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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얼하게 여름나기 ‘마라탕에 굴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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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얼하게 여름나기 ‘마라의 습격’

처음 맛을 보면 얼얼함이 혀와 입술로 훅 들어온다. 그렇다고 묘하게 저린 이 느낌이 음식에 담긴 다른 맛을 덮어버리진 않는다. 가만히 음미하면 중국요리에 자주 쓰이는 두반장이나 땅콩소스, 팔각, 정향 등의 양념과 향신료가 어우러진 맛이 느껴진다. 물론 수저를 바쁘게 입으로 가져갈수록 처음의 얼얼함은 더욱 증폭된다. 마라(痲辣) 요리가 특유의 중독성으로 짧은 시간 안에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처음에는 고추기름과 고춧가루를 지금만큼 안 썼다. 한국사람들은 화자오(花椒) 맛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얼얼한 맛은 줄이고, 한국식 매운맛을 좀 더하니 반응이 좋더라고.”

서울의 대표적인 차이나타운으로 자리잡은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마라탕 가게 주인 김모씨(46)는 국내 마라 요리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지켜봤다. 흔히 조선족으로 불리는 한국계 중국인인 그는 10여년 전 서울에 온 뒤 식당에서 첫 일자리를 잡았다. 역시 중국인이 많은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에서 한국과 중국 손님 모두를 접대하며 두 나라 입맛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게 된 뒤 ‘마라탕을 팔면 어떨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미쳤다. 김씨가 동업자와 함께 가게를 낸 2011년에는 대림동에도 이미 마라탕을 파는 식당이 몇 곳 있었지만 대부분이 중국 동북지방 입맛에 맞춰 화자오, 마유(痲油)의 얼얼함은 강한 반면 한국식 얼큰함은 덜했다. 그래서 김씨의 식당은 맛이 심심하다고 느끼는 한국 손님을 위해 고추기름과 육수를 더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곧이어 새롭게 들어서는 다른 식당에서도 이런 시도가 이어졌고, 이 작은 변신은 곧 주변으로 빠르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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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식당에서 판매하는 마라탕.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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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요리 찾아다니는 ‘범마라연대’

마라 요리의 핵심에는 저릴 마(痲)로 표현되는 얼얼함에 매울 랄(辣), 얼큰함과 매콤함이 더해진 맛이 자리잡고 있다. 화자오 기름은 산초나 초피와 비슷하게 산쇼올 성분이 미세한 저릿함을 전해준다. 매운맛은 복합적이다. 마라 요리의 본고장인 쓰촨(四川)에서 출발해 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성 등 중국 동북지방을 거쳐 국내에도 전파됐기 때문에 식당마다 강조하는 지점이 다르다. 한국식 입맛에 맞게 태양초 고춧가루를 섞는 경우도 있고, 흔히 ‘일초’라고 불리는 중국 고추를 주로 쓰는 곳도 있다. 고추기름은 중국에서도 쓰이지만 육개장 같은 요리로 한국인의 입맛에 친숙하기 때문에 마라탕에는 널리 사용한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프랜차이즈형 마라 요리 식당에서는 한국식 입맛으로 표준화된 소스를 쓰는 경우도 많다.

