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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한국 축구선수를 사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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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팀 바이엘 04 레버쿠젠에서 뛸 당시의 손흥민. [뉴스1]


유럽 축구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출국 러시가 시작됐는데, 박지성이나 손흥민 같은 걸출한 스타들이 그 흐름을 진두지휘했다. 이를 발판 삼은 후배들이 기회를 잡는 식의 선순환 구조가 20년 가까이 이어져왔다.

6월 FIFA A매치 명단 기준으로 유럽파는 5명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20%. 근래 흐름보다 부쩍 줄었다. 기성용, 구자철이 은퇴한 데 이어 이청용, 권창훈, 지동원, 이강인 등이 각자 사정으로 빠졌다. 다만 9월부터는 이 수가 다시 늘어날 참이다. 특히 눈여겨볼 곳은 독일이다. 분데스리가(1부 리그)뿐 아니라 분데스리가2(2부 리그)를 노크하는 빈도가 괄목할 만큼 늘었다.

‘차붐’ 때부터 믿고 쓰는 한국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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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온 구자철.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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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반부터 활약해온 구자철, 지동원(FSV 마인츠 05)이 여전히 건재를 과시한다. 둘은 손흥민이 떠난 뒤에도 줄곧 독일을 지켰다. FC 아우크스부르크와 계약이 만료된 구자철의 경우 무적(無籍) 상태로 새로운 팀을 찾고 있지만, 독일을 떠날 확률은 희박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에는 권창훈과 정우영이 SC 프라이부르크에서 한솥밥을 먹기 시작했으며 이청용(VfL 보훔), 이재성, 서영재(이상 홀슈타인 킬) 등이 2부 리그에서 또 한 시즌을 준비한다. 그 외 유스팀 혹은 하부 리그팀에서 땀 흘리는 한국 국적 선수도 숱하게 많다.

이는 축구 차원에서만 접근할 사안은 아니다. 단순 공놀이로만 보면 특정 지역에만 몰릴 수 없는 일. 분데스리가와 더불어 빅리그로 꼽히는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가 있다. 옛 영광을 재현하려는 이탈리아 세리에A 외에도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리그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독일에 편중된 이유를 알려면 양국이 이어온 관계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독일은 축구 이전에 연을 맺기 시작했다. 영화 ‘국제시장’에 나왔듯, 1960~1970년대 서독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가 민간 외교관 노릇을 했다. 머나먼 타지에 동아시아의 조그만 나라를 새긴 것. 10시간 남짓 직항 항공편이 생긴 요즘과 달리, 경유에 경유를 거듭해 만 하루가 꼬박 걸리던 시절이었다. 미지의 세계였던 독일에 한국인들은 ‘근면’ ‘성실’이라는 긍정적인 첫인상을 남겼다.

물론 축구는 별개다. 개인적으로 유럽을 왕래하며 확실히 느낀 게 있다. 축구를 바라보는 이들의 기준이 상상 이상으로 높다는 것. 그도 그럴 게 창단한 지 100년이 넘는 구단이 수두룩하다. 축구는 스포츠의 일부가 아닌, 대체 불가능한 일종의 종교다. 현재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는 이강인(발렌시아 CF)이 “유럽에서 한국 축구를 우습게 보는 경향도 조금씩 있어요. 그래서 제가 더 잘해야 해요”라고 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하물며 축구에 자존심을 바친 보수적인 이들에게 동양에서 날아온 선수가 성에 차긴 할까.

