 또 맥주의 국가 아닌가. 쾰른은 그중에서도 더 특별한 맥주의 도시다. 오직 쾰른에만 있는 맥주 '쾰슈(Kolsch)' 때문이다. 쾰슈가 왜 특별하냐고? 그 이야길 하려면 맥주 전문 용어를 좀 사용해야 한다. 최대한 쉽게 설명해볼 테니 잘 따라오시길.

맥주 양조 방식은 크게 상면(上面)발효와 하면(下面)발효로 나뉜다. 상면발효는 18~25도의 상온에서 발효액 표면에 뜨는 성질이 있는 효모로 단시간에 발효시키는 방식. 대표적으로 에일 맥주가 이렇게 생산된다. 향이 풍부하고 색이 불투명하며 알코올도수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하면발효는 바닥에 가라앉는 효모로 5~10도 정도의 저온에서 발효시키는 방식이다. 라거, 필스너 맥주를 이렇게 만든다. 목 넘김이 부드럽고 깔끔하며 색이 투명한 것이 특징이다.

1700년대까지 쾰른의 맥주는 모두 상면발효 전통을 따라 양조했다. 그런데 1800년대 초 하면발효 맥주가 쾰른에 수입돼 인기를 얻으면서 기존의 쾰른 맥주 양조장들이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쾰른 시의회는 쾰른의 맥주 시장을 지키기 위해 젊은 맥주 생산자들에게 상면발효 방식으로만 맥주를 양조하라고 강제하고, 쾰른 시내에서 하면발효 맥주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엔 경쟁력을 갖춰야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쾰른의 맥주 생산자들은 마침내 상면발효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하면발효 맥주에 대항할 수 있는 양조법을 개발해냈다. 일단 상면발효로 맥주를 만든 다음 하면발효 방식처럼 저온에서 숙성시켜 에일처럼 맛과 향이 진하고 풍부한 동시에 라거처럼 목 넘김이 부드럽고 깔끔한 맥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게 바로 쾰슈다.

쾰슈는 1960년대부터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해 쾰른 지역 고유 맥주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1986년부터는 오로지 쾰른에서 생산된 맥주만 쾰슈라는 명칭을 쓸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다.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만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쾰슈는 마시는 방법도 특별하다. 쾰른의 맥줏집에 가면 쾰슈를 200㎖ 용량의 가늘고 긴 잔, 슈탕에(Stange)에 담아 준다. 200㎖는 3~4모금이면 비울 수 있는 적은 양이다. 쾰슈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즐기기 위해 그런 잔을 사용하는 거라고. 금방금방 잔을 비우게 되므로 맥주를 추가 주문하는 과정은 생략됐다. 빈 잔을 코스터(컵 받침) 위에 올려두기만 하면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새 맥주를 채운 잔으로 바꿔준다. 그만 마시고 싶을 땐 어떡하냐고? 코스터를 빈 잔 위에 뚜껑처럼 올려두면 새 맥주를 갖다 주지 않는다. 오직 쾰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맥주 문화다.

쾰슈는 또한 쾰른 지역 방언의 이름이기도 해서 쾰슈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 일컫기도 한다고. 참 흥미롭지 않은가. 그러니 '맥주 덕후'들이여, 어서 쾰른행 티켓을 끊으시라.

◆ 쾰른의 물, 향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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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대표 향수 `오 드 콜론`. 파리나 가문이 8대째 같은 원료로 만들고 있다. [사진 제공 = 쾰른관광청]


향수 중 가장 연한 것을 '오 드 콜론'이라 부른다. '쾰른'의 프랑스식 이름이자 영어식 표기가 바로 '콜론(Cologne)'이다. 오 드 콜론은 프랑스어로 '쾰른의 물'이라는 뜻. 그런데 어떻게 쾰른의 물이 향수가 된 걸까.

그 이유가 궁금해 쾰른의 파리나 향수 박물관(Farina Fragrance Museum)을 찾아갔다. 오 드 콜론을 만든 주인공 조안 마리아 파리나(Johann Maria Farina·1685~1766)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그 옛날 조안 마리아 파리나처럼 가발을 쓰고 복장을 입은 가이드가 약간의 연기를 덧붙이면서 향수의 역사를 들려준다.

조안 마리아 파리나는 이탈리아에서 온 조향사였다. 쾰른에 살고 있던 그는 1709년 시트러스향이 나는 향수를 처음으로 만들어 출시했는데, 쾰른이 자신의 두 번째 고향이라는 의미를 담아 오 드 콜론, 즉 '쾰른의 물'이라고 이름 붙였다. 당시 오 드 콜론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거의 모든 왕실에서 사용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최초의 오 드 콜론은 레몬, 오렌지, 라임, 자몽, 베르가모트(Bergamot) 등의 오일을 추출해 만들었는데, 지금도 파리나 가문 8대손이 같은 원료를 사용해 향수를 제조하고 있다. 파리나 향수 박물관에서 이 향수를 구입할 수 있다.

한편 '4711'도 쾰른의 유명한 향수 브랜드다. 그런데 이 향수가 유명해진 배경이 재미있다. 파리나가 오 드 콜론을 출시한 지 100년쯤 지난 1794년, 쾰른의 상인이었던 빌헬름 뮐헨스(Wilhelm Mulhens)는 파리나의 오 드 콜론을 흉내 낸 모조품을 제조해 팔기 시작했다. 소위 말해 '짝퉁'을 판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시 독일을 점령했던 프랑스군의 나폴레옹이 이 모조품을 애용하면서 원조보다 모조품이 더 유명해져 버렸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오 드 콜론을 하루 3~4통씩 비웠을 정도로 좋아했다고.

브랜드 이름이 4711이 된 이유도 나폴레옹 때문이다. 그 당시 프랑스군은 쾰른의 모든 건물에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 주소를 부여했는데, 모조품 향수를 제조하던 공장 건물의 번호가 바로 4711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옛날 그 공장 자리에 '4711 하우스'가 있다. 주소는 달라졌지만 말이다.

[쾰른(독일) = 고서령 여행+ 기자]

※취재 협조 = 유레일·쾰른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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