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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달 넘어 더 넓은 우주로 인류의 꿈, 한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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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착륙 50주년 발자취 / 냉전이 부른 탐사 전쟁 / 소련 1957년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 / 美 압박감 커져 우주 개발 역량 집중 / 1969년 아폴로 11호 유인 탐사 성공 / ‘뉴 문 러시’ 본격 확대 / 中 ‘창어 4호’ 세계 첫 달 뒤편 착륙 / 日·印度도 탐사선 잇따라 발사시켜 / UAE도 ‘화성 도시 프로젝트’ 발표 / 민간 기업까지 투자 / 국가 아닌 민간 주도 우주개발 러시 / 스페이스X·블루오리진 등 대표적 / 국경을 초월한 협력 움직임 보여줘 / 한국 행보 지지부진 / 궤도선 2020년·착륙선 2025년 목표 / 2007년 기술자립화 목표로 추진 불구 / 정권따라 롤러코스터… 예산도 쥐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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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해 표면을 딛고 서 있는 비행사 버즈 올드린. 안면보호복의 헬멧에 닐 암스트롱의 모습이 반사되고 있다. 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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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해 표면을 딛고 서 있는 비행사 버즈 올드린. 이 사진은 그보다 앞서 달에 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이 찍었다. NASA 제공


1969년 7월21일 그리니치 평균시(GMT) 기준 오전 2시56분(미국 동부시간 20일 오후 10시56분).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다. 이 역사적 순간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달은 더는 ‘동화 속 상상의 소재’가 아닌, 인류의 역량을 총 결집한 연구와 탐사의 지향점으로 떠올랐다. 생명체가 발붙이기 힘든 척박한 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래 희망은 과학자나 우주인이 됐다. 달 표면에 인류의 첫 발자국을 남긴 암스트롱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고 밝혔다.

인류의 역사적인 달 착륙이 이뤄진 지 반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달 탐사는 여전히 항공우주 개척의 제1 목표다. 각국이 경쟁을 벌이던 시기를 지나 민간 기업까지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또한 우주개발의 대열에 합류했지만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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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련의 경쟁으로 시작된 달 탐사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사람이 달에 착륙했다가 지구로 돌아와야 한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5월 이와 같은 목표를 발표했다. 1957년 소련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로 인한 충격 탓이었다. 96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씩 돌며 무선 표지를 발신하는 인공위성은 소련 체제의 기술적 우위를 자랑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미국에는 결정적인 안보 위협으로 다가왔다. 우주 공간에 로켓을 자유자재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은 곧 대륙을 넘어 얼마든지 미사일을 날릴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달 탐사 초기에는 필수 기술이 네 단계로 구분됐다. 일단 달까지 갈 수 있어야 하고, 착륙해야 하며, 달의 궤도를 돌고, 사람이 착륙할 수 있어야 한다. 소련은 미국에 ‘스푸트니크 쇼크’를 안긴 것을 시작으로 1959년 9월 루나 2호가 달에 충돌하며 달에 닿은 최초의 인공물체 기록을 세웠고, 1966년에는 무인탐사선 루나 9호를 달에 착륙시켜 사진을 전송받았다.

미국의 압박감은 날로 커졌다. 케네디 대통령의 선언에 따라 미국은 감세 정책을 펴는 와중에도 우주 예산만은 살렸고, 이 과정에서 전 세계의 관련 인재들이 미국에 집결했다. 그 결과 1968년 12월 아폴로 8호가 처음으로 사람을 태우고 달 궤도를 회전한 뒤 귀환했고, 이듬해 아폴로 11호가 사람을 태우고 달 표면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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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표면에 찍힌 버즈 올드린의 발자국. NASA 제공


이 시기 미국과 소련의 달 탐사 경쟁은 과열 그 자체였다. 두 나라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달에 착륙시킨 유·무인 탐사선만 65차례에 달했다. 특히 1971년 한 해에만 탐사선이 10번 달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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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기업까지 뛰어들며 우주경쟁 재점화

1970년을 앞뒤로 한 ‘달 탐사 극대기’ 이후 정치·사회적 목표와 함께 사람들의 관심도 시들해지며 30년 가까이 달 탐사 열기도 식었다. 그러나 1990년대로 넘어오며 달의 남극에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달 탐사 경쟁에 다시 불이 붙었고, 세계 각국은 물론 민간 기업까지 합류했다. 이에 따라 2005년 이후 선진국을 위주로 한 ‘뉴 문 러시(New Moon Rush)’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우선 중국과 일본, 인도 등이 경쟁 대열에 새로이 합류했다.

