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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시민’ 포스코에 노동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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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시민’ 포스코, 잇단 사건·사고

올 들어 노동자 4명 숨지고 3명 부상… 산재를 산재라 말 못하는 분위기


‘강철제국’ 포스코가 흔들린다. 쇳물로 쌓아올린 철옹성 안에서 연일 노동자가 죽고 다친다. 이달에만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올 들어 4명의 노동자가 숨졌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지난해에도 포스코에서는 노동자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상대로 특별근로감독을 벌인 결과 해당 사업장에서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 414건을 적발됐다. 노동계는 ‘2019 최악의 살인기업’ 가운데 하나로 포스코를 선정했다. 최악의 살인기업 1위는 지난해 산업재해로 노동자 10명이 사망한 포스코건설을 꼽았다.

그러나 포스코는 스스로를 ‘기업시민’이라고 부른다. 기업시민은 ‘기업에 인격을 부여해 현대 시민처럼 사회 발전을 위한 공존·공생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주체’라는 의미다. 지난해 취임한 최정우 회장이 제시한 포스코의 이상향이다. 최 회장 취임 1주년을 맞은 포스코는 기업시민 성과 알리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기업시민 포스코에 노동자의 자리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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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생산 공정. 경향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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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부진 산업재해 수사

지난 2월 2일 설 연휴 첫날 오후 5시40분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품부두 하역기 상부에서 크레인 노동자 ㄱ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ㄱ씨는 병원으로 옮겨겼지만 끝내 숨졌다. 사고 직후 포스코는 사내 내부 상황 보고서를 통해 “ㄱ씨의 사망 원인이 심장 마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공식 재해 속보에는 사망 원인을 심장 마비로 지목한 적이 없다"며 "재해 속보에는 '경찰 조사, 부검 등을 통한 사인 판정 결과에 따라 유가족과 협의하겠다'라고 돼 있다"라고 말했다.

포스코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유족의 항의에 따른 시신 부검 결과 ㄱ씨의 사망 원인은 ‘장기 파열 등에 의한 과다출혈’로 확인됐다. 크레인의 와이어 고정 장비에 협착돼 숨진 것으로 추정됐고 두 달 뒤 ㄱ씨의 사고는 산업재해로 판정됐다. 부검을 하지 않았다면 ㄱ씨의 사인은 포스코 주장대로 심장마비가 됐을 것이다.

당장 산업재해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2월 경찰과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은 포스코를 상대로 각각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곧 수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수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고용노동부 포항지청 관계자는 “포스코가 시설과 안전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살펴보고 있다”며 “이번 사건처럼 수사가 오래 걸리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아예 없는 사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포스코의 산업재해 은폐 의혹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던 정의당 관계자는 “수사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포항이 포스코 왕국이기 때문”이라며 “지역 행정기관과 수사기관 모두 포스코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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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생산 공정. 경향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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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면 징계받는 노동자

포스코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는 노동자들이 섣불리 꺼내기 힘든 단어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포스코는 재해 경위를 조사한 뒤 안전부문 자체 심의위원회를 연다. 심의위원회에서 재해 발생에 과실이 있고 중대하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노동자는 인사위원회에 회부된다. 이후 인사위원회는 노동자에게 재해 책임을 물어 정직과 감봉, 견책과 같은 징계를 내린다.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치고도 징계가 두려워 산업재해 처리를 꺼리는 형편이다.

지난해 11월에 포스코 포항제철소 2연주공장에서 발생한 사고를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공장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ㄴ씨는 왼손 약지가 핸드레일과 협착하는 사고를 당했다. 주변에 있던 작업자는 ㄴ씨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가 손을 빼냈고 ㄴ씨는 병원에서 2주 입원 치료를 받았다. 산업재해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해당 사고에 대해 포스코 측은 산업재해 발생 보고를 하지 않았다. 재해 당사자인 ㄴ씨가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데다, 산업재해 발생 보고 대상 여부를 결정하는 재해로 인한 ‘3일 이상 휴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ㄴ씨를 진단한 병원에서도 ㄴ씨의 부상이 업무수행에 지장이 없고 휴업을 요하지 않는다는 소견을 내놨다. ㄴ씨는 휴가를 내고 개인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았다.

지난 5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ㄴ씨의 사고가 산업재해 은폐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에 진정을 제기했지만 조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ㄴ씨가 조사절차를 거부했었기 때문이다. 정작 사고를 당한 재해자는 산업재해 인정을 원하지 않고 노조에서 산업재해를 주장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고용노동부 포항지청 관계자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맞지만 산업재해 발생 보고 대상은 아니다”라며 “재해자가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상 추가 조사가 어렵고 포스코의 법 위반 여부도 가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포스코 기업시민보고서에 따르면 포스코의 최근 3년간 재해율((재해자 수/근로자 수)×100)은 2016년 0.06%, 2017년 0.02%, 2018년 0.04%로 2018년 산업재해율 0.54%(고용노동부 집계·근로자 100명당 재해자)보다 낮았고 철강산업 평균 재해율 1.10%보다도 낮게 나타났다. 노동계는 이 같은 수치가 회사 차원에서 산업재해를 은폐하거나 재해자들이 산업재해 신고를 하지 못하는 구조에 따른 결과로 의심한다. 특히 외주 협력업체는 재해가 발생하면 원청인 포스코와 거래가 끊길 수 있기 때문에 협력업체 관리자들 역시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 은폐를 강요한다고 노동계는 보고 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은 “포스코 같은 기업은 사내119를 운영해 재해가 발생하면 자체 라인을 먼저 거친 뒤에 외부에 알린다”며 “사고 수습과정에서 은폐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측에서 집계한 자료는 실제 사고와 재해 건수에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잇따르는 사건·사고에 맞서 포스코가 내놓은 카드는 ‘기업시민’이다. 송호근 포항공과대학교 석좌교수는 저서 <기업시민의 길>에서 국내에서 기업시민적 요건을 갖추고 기능을 수행할 준비가 된 기업으로 포스코를 꼽았다. 포스코 역시 공존과 상생을 비롯한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겠다며 착한 기업 이미지 만들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0대 개혁과제를 발표한 포스코는 지난 3월 전략 자문기구인 기업시민위원회를 만들고 기업시민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포스코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핵심가치를 선포하고 2019년 재해율과 중대재해 발생자 수를 모두 ‘0’에 맞추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의 약속은 ‘공약(空約)’에 그쳤다. 노동환경은 여전히 재해로 얼룩져 있지만 포스코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권영국 변호사(포스코바로잡기운동본부 상임대표)는 “기업시민이라는 모호한 구호 아래 벌이는 포스코의 행태는 여전히 폐쇄적이고 폭력적”이라며 “외부의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지역사회 내에서는 법의 규제조차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포스코 측은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면 관련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일련의 사고와 관련해 경영진이 별도의 입장을 밝힐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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