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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영화 리뷰] 관객 사로잡는 한글의 탁월함… 교과서 같은 설명조는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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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우리 소리가 아무리 많다 한들 하늘의 수억 개 별보다 많겠는가?" 극 중 세종대왕의 나긋한 질문이 벼락처럼 들이친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는 한글 스물여덟 개 자모음이 완성되기까지의 숨은 과정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다.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에 새로운 상상력을 덧댔다는 점에선 2011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우리말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선 지난 1월 개봉한 '말모이'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나랏말싸미'는 한층 더 묵직하게 다가선다. 글자의 획 하나, 점 하나에도 호흡을 멈춘다. 그 장중한 리듬과 호흡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중들은 다 그리 성미가 까칠한가?" 쉬운 우리 글자를 만들고 싶어하는 세종(오른쪽)은 '숭유억불'을 주장하는 신하들 눈을 피해 산스크리트어 등에 정통하다는 승려 신미(왼쪽)를 만난다. /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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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송강호)은 1443년 신미 스님(박해일)과 만난다. 신미는 세종이 유언으로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내렸던 인물. 영화는 이 한 줄의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기존 학설 대신에 신미 스님과 승려들이 한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했다는 가설을 풀어냈다.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뒤튼 반전의 스토리지만, '그럼에도 한글은 결국 완성됐다'는 치명적 스포일러를 전 국민이 알고 있어서일까. 박진감이 넘치거나 새롭진 않다. 한글이 얼마나 정교하고 체계적인 단계를 거쳐 완성됐는지 보여주는 과정 자체가 오히려 더 신선하다.

산스크리트어·티베트어·파스파 문자를 놓고 씨름하던 화면이 서서히 명확한 점과 획으로 나누어지는 과정은 시각적으로 놀라운 쾌감을 안긴다. 영화를 보다 보면 한글이 얼마나 간결하고 아름다운지를 또한 새삼 느끼게 된다. 'ㄱㅁㄷ(고맙다)' 'ㅋㅋㅋ(큭큭큭)'처럼 궁녀와 승려가 마당에 초성 글자를 새기며 대화하는 대목이 압권. 한글의 탁월함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도 보는 이를 납득시킨다. 고(故) 전미선 배우가 맡은 소헌왕후 역할도 정중동(靜中動)의 매혹을 더한다. 그가 궁녀들을 향해 "언제까지 우리가 까막눈으로 살아야 하느냐"고 말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장중함이 그러나 절정으로 끓어오르진 못한다. 대다수 장면이 말(言)과 말의 충돌로만 이뤄져 자칫 무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데다, 우리만의 글자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세종을 보여주는 송강호의 연기가 그가 2015년 연기했던 영화 '사도'의 영조,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배우 한석규가 강렬하게 표현했던 고뇌하고 번민하는 인간 세종과 겹쳐 보이는 지점이 있어서다. "이 글자를 널리 보존하고 퍼뜨리자"는 신미 스님의 마지막 대사가 유난히 교과서적이고 설명적인 것도 아쉽다.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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