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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흥행대박 터트린 예대생 졸업작품 "외쳐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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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하 스웨그조선)’은 놀라운 뮤지컬이다. 선명한 주제, 참신한 형식·내용, 신나는 노래·춤 3박자가 모두 갖춰졌다. 더 놀라운 건 이제 막 뮤지컬 경력을 쌓기 시작한 제작·출연진이 이러한 성취를 이뤘다는 사실이다. 20여년간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한 PL엔터테인먼트가 마음먹고 제작한 첫 뮤지컬이기도 하다.

스웨그조선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이게 나라냐”는 자조가 만들어낸 ‘헬(지옥)조선’이라는 표현이 일상화된 요즘 세상에서 자유와 꿈이 넘치는 이상향으로서 ‘조선’을 외친다. 배경은 누구나 시조(時調)를 짓고 읊는 가상의 조선. 사대부는 평시조, 평민은 사설시조로 각각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온 나라가 소통하는 평화로운 시대다. 임금은 시조 경연대회 우승자를 ‘시조대판서’라는 실력자로 임명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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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의 졸업작품이 3년여 제작과정을 거쳐 정식 무대에 오른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조선을 배경으로 한 “우리의 작은 외침이 세상을 바꾼다”는 주인공들의 목소리가 큰 울림을 준다. PL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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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전형적인 보수·기득권층이라 할 중신 ‘홍국’이 ‘지금은 시조나 읊으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며 역심(逆心)을 먹은 데서 시작된다. “시조로 유언비어를 퍼트려 민심을 어지럽게했다”는 누명을 평민 출신 시조대판서에게 뒤집어씌우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전화(戰火)에 부인을 잃은 홍국에게 시조는 나라를 통치하는데 방해만 되는 금지해야 할 악습이다. 대신 ‘부국강병’에 집착하는 홍국은 ‘성장제일주의’신화가 지배해 온 우리 사회를 향한 작가의 비판이 담긴 인물이다. 홍국은 결국 왕까지 모살한 후 물정 모르는 어린 새 왕을 좌지우지하며 독재를 휘두른다.

홍국이 시조를 금지한 지 15년 후 무대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단’과 ‘진’에게 작가는 생생한 입체감과 생명력을 부어 넣었다. 누명을 쓰고 죽은 전 시조대판서 아들로 저잣거리를 떠돌며 자란 소년 단은 반체제단체 골빈당을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성장한다. 방황 끝에 나타난 단이 임금 앞에서 “왜 운명은 스스로 만들 수 없는가. 그저 남들이 살라는 대로 살아야 하나. 날개를 펼쳐라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외쳐라”고 노래(운명)하는 장면이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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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조선이 부끄러워야만 하나. 정녕 이것이 당연한 일인가. 후손들에게 당당히 물려줄 나라. 누구나 꿈꾸지 않겠는가. 간절한 소망은 이뤄지리. 꿈꾸던 내일이 찾아오네. 외쳐 조선”이라고 단은 목놓아 부른다. 2017년 촛불시민혁명 즈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스웨그조선 주제가 선명히 드러난다.

연출 우진하는 “자신의 나라를 부끄러워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단처럼 ‘이것이 정녕 당연한 일인가’라고 당당히 외쳐보는 것”이라고 작품해설을 통해 밝혔다. 작가 박찬민도 “미성숙한 개인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며 그 가치를 느끼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그 성장은 운명이라는 절대적 장벽을 넘어서며 기득권으로 대변되는 절대 권력자를 쓰러뜨린다. 이런 결론은 사람이 왜 함께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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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국의 딸 진은 골빈당의 조력자이자 단의 성장을 인도하는 매력적인 인물. “옳다고 믿는 일에 주저해선 안 돼“라며 “나의 길은 내가 선택해. 내 운명을 거부하겠어(나의 길)”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무대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마지막 퇴장까지 내내 ‘알파걸’로서 객석의 지지를 받는 캐릭터다.

이 두 주인공과 백정의 딸 ‘순수’, 평민 ‘기선’, 중인 ‘십주’ 등 골빈당이 다양한 백성들과 함께 모여 부르는 ‘이것이 양반놀음’은 스웨그조선의 대표곡이다. 탈춤에 랩과 힙합, 레게가 버무려진 신나는 무대다. 각종 밴드 악기에 점차 가야금, 소금, 거문고 등이 추가되며 흥을 높인다.

객석 반응 좋은 스웨그조선 음악은 12개의 국악기, 22개의 클래식 오케스트라악기, 7개의 밴드악기가 만든다. 국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융합했다. 실제 국악 장단이 흐르거나 이를 현대 음악의 형식에 맞게 편곡했다. 때로는 노랫말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데 딱히 랩·힙합을 갖다 썼다기보다는 창극이나 판소리의 한 대목으로 여겨진다. 그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고 흥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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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스웨그조선이 형식과 내용을 꽉 채운 건 햇수로 3년에 걸쳐 작품을 잘 숙성시킨 덕분이다. 특히 제작진 팀워크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의 2017년 졸업공연 작품이 콘텐츠진흥원, 문화예술위원회 등에 발탁돼 2018년 11월 쇼케이스와 5월 마로니에 거리 공연 등을 거쳐 본무대에 올랐다. 극작 박찬민, 연출 주진하, 작곡 이정연, 안무 김은총, 조연출 최아영, 제작PD 이수빈, 조음악감독 박민주 등 서울예대 출신들로 제작진이 채워졌다. 대다수는 서울예대 창작뮤지컬단 뮤트 출신으로 졸업작품 때부터 제작에 참여했다. 모두의 데뷔작인 셈이다.

스웨그조선은 배역에서도 단 역 이휘종·양희준·준, 진 역 김수연·김수하로 주역은 모두 신인급으로 채워졌다.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지난 17일 공연에선 이휘종·김수연이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연기를 보여줬다. 십주는 단의 삼촌이자 골빈당수로서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 배역인데 배우 이경수·이창용이 중심을 잘 잡고 있다. 배우 이동수가 맡은 조선인이 되려는 왜인 검객 ‘조노’도 인기 배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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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그조선 감상에선 ‘훌륭한 딕션’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뮤지컬에서 배우들의 부정확한 발성, 또는 음향 실패 때문에 관객이 대사를 놓치는 일이 벌어진다. 스웨그조선에선 출연진 대사가 대부분 또렷하게 들렸다. ‘미스 사이공’ 여주인공에 발탁돼 수년간 영국 런던 및 월드투어 무대에 선 후 스웨그조선으로 우리나라 무대에 데뷔한 김수하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가사와 대사가 잘 들려야 한다는 것”이라며 “가사와 대사가 잘 들려야 극을 이해하고 잘 따라올 수 있지 않나.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가사가 들리지 않으면 그 캐릭터를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그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매끄러운 스웨그에이지 전개에서 고민스러운 부분은 왕의 역할이다. 그토록 백성의 힘을 앞세우나 결국 ‘왕의 성은’으로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결말은 개선이 필요해보인다. 또 장차 있을 재연에선 더 큰 무대에서 생음악으로 더욱 생동감있는 공연을 보고 싶다. 8월 25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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