경기장 밖에서도 모범적인 한국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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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모습.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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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꼬를 튼 인물이 차범근이었다는 건 어쩌면 운명 같은 일이었다. 한번 써보고 별로면 다시는 찾지 않을 수도 있었거늘. 부지런하기로 정평 난 외국인 근로자, 그 나라에서 넘어온 선수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엘 04 레버쿠젠을 유럽 정상에 올려놨다. 수십 년이 흘러도 영웅 대접은 그대로다. 시내 지하철역 기둥 한 자리에 현역 시절 포스터를 걸어주는 건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일이 아니다. 여기에 손흥민이라는 슈퍼스타까지 탄생했다. 함부르크 SV 방문 당시 있었던 일이다. 현지 팬들은 한국에서 왔다는 필자에게 “소니(손흥민의 애칭)를 독일에서 더 보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빨리 영국으로 떠난 거냐”며 하소연하곤 했다. 그곳에서 데뷔한 10대 후반의 어린 선수는 이제 유럽 전역을 들었다 놨다 하는 최정상 윙어가 됐다. 그 밖에 양국 축구의 행정적 가교가 된 구자철 등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특정 소수만 잘해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올 수 없다. 일단 문은 열어놨고, 그 후로도 계속 드나드는 선수들이 있었다는 건 뭔가 궁합이 잘 맞았다는 얘기다. 실제 아우크스부르크 등 몇몇 팀은 지금도 한국인 유망주를 수소문한다. 관계자들이 국내로 넘어와 직접 관전하고, 또 선수들이 현지에서 테스트를 받고 오는 일이 빈번하다. 이는 한국과 독일이 축구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도 유사한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지에서는 한국 선수들을 가리켜 “모범이 된다”는 평가를 자주 내리곤 한다. 운동장 안에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밖에서는 사적인 일로 문제를 일으키는 법이 없다. 개성을 살린 독특한 캐릭터도 있지만, 대다수가 조금은 수더분하다. 단체의 규율과 체계를 중시하는 독일 쪽과 잘 맞는 대목이다. 독일 국가대표팀만 봐도 이런 특색이 잘 묻어난다. 특정 슈퍼스타에게 기대기보다 팀 시스템 하에서 서로 임무를 분담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곤 한다. 독일 분데스리가 리딩클럽으로 유럽 톱클래스인 FC 바이에른 뮌헨 역시 크게 요란스럽지 않다.

EPL은 제도, 프리메라리가는 위치가 문제

독일 외 다른 리그에 국내 선수들이 좀처럼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을 테다.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매기는 리그 랭킹은 시대 조류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그중에서도 잉글랜드, 스페인 쪽은 꾸준히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들 리그는 전반적으로 헤쳐가야 할 걸림돌이 적잖다.

고도로 상업화된 EPL은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가장 익숙한 리그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구가했고, 손흥민이 토트넘 홋스퍼에서 성공 시대를 쓰고 있다. 단, 제도적인 제한선이 높아지면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수는 뚝 떨어졌다. 이는 EPL 사무국이 워크퍼밋(고용허가제) 발급 기준을 강화한 시점과 맞물린다. EPL에 진출하려는 선수에겐 소속 국가의 FIFA 랭킹별 일정 비율 이상의 경기 수를 소화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데, 50위권 안팎이던 한국인 국적은 이 대목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손흥민도 2015년 토트넘 이적 당시 이 숫자를 채우지 못해 ‘이적료 1000만 파운드(약 147억 원) 이상일 경우엔 통과’라는 예외 조건을 활용한 바 있다. 왓포드 이적설이 돌았던 ‘괴물 수비수’ 김민재 역시 이 부분에서 애로가 있었다.

스페인은 또 어떨까. 지리적으로 가까워서인지는 몰라도, 이베리아 반도의 이 나라에는 예부터 남미나 아프리카 출신 선수가 많았다. 아시아 출신보다 낮은 임금으로 쓸 수 있는 이들이 즐비했으니 상업적 마케팅의 중요성을 체감한 팀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특히 한국은 중국, 일본과 비교해 시장 파워에서도 매력이 덜했다. 더욱이 인근 대륙에서 유입된 선수들이 공은 기가 막히게 잘 찼다. 개인의 일대일 능력에 비중을 둬 성장한 이들이었다. 한국에서 ‘천재’ 소리를 들었던 이천수, 박주영도 얼마 못 버틴 리그. 지금 생존한 이들도 유년 시절부터 현지 축구를 배우고 익힌 백승호(지로나 FC), 이강인 정도가 전부다.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그 밖에 팀당 비유럽(Non-EU) 쿼터가 3장에 불과하다는 점 등도 걸림돌이다.

독일의 강세는 추후 몇 년간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까지도 국내 기대주들이 진출했음은 물론, 이적이 허용되는 만 18세 나이를 기다려 계약을 맺으려는 이도 꽤 된다는 후문이다. 첫발을 잘 내디딘 리그, 그 신뢰를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할 장을 마련했다는 건 한국 축구라는 큰 틀에서 봐도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98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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