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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오골계’, ‘샤프심’ 털 때문에 얼마나 놀림받아보셨어요? |이슈파이 ‘털, 기묘한 이야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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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씨(30·가명)는 고등학생 때 친구들로부터 ‘제모 안 하는 애 처음 봤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다리 제모를 시작했다. 남자였던 과외 선생님은 “야, 너 수염 있다”며 인중털이 많다고 놀렸다. 스트레스를 받아 인중털도 제모하기 시작했다. 겨드랑이 제모를 시작한 건 대학생 때였다. 스터디를 같이 하던 남자 지인이 “여자가 겨드랑이에 털 나는 것 처음 봤다”며 놀렸을 때였다. 수치심을 느꼈다. 하기 싫었지만 제모를 했다. 스물세 살 때 연애하던 남자친구는 데이트하다가 삐져 나온 코털을 보고 말했다. “어! 코털이다.” 남자친구는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거나 은연중에 눈치를 줬다. 그러나 그는 코털 관리를 하지 않았다.

끝이 아니다. 스물다섯 살 때 남자친구는 겨드랑이를 가리키며 “요기 샤프심 났다”며 놀렸다. “남자친구, 남동생, 남자 동기 등이 썼던 용어죠. 대놓고 ‘관리 안 한다’고 말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너 샤프심이야’이라는 표현으로 올바른 여성상이 있는 듯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어요. ‘샤프심’라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는 시각이 있는 거죠.” 제모를 했다. 남자친구가 원해서 한 것일까, 스스로 원해서 한 것일까. “둘 다예요. 놀린다는 것은 남자친구가 원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사회적 시각 때문에 수치스러운 면이 있었고 (두 감정이) 같이 작용해서 제모했다고 생각해요.”

진희씨는 영업직으로 일하기 때문에 제모에 더 신경쓴다. “제 이미지가 곧 회사 이미지잖아요. 구매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회사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일까. “그건 아니예요. 사회 통념상 깨끗해야 한다는 이미지 때문이죠.” 그 사회 통념은 어디서 왔을까. 항상 치마를 입으니 다리를 내보여야 해서 다리 제모는 멈출 수가 없다. 영업직의 경우 남성도 눈썹 제모 등을 한다. 상사한테 제모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제모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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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옥(가명)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모했던 부위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눈썹, 인중, 겨드랑이, 손가락, 발가락, 무릎, 다리 등을 제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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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팔 들기 신경쓰이는 계절

여름이 왔다. 팔 들기 신경 쓰이고 물건을 건넬 때 팔과 옆구리 사이를 밀착시킨 채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게 되는 계절이다. 경향신문은 ‘제모 백일장’을 통해 “겨드랑이, 다리 등에 제모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었다. 여성들은 익명을 빌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줬다. 여성들의 제모 부위는 주로 겨드랑이, 다리 정도로 예상되지만 눈썹, 인중, 손가락, 발가락 등도 ‘필수(?) 부위’로 꼽힌다. 한 번 하면 계속 해야 한다. 깎은 부위에 털이 올라오면 더 지저분해져서다.

이미소씨(32·가명)는 여름마다 팔을 올리고 내리는 게 신경쓰여서 영구제모를 시도했다. 5회에 5~15만원, 레이저로 시술하는데 1~2분 밖에 안 걸리지만 매달 가야 한다. 털마다 자라는 시기가 달라서다. 병원에서는 8개월 정도 걸린다고 했다. 매달 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영구제모를 끝내면 ‘털과의 전쟁’이 끝난다 생각하고 참고 있다. 계기는 남자친구의 ‘놀림’이었다. “야, 너 털 있다”고 놀리는 게 싫었고 그냥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나일롱(25·가명)은 손가락에 나는 털에 대해 “길면 원시인스럽잖아”라는 말도 들어봤다. “카페에서 테이블에 손을 올려 놓고 있는데 친구가 ‘손가락 마디 털이 길다’ 얘기하는데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던 부위에 대해 말해주니까 ‘아, 털이 있었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회가 여성의 몸을 ‘마이크로 매니징’하는 것이라 본다. “부분부분 잘라서 얘기하죠. ‘너 허벅지가 너무 두꺼워, 너 왜 튼살 있어, 너 어깨가 왜 그렇게 넓어’라는 식으로 몸을 잘라서 보는 거예요.”