일본은 1990년 달 탐사선 ‘히텐’을 발사한 뒤 2007년 셀레네 프로젝트를 통해 달 지형 정보를 수집했다. 중국은 2007년 창어 1호를 달 궤도에 진입시켰고, 2013년 창어 3호를 발사해 로버(무인 탐사로봇) ‘위투(옥토끼)’를 달 표면에 안착시켰다. 또 창어 4호는 올해 초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다. 인도는 2008년 찬드라얀 1호로 달 궤도에 진입했다. 우리나라는 2020년 달 궤도선을 보낸 뒤 2030년 안에 탐사선을 발사한다는 계획이다. 달 탐사 자체가 주된 목표였던 인류의 우주탐사는 달을 전초기지 삼아 태양계와 그 밖의 ‘심우주’로 진출하겠다는 청사진도 나오고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화성’을 기치로 내건 아랍에미리트(UAE)의 최근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UAE의 국왕 셰이크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은 2017년에 ‘100년 뒤 화성에 인류가 살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내용의 ‘화성 2117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공격적으로 이 분야에 투자해 기존 선진국들이 밟아온 단계를 건너 뛰며 탐사선 발사, 우주인 양성 등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기존의 우주개발을 ‘올드 스페이스’로 구분 짓는 경향도 생겨났다. 민간 기업의 등장이 주요 변수가 된 ‘뉴 스페이스’의 개념은 미국의 항공우주 분야의 분석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제프 파우스트가 2007년 무렵부터 쓰기 시작하며 널리 퍼진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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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주도형의 올드 스페이스는 장기간에 걸쳐 큰 비용이 투입되지만, 세금에 기반하는 만큼 공공적 목적과 위험부담 회피 등이 특징이다. 이에 반해 뉴 스페이스는 우주 광물 채굴과 우주관광 등 상업적 비전이 추가되고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 중소기업까지 폭넓은 참여가 이뤄진다. 투자금에 기반하는 만큼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것도 사실이다. 테슬라 CEO(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을 비롯해 록히드마틴, 플래니터리 리소스 등 다양한 기업의 참여가 잇따를 전망이다.

우주개발의 대의를 위해 국경을 초월한 협력 움직임도 보인다. 달에 기지를 구축하는 ‘문 빌리지(Moon Village)’와 달 궤도에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루나 게이트웨이’ 프로젝트 등이 대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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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탐사 선언한 한국, 실현 가능성은

우리나라도 여기 참여하기 위해 2007년 달 탐사 로드맵을 세우고 달 주위를 도는 궤도선을 개발할 계획이다. 궤도선 개발에 성공하면 탐사 로버를 싣고 달 표면으로 내려갈 착륙선도 달에 보낼 예정이다.

2007년 노무현정부 당시 과학기술부는 달 궤도선을 2017년부터 개발해 2020년 발사하고 달 착륙선은 2021년부터 개발해 2025년 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술 자립화’를 목표로 우주탐사에 필요한 전기 추력기 기술, 궤도 제어기술, 우주항법, 로버 기술, 심우주 통신 기술 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들어 미래창조과학부는 달 궤도선 발사를 2017∼2018년, 착륙선 발사를 2020년으로 계획을 5년 정도씩 앞당기도록 수정했다. 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른 것이다. 문재인정부로 넘어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달 궤도선 발사 시점을 2020년으로 ‘원위치’시켰다. 달 착륙선의 경우 한국형발사체를 이용한다는 조건 아래 2030년 내 발사를 추진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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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달 탐사 계획은 과학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수차례 변경되는 혼란 끝에 다시 안정을 되찾은 듯 보이지만, 계획이 목표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선진국처럼 장기적인 목표 없이 정권교체 주기인 5년마다 기본계획이 바뀌는 상황”이라며 “일례로 제3차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에는 북한이 미사일을 수차례 발사했던 2017년 무렵의 상황이 반영돼 우주개발임에도 ‘국민 안전’과 관련한 문구가 많이 들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예산 반영을 비롯한 정부 지원도 미미한 수준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글로벌 우주탐사 현황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 세계 우주탐사 예산의 0.2%(2800만달러) 수준에 그쳤다.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미국(107조7600만달러·74.8%)이나 중국(17조2900만달러·11.8%), 일본(4조6400만달러·3.2%) 등은 물론 UAE(0.5%)에도 뒤지는 수준이다. 이로 인해 민간 분야의 참여는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신의섭 전북대 교수(항공우주공학)는 “경제 분야나 정치 분야에서 우주개발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이와 관련한 예산 증감하는 부분이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예산이나 기술 못지않게 인재를 확보하는 것도 중장기적으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인력과 관련한 안정적인 생태계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공공 분야 및 학계와 민간 분야(기업)의 비율이 1대 8 정도를 이뤄야 한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 인력은 2016년 기준으로 36만1292명으로 집계된다. 부문별로는 △공공연구기관 3만3만2664명 △대학 4만759명 △기업체 28만7869명으로 어느 정도 1대 8의 비율을 충족한다. 그러나 우주 기기 제작 분야의 인력(우주산업 실태조사)은 △공공연구기관 566명 △대학 419명 △기업체 1798명으로 전체 인력풀이 매우 적을 뿐 아니라 민간 기반도 매우 취약하다.

김종암 서울대 교수(기계항공공학)는 “기술개발이나 예산도 중요하지만 인력 양성이나 전체 계획을 기획할 인력풀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인재들이 의대에 쏠리지 않고, 과학기술 분야에도 유입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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