좋게 말하면 현지화를 거쳐 맛의 ‘퓨전’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사례다. 반대로 보면 누구에게나 무난한 맛을 만드느라 본래의 개성이 옅어진 점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특히 젊은 연령층을 중심으로 마라 요리에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마니아들은 빠르게 늘고 있다. 처음엔 맛집 동호회처럼 시작했지만 꾸준히 마라 요리 정보를 취합해 공개하면서 마니아들로부터는 공신력 있는 안내자 역할까지 맡게 된 ‘범마라연대’라는 모임도 생겼다. 범마라연대의 초기 결성과정부터 참여해온 진소연씨(27)는 마라 요리의 매력이 프랜차이즈화되는 맛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범마라연대 구성원들은 정기적으로 마라 요리를 즐기고 단골 가게를 꾸준히 찾는 한편, 새로운 가게와 맛을 발굴하는 데도 열성을 보인다. 진씨는 아예 마라 요리를 찾아다니는 활동을 만화에 담아 웹툰 창작공간에 게시하기까지 했다. 그는 “각 마라탕 가게마다 맵지 않거나 맑은 국물도 있고, 커리나 타이 음식의 향신료를 쓰는 등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개점을 하는 것이 국내 마라 요리의 특징”이라며 “체인점들도 각기 마라탕 국물의 특징이 다른 편이라 프랜차이즈 식당의 단점인 획일화 문제는 잘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특징은 국물이 있는 탕으로 나오는 마라탕이나 볶음 형태의 마라샹궈 모두에 적용된다. 현재 대중화된 마라 요리는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주문만 하면 주방에서 알아서 조리한 뒤 내오는 방식과 손님이 직접 음식에 넣을 재료를 뷔페처럼 고르는 방식 두 가지가 병존하고 있다. 특히 뷔페식 식당에서는 건두부나 옥수수면, 넓적한 중국식 당면, 양고기 등 중국의 대중식사에서 흔한 재료들을 골라 넣을 수 있고 땅콩소스나 고추기름 등의 양념을 어느 정도 더할지도 결정할 수 있다. 매움의 단계는 물론 밥을 말아 먹을지 말지까지 손님의 취향에 다 맞출 수 있는 것이다.

프랜차이즈의 한계를 상쇄시키는 이런 특징은 마라 요리 식당이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할 맛집에서 언제든 쉽게 들를 수 있는 곳으로 유행시키는 데 일조했다. 중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를 중심으로 현지 맛에 가까운 가게가 들어서던 시기에서 곳곳에 현지화된 맛으로 변신을 시도한 인기 점포가 늘어나던 시기를 지나 국밥집이나 분식집만큼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라 요리 전문 프랜차이즈 영업을 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마라탕과 마라샹궈는 기본 국물과 양념은 계속 준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조리시간이 짧아 회전율도 높고, 손님이 재료를 고르는 양에 따라 매출도 늘어나는 구조라서 점주들의 부담이 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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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식당에서 판매하는 마라샹궈.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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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치킨과 마라떡볶이도 출시

마라라는 맛이 음식업계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유행 키워드가 되면서 마라탕·마라샹궈·훠궈 같은 기본 마라 요리 외에 다른 음식과 마라 양념을 접목시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간식인 치킨과 떡볶이가 마라를 만나 마라치킨과 마라떡볶이로 인기를 끄는 데다, 삼각김밥이나 인스턴트 라면 등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편의점에서도 마라풍 퓨전요리는 이미 인기메뉴로 자리잡았다. 한 편의점업체가 출시한 즉석식 마라탕이 출시 3개월 만에 판매량 15만개를 돌파하며 탕면과 볶음면, 삼각김밥, 도시락, 즉석 안주류 등 다양한 제품군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마니아층이 두꺼워지면서 중국에서 유행하는 마라 요리 문화와의 시차는 줄어들고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도 만들어지는 양상이다. 교류와 변형을 통한 일종의 문화융합이 나타난 셈이다. 한족 출신의 중국인 유학생 양여우란(29)이 한국 마라탕 식당에서는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원래 중국에서는 마라탕 국물이 기름지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어 밥을 잘 말아 먹지 않았는데, 진한 육수와 구수한 국물을 강조한 한국 식당에서는 밥과의 궁합이 좋아서 자주 먹게 됐다”고 말했다.

다양한 맛을 찾는 손님들만큼이나 그 수요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업주들이 늘어난 것도 마라를 통한 새로운 음식문화의 저변이 확대되는 이유다. 국내에 정착한 중국 출신 손님들에게는 현지와 가장 가까운 맛을 제공하면서도 ‘꼬치 무한리필’이나 한약재를 첨가한 국물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국경을 넘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식당들도 늘어나는 중이다. 마라 요리 역시 한때의 유행처럼 지나가버릴지 모른다는 경각심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마라 요리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모씨(50)는 “과거 찜닭이나 왕갈비탕, 쪽갈비처럼 반짝 인기를 끌었다 유행이 지나면 보기 힘들어지는 음식들을 많이 지켜봐왔기 때문에 전통적인 마라 요리를 넘어 대중의 취향이 반영된 식사문화를 만들려고 계속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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