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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브로맨스 주인공이던 두 스트롱맨, 어쩌다 사이가 틀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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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진 에르도안과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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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신화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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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롱맨'이라 불리던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감싸고 돌았다. 대내외의 따가운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브로맨스(브라더+로맨스)'를 자랑했다. 이랬던 둘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얘기다.

두 정상은 2년 전만해도 거침없이 서로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 대선 직후인 2016년 11월 미국내에서 일어난 반(反)트럼프 시위를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라 규정하며 트럼프를 편들고 나섰다.

그러자 이번엔 트럼프가 에르도안의 등을 긁어줬다. 2017년 4월 에르도안이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을 강행하며, 장기 독재의 길을 열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시달리자,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에르도안에게 축하 전화를 건 것이다.



'러시아판 사드' 놓고 갈등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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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러시아 화물기에서 S- 400 미사일 부품이 터키 공항에 하역되는 모습.[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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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의 반대에도 지난 12일(현지시간) 러시아판 사드로 불리는 지대공 미사일 S-400을 자국에 들여놨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가 S-400을 씀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NATO 회원국의 군사정보가 러시아로 유출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해왔다. S-400은 미 공군의 F-35 스텔스 전투기와 B-2 스텔스 폭격기도 포착해 격추하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기에 미국의 불만은 더욱 컸다.

미국 정부는 터키가 S-400을 도입하면 제재를 가하고 F-35 스텔스 전투기를 터키에 판매하지 않겠다고 경고해왔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14일 “이 상황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할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 이라며 으름장을 놨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도 16일 “터키에 말한다. 앞으로 당신들에게 F-35 전투기를 팔지 않겠다”고 맞불을 놨다.



에르도안 정적·쿠르드족 문제가 갈등 원인

사실 두 정상간 갈등의 씨앗은 그 이전에 잉태됐다. 그 중심에는 에르도안의 정적 펫훌라흐 귈렌과 쿠르드족이 있다. 에르도안은 자신의 권좌를 위협했던 2016년 7월 쿠데타를 주동한 인물로 현재 미국에 망명중인 귈렌을 지목하고, 미국 정부에 귈렌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자신에게 친밀감을 표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귈렌을 즉각 송환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에르도안은 트럼프에게 미국이 귈렌을 송환해주면 2016년 10월 간첩 혐의로 터키에서 체포된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50)을 풀어주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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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의 정적인 펫훌라흐 귈렌. 현재 미국에 망명중이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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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고도 귈렌 송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트럼프로선 자신의 주요 지지층인 개신교도를 의식해 브런슨 목사를 반드시 석방시켜야 했지만, 귈렌 송환에 반대하는 미국내 여론을 무시할 순 없었다.

이에 반발한 에르도안은 2017년 3월과 10월 터키 주재 미국영사관의 터키인 직원을 각각 쿠르드노동자당(PKK) 지지와 귈렌 추종 혐의로 체포하며 트럼프를 자극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지난해 8월 터키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며 보복 행동에 나섰다.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두 배로 높였다. 이같은 조치에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며 터키 경제가 악화되자, 에르도안은 결국 무릎을 꿇고, 그해 10월 브런슨을 미국에 송환했다.

에르도안은 쿠르드족 문제에서도 트럼프에 불만이 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싸우는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터키는 YPG를 자국 내에서 분리독립을 꾀하는 PKK와 연계된 테러단체로 규정한다. 에르도안은 트럼프가 전임 대통령과 달리 쿠르드족과의 연계를 끊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별다른 정책 변화가 없었다. 에르도안의 트럼프에 대한 실망은 갈수록 커졌다.



에르도안 친러 행보…트럼프 고민

에르도안은 새로운 동맹으로 러시아를 찾았다. 2016년 에르도안이 국내에서 발생한 쿠데타를 진압할 때, 러시아가 에르도안에 유용한 정보를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YPG와 적대적인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다. 에르도안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S-400를 도입한 이유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전략적 줄타기'를 해 몸값을 높이겠다는 심산도 있다.

당연히 미국은 에르도안의 친러 행보에 반발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6일 “‘적대세력에 대한 통합제재법’(CAATSA)에 있는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CAATSA는 러시아·북한·이란 3개 국가와 군사 거래를 하는 단체나 국가에 대해 미국이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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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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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트럼프는 16일 F-35를 터키에 팔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나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맺어왔다"고 말했다. 협상가 다운 면모를 보인 것이다.

트럼프는 브런슨 목사가 지난해 10월 석방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오바마 정부가 터키에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판매하는 것을 거절했기 때문에 에르도안이 S-400을 구매했다"고 옹호했다.

이어 “터키가 러시아산 미사일을 샀기 때문에 미국은 그들에게 F-35를 팔 수 없게 됐다”며 "(F-35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이 이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기 수출을 강화해 미국 경제 활성화를 노리는 트럼프 입장에선 무기구매의 큰 손인 터키를 놓치는 것이 달갑지 않다. 실제로 이스마일 데미르 터키 방위산업청장은 18일 “러시아도 전투기 구매를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귈렌 송환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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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진압 3주년을 맞은 15일(현지시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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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지정학적 중요성도 트럼프가 섣불리 에르도안과 등을 돌릴 수 없는 이유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터키는 역사적으로 국제 분쟁의 최전선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터키 남부 인지를릭 공군기지엔 미국의 전략 핵무기가 배치돼 있다. 미국은 이곳을 거점으로 러시아의 영향권 안에 들어간 시리아를 압박하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견제도 했다. 만일 터키가 미군의 인지를릭 기지 진입을 막는다면 미국으로서도 곤란해질 수 밖에 없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이 풀릴 여지는 아직 남아있다. 만약 트럼프가 에르도안이 원하는대로 귈렌을 터키로 송환한다면 두 정상의 관계가 급속히 회복될 수 있다. 실제로 미 정부가 브런슨 목사 송환에 대한 보답으로 귈렌 송환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지난해 12월 나오기도 했다. 미 정부는 이를 공식 부인했다.

그럼에도 귈렌 송환은 트럼프가 에르도안의 마음을 돌릴 가장 효과적인 카드란 분석이 나온다. 에르도안도 트럼프와의 갈등을 풀어야 할 이유가 있다. 미국이 실제로 터키 제재에 나설 경우 안 그래도 어려운 터키 경제가 더욱 나빠져 자신의 권좌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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