여성들은 내 몸을 사랑하겠노라 다짐해도 자꾸 사회가 주입하는 ‘완벽한 몸’에 자신의 몸을 대입하게 된다. 나일롱은 한 친구가 “요즘 너무 살쪘어, 인생 최고 몸무게야”라고 걱정했다가 바로 “아니야, 내 몸을 사랑할 거야, 바디 포지티브!”라고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탈브라를 하자, 탈화장을 하자 해놓고도 화장을 안 하면 얼굴이 좀… 기준을 잡기가 어려워요.”(진희씨)

영화 <러브픽션>에서 알래스카에서 살다가 한국에 온 공효진은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는다. 알래스카에서는 원래 겨드랑이 털을 안 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친구인 하정우는 ‘겨털이 있는 여자친구’를 힘들어 한다. “사회를 옮겼다고 깎아야 할까요? 개인이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포옥·가명) 하정우는 연애 위기 상태에서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라는 말을 “털보 만두만 먹고 털털한 여자가 좋아”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네가 겨털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게 아니라 너 없으면 안 되니까 아무 말이나 던지는 것 같은 거예요. 저는 그걸 보고 ‘네가 지금 뭘 깨우쳤는데, 정말 날 사랑하긴 해?’ 묻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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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옥(왼쪽), 진희씨, 나일롱(오른쪽)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제모를 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모두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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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피도 봐야 하는 ‘첫 제모’

송지현씨(37·가명)는 중학생 때 TV 속 연예인들이 민소매를 입어도 털이 없고 새하얀 모습을 보고 문구 가위로 겨드랑이 털을 잘라냈다. ‘제모’라는 단어도 모를 때였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방에서 잘랐죠. 그러다 살을 집어서 피가 맺히고 너무 아팠어요. 그런데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했어요. 다 잘라내면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진희씨는 집에 있는 일회용 면도기를 썼다가 ‘피’를 봤다. 살짝 미니까 털이 싹 밀렸고 신나서 밀다가 정강이 살을 깎아먹은 것이다. “뭐 할 말이 있겠어요. 정말 오래 고생했죠.”

나일롱은 20대 초반 미국 연수를 갔을 때 제모를 시작했다. 한국인 하우스메이트가 샤워실에 민트색 여성용 면도기를 놓아둔 것을 보면서부터다. 이후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민소매를 입은 친구가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제모를 하는구나’ 짐작하게 됐다. “외모를 관리하는 게 나의 가치를 올리는 행위로 보였어요.” 나일롱도 마트에서 제모 도구를 사서 그 친구 도구 옆에 뒀다. 샤워를 다 하고 나서 처음 제모를 해보니 약간 따끔따끔했다. 편하기만 하진 않았다. 여름에는 털이 없으니 오히려 땀이 더 흐르는 것 같았다.

포옥(가명)은 초등학생 6학년 때 워터파크 가기 전날 엄마가 제모를 해준 게 ‘첫 제모’ 기억이다. 엄마가 팔을 올리고 했고 면도기로 제모를 해줬다. “엄마는 ‘에티켓’이라고 했어요. ‘겨드랑이 털이 보이면 안돼’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요. 근데 항상 의아했던 게 엄마는 제모를 하고 아빠는 제모를 안 하는 거였어요.”

가족이 ‘압박’의 주체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저희 어머니는 살이 오르면 볼이 빵빵해진다고 ‘터질 것 같다, 살을 빼는 게 어떻겠니’ 하세요. 개구리를 처음부터 차가운 물에 넣고 익히면 익고 있는지 모른다잖아요. 저는 여성들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뭐지?’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라면서 다들 살아가는 것 같아요.”(진희씨) 포옥은 엄마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팔뚝살이 뚱뚱하다”라고 한 뒤 팔뚝살을 신경쓰기 시작했다. “팔을 딱 붙였을 때 팔뚝살이 늘어나는 게 신경이 쓰이고 점점 소매 입는 길이가 길어졌어요. 하체비만이라고 하셔서 굉장히 스트레스 받았어요. 일을 하면서 버티기 위해 먹어야 하는 열량이 있고 운동하기 어려운 스케줄이 있는데 ‘서양여자 같다, 바지가 터질 것 같다’고 하시니까 너무 화가 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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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씨(가명)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모했던 부위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눈썹, 인중, 겨드랑이, 손가락, 발가락, 무릎, 다리 등을 제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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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림의 대상이 된 ‘여성의 털’, 누구의 시선인가

