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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벤처 열풍 뒤 ‘거품’ 꺼졌던 20년 전과는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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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국내 벤처 20년 어제와 오늘

“실제 시장 가진 스타트업 많아”

“일부 유행 분야에 지원 쏠리면

제조업 기술 등 소홀해질 수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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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춘 신생 기업’을 가리켜 스타트업 또는 벤처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벤처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1995년 설립한 벤처기업협회가 펴낸 <벤처 20년사>(2015년)는 ‘국내 벤처 1호’로 1980년 서울 청계천의 작은 사무실에서 창업한 삼보컴퓨터(현 TG삼보)를 꼽았다. 이후에도 연구개발자들이 주도한 1980년대의 기술집약형 벤처기업들이 미래산업, 메디슨, 한글과컴퓨터 등으로 간간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벤처 성장의 토대는 1990년대 후반에 마련됐다. 1996년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위한 주식시장인 코스닥이 개설됐으며 1997년 벤처기업육성특별법이 제정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열풍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벤처 열풍’이 불었다.

한겨레

이 시기 ‘벤처 열풍’과 관련해 고영하 엔젤투자협회장은 인터넷의 등장과 1997년 외환위기가 중요한 배경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초고속망이 깔리고 정보기술(IT) 혁명이 일어나면서 정부도 성장동력을 여기에서 찾던 때였다. 때마침 1997년 말 외환위기로 많은 연구개발 인재들이 대기업과 연구소에서 나오던 상황과 겹쳤다. 이후에 벤처 창업 붐이 일었다.” 김광현 창업진흥원장도 “삼성, 현대 그만두고 창업한 사람도 많았고, 교수도 창업했고 연구소 박사도 창업하던 때였다”고 회고했다.

대학에서는 창업보육센터가 생기고 ‘실험실 벤처’(이공계 대학 실험실을 기반으로 창업하는 스타트업)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벤처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 3월 이후 미국 나스닥과 국내 코스닥의 잇따른 폭락 여파로 ‘닷컴 거품’은 빠르게 붕괴했다. ‘벤처 한탕주의’ ‘묻지 마 투자’ 거품에 대한 자성도 일었다. 그 뒤 ‘암흑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2000년 1만곳을 넘어섰던 벤처기업(정부에서 인증받은 기업 기준)은 2005년께까지 계속 감소세를 보였다. 이후 체력을 기른 벤처 창업 생태계는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고, 올해 6월 기준 벤처 인증기업은 3만6천곳을 넘어섰다.

정부는 지난 3월 ‘제2의 벤처 붐 확산’을 정책 목표로 내걸었다. 벤처 인증기업 수나 민간 투자액 같은 지표로 볼 때, 기술 기반 창업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벤처 신규투자를 2018년 3조4천억원에서 5조원까지 늘리고, 자산 가치 1조원의 비상장 스타트업을 가리키는 이른바 ‘유니콘 기업’을 20곳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창업 생태계 안에서 투자금이 잘 순환되도록 투자회수를 촉진하고, 엔젤투자(개인투자)·크라우드펀딩(다중투자) 등을 늘리기 위한 투자제도 개선책들도 밝혔다.

최근의 스타트업 창업 붐에는 20년 전과 같은 거품 붕괴의 우려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지금과 20년 전의 창업 환경이 다르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정보통신기술과 규모가 크게 달라졌다. 20년 전 컴퓨터와 모뎀을 통해 연결되던 인터넷은 이제 모바일 기기를 통해 수천배 속도로 연결된다. 온라인 결제 기술도 발전해 새로운 플랫폼 시장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투자 제도도 개선되고 규모도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2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실질적인 시장과 매출을 갖춘 우수 스타트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창업 지원 정책이 인공지능 같은 일부 유행 분야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간 창업 지원 활동을 하는 한 전문가는 “정부의 창업 육성 의지는 크고 지원 규모도 역대 최대인 듯하다. 하지만 일부 분야에 지원금이 지나치게 쏠리다 보면 지원금을 쉽게 받으려는 일종의 ‘사냥꾼’도 생겨나고, 중요하지만 관심받기 어려운 제조업 기술 같은 분야는 소홀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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