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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영역=임나일본부?’ …한일 학자들의 ‘고대사 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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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의 시사문화재

가야사 주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일본쪽 “임나4현 영산강 일대 위치”

한국쪽 “고고학적 물증 거의 없어”

결론 안 나 가야사 연구 소홀 아쉬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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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역사에 대해 일본 학자들은 가야 대신 임나라는 명칭을 주로 씁니다. 임나의 영역을 경상도 동쪽부터 전라도 서쪽의 영산강 기슭까지 한반도 남부권 전역으로 보고 일본 교과서 지도에도 그렇게 영역을 표기해요. 문제는 이게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했던, 4~6세기 조선반도의 남부를 일본 야마토 정권이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강역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에요. 왜 아직도 낡은 견해를 고수하는 것일까요. 사실 임나일본부설의 중요한 근거로 내세운 게 바로 ‘임나 4현’이란 한반도 남부의 옛 지역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확실히 짚어야 합니다.”

토론자는 흥분했다. 지난 12일 전남 순천 도심의 한 호텔 회의장에선 한·일 학자들이 ‘고대사 토론 배틀’을 벌였다. 주제는 악명 높은 ‘임나일본부’와 그에 얽힌 옛 가야의 영역을 가려내는 것이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호남과 영남 경계의 가야’란 제목으로 연 학술 심포지엄의 일부였다. 포문을 연 이는 순천 운평리 가야 고분을 발굴한 이동희 인제대 교수였다.

그가 토론에서 언급한 임나 4현 내용은 7세기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의 512년 게이타이 천황 6년조 기록에 나와 있다. 백제 사신의 간청으로 왜국이 지배하던 임나국의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라는 4개 현을 천황의 명으로 떼어주었다는 대목. 당시 왜곡된 사관이 반영된 기록인 만큼 현재 국내 학계는 백제가 가야의 땅을 영역화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교수는 공격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영호남에 걸친 가야의 서쪽 경계를 논할 때 임나 4현 위치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국내 학계는 전라도 동쪽 섬진강 기슭의 순천·광양·여수 일대를 실제의 임나 4현이자 가야의 서쪽 끝 가야 4현으로 봅니다. 그런데 일본 쪽 연구자들은 임나 4현을 여전히 구체적 근거도 없이 전라도 서쪽 영산강 일대에 있었다고 봅니다. 식민사학자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이런 설을 낸 이래 100년 이상 고집하고 있어요. 일본에서 오신 발표자도 스에마쓰 견해를 따르고 있네요. 들어보니 임나 4현 위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회피하고만 있어요.”

그가 지목한 발표자는 다나카 아키라 사가대 명예교수. 한국 고대사에 두루 해박한 친한파 역사학자다. ‘일본에서 본 영호남 경계지역의 가야’에 대해 <일본서기>의 기록을 중심으로 논지를 발표했는데, 일본 학계의 고루한 견해를 답습하고 있다며 이 교수가 강하게 비판하는 질의를 제기하자 다나카는 곤혹스러운 기색을 띠었지만 차분하게 답변했다.

“임나 4현 위치에 대한 제 학설은 스에마쓰 견해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보완한 것입니다. 저는 스에마쓰의 <임나흥망사>를 체계적으로 비판한 책을 내기도 했고, 일본 학계에서도 스에마쓰 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전무합니다. 스에마쓰가 임나일본부설의 입장이니까 그가 세운 임나 4현 위치설을 수정해야 한다면 학문적 태도가 아닙니다.”

그는 “<일본서기>에 언급된 임나 4현은 가야의 서쪽 경계를 의미하는 가야 4현과는 의미와 맥락이 다른 것”이라며 “역사적 진실과 부합하는지 여부를 떠나 <일본서기>를 쓴 당대 집필자의 생각이 무엇인지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게 내 입장”이라고 했다.

논란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사서와 사료의 성격을 철저히 파악하며 개별 사실에 대해 꼼꼼한 확인과 사료 분석을 거쳐야 한다고 다나카는 강조했지만, 임나 4현 영역에 대해서는 일본 학계의 설을 고수했다. 영산강 유역까지 임나 강역으로 둘 경우 입증할 가야 유적 유물 등의 고고학적 물증이 거의 없다는 국내 학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임나란 말은 <삼국사기>나 진경대사탑비 등 국내 옛 문헌에도 드물지만 언급된다. 그러나 <일본서기> 등 식민사학의 임나일본부설에 자주 나와 악용된 명칭인데다, 그 지역적 범위도 한·일 사서, 학자들 견해에 따라 금관가야, 대가야, 또는 가야 전체, 신라·백제를 포함한 한반도 남부 나라 전체 등 천차만별이어서 논의의 기준점을 잡기도 어렵다. 두 한·일 학자의 토론 뒤에도 임나 4현의 구체적인 위치를 둘러싼 쟁점, ‘반파’ ‘기문’ 등 미지의 가야 소국 성격을 놓고 학자들 간에 논의가 이어졌지만 명쾌한 결론에는 이르지 못했다. 20세기 일제강점기와 1960~70년대 고고역사학의 성장기를 거치면서 알게 모르게 임나일본부의 덫에 가려 외면하고 소홀히 했던 가야사 연구 역량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좌장으로 토론을 지켜본 이영식 인제대 교수가 총평을 말했다. “임나 명칭을 갖고 한·일 학자들이 왈가왈부하게 된 것만 해도 큰 진전입니다. 과거엔 <일본서기> 자체를 거짓말 사서라고 해서 인용하는 것조차 꺼렸는데, 이제 가야 지역 고고 발굴 조사가 진행되면서 일본 쪽 임나 자료들도 비판적으로 활용하고 공유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오늘 자리는 한·일 학계의 관심이 새롭게 모아지면 가야사도 알찬 내실을 갖출 수 있음을 나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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