포옥은 ‘오골계’라는 놀림도 받아봤다. “엄마도, 이모도 털이 빽빽하게 나는 편인데 깎고 나면 안에 심(?)이 남아 있잖아요. 뽑은 게 아니니까요. 초등 6학년 때였는데 애들이 소란스럽다고 (선생님이) ‘머리에 손 올려’ 했는데 모둠으로 책걸상이 놓여져 있다보니까 한두 가닥 난 것을 보고 남학생들이 심하게 놀렸었어요. 뒤에서 심하게 말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제모에 강박을 갖게 됐어요.” 사회는 ‘깨끗한 겨드랑이’가 ‘햐얀 겨드랑이’라 말하는 것 같다. 털을 깎는 게 아니라 아예 털이 나지 않았던 상태다. “겨드랑이 털을 다 깎고서 안에 심이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도 있고 착색 때문에 추가 시술도 이뤄지고요. 이중잣대가 심하다고 생각해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겨털 3㎝ 이상인 사람 손 들어”라는 식으로 개그를 하면 송지현씨는 화가 났다. “저는 꽤 길어서 손을 들어야 했거든요. 그걸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묘사하니까요.” 송씨는 남자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다리 털을 밀지 않고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 입으면 안되겠느냐”고. 남자친구는 “뽑아줄 테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우리 둘은 괜찮지만 남들 시선으로 볼 때 이상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그 ‘남들 시선’은 어디에서 올까.

자신을 ‘Sarah’라고 소개한 독자는 ‘겨털유감’이라는 글을 보내왔다. 전문을 소개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샤워하면서 겨털을 밀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겨털을 밀고 있지? 왜 중학생 민머리보다 짧은 이 털들을 이렇게 못 보겠는거지?’

기억조차 안 났다. 언제부터 제모를 시작했더라? 왜 시작했더라? 겨드랑이 털이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있나? 보기 싫었던가? 아. 개그 프로그램에서 모조 털을 붙이고 괴성을 지르는 개그우먼들이 웃겼었지. 나 스스로 겨드랑이 털이 웃긴 건, 보기 흉한 것이라고 자각하기도 전에 미디어를 통해 세뇌당하고 있었나? 그렇다면 나는 주체적인 여성이 되어 겨드랑이 털을 길러볼까? 길지도 않은 샤워 시간에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남편과 나는 욕실을 따로 쓴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화장실이 두 개인 집에 두 사람이 사는 것 뿐. 문을 열고 샤워하는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다. (왜 문을 열고 샤워하는지, 그걸 왜 또 바라보는지는 묻지 마시라) 나의 겨털에 대한 생각이 끝맺지 않은 어느 날 샤워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 겨드랑이 털이 너무 흉해. 밀어버리자.”

“아 왜? 뭐가 어때서? 이거 없는 사람이 없는데.”

“여름인데 땀도 더 많이 날 테고, 자기 더 냄새 나면 어떡하냐? 그냥 밀어버리자 깔끔하게. 밀어도 곧 다시 금방 길 거야.”

살살 달래듯 말했으나 내심 ‘너는 네 겨드랑이 털이 흉하지도 않고, 이상하지도 않구나. X!’ 갑자기 열받았다.

“아 그냥 밀어!”

자기의 이익에 크게 반하지 않거나, 자기 몸을 크게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면 어지간하면 내 말을 들어왔던 남편답게 겨드랑이 털을 밀어버렸다

샤샤샤샥. 두껍고 굵고 고불거리기까지 하는 그의 겨털이 흐르는 물을 따라 뽈뽈뽈 흘러 내려갔다.

겨털을 밀고 다닌 지 한달 째 땀도 덜 나는 것 같고, 데오드란트의 효과도 더 있는 듯하다며 빙구 같이 웃는 남편을 뒤로하고 나는 또 샤워하며 겨털을 밀었다.


[영상]“나는 내 털을 사랑하기로 했어요…겨털 기르는 여자는 다 페미니스트인가요?” |이슈파이 ‘털, 기묘한 이야기’②

[영상]아재기자의 겨드랑이 제모 체험기…“제가 양도 아니고…” |이슈파이 ‘털, 기묘한 이야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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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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