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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지정취소 아니라 ‘폐지’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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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재지정평가와 존폐는 ‘다른’ 문제…

일부 아니라 ‘전부’ 일반고 전환해야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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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평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자사고는 영구적인 학교 유형이 아니다. 시행령에 따라 5년마다 교육청이 학교 운영 성과를 평가하고 재지정해야 ‘자사고’ 지위를 유지할 수 있고, 재지정이 취소되면 일반고로 전환하는 한시적 형태의 학교 유형이다. 올해 평가 대상인 전국 24개 자사고 중 11개교의 재지정이 취소돼 일반고 전환이 결정됐고(교육부의 동의/부동의에 따른 재지정 취소 확정이 남아 있다), 13개교는 자사고로 재지정됐다. 그리고 이제 재지정평가는 자사고 존폐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평준화 교육의 보완책으로 시범운영되던 자립형사립고는 이명박 정부에서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통해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되면서 현재 42개 학교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자사고에 폭넓은 자율권을 부여하면 다양한 교육을 하게 되고, 전반적인 고교 교육의 다양화와 내실화를 선도하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공약 당시부터 자사고 정책은 부에 따른 교육 격차와 기타 고교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뜨거웠다. 고교 서열화와 고교 진학 경쟁으로 중학교 사교육비를 부채질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빠져나가 대다수 일반고를 황폐화할 것이라는 부작용이 심각하게 예견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자사고에 대한 대다수 평가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사고는 타당성을 잃은 실패한 정책이 되었다.

자사고 재지정평가 어떻게 볼 것인가



자사고 재지정평가에 대해 흔히 하는 질문이 입시 실적이 좋은, 이른바 공부 잘하는 학교, 학생·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은 학교를 왜 지정 및 지정취소를 따져야 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옳지 않다. 자사고는 우리 지역 명문고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가 아니다. 애초 자사고는 입시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교육을 목적으로 자율권과 학생선발권이라는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받아 설립된 목적이 있는 학교 유형이기 때문이다. 과학고에 과학 인재 양성을, 외국어고에 외국어 인재 양성을 기대하듯, 자사고는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과정으로 평가를 통해 최소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했다.

이번 재지정평가를 두고 자사고 쪽은 자사고에 유리한 기준은 약화되고, 불리한 기준은 강화된 불공정한 평가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재지정평가의 특징은 지난 평가를 교훈 삼아 자사고의 지정 목적인 학교 운영, 교육과정 운영 영역과 사회적 책무성에 대한 평가 기준을 강화한 것이다. 지정 목적이 왜곡돼 대입에 유리한 교육과정으로 특색이 변질되고, 사회적 책무성을 다하지 못했음이 확인된 자사고의 재지정 취소는 당연한 결과다.

재지정평가와 ‘자사고 존폐’는 다른 이야기



재지정평가와 자사고 존폐는 본질적으로 다른 주제다. 자사고 문제의 핵심은 좋은 자사고와 나쁜 자사고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 그래서 재지정평가로 자사고를 폐지하려는 정책은 한계가 있다. 자사고 문제의 핵심은 모든 학생이 누려야 할 교육의 다양성을 특정 학교를 만들어서 소수 학생만 누리게 했던 ‘자사고 정책’ 자체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자사고 정책은 왜, 어떤 이유로 실패했을까?

① 고교 서열화

지난 대통령선거 때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후보는 고교 서열화의 심각성을 인지해 앞다퉈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또는 선 지원-후 추첨 등을 약속했다. 고교체제 개선에 국민의 지지도 어떤 공약보다 높았다.

결과적으로 자사고 등장 이후 고교체제는 영재학교를 필두로 전국 단위 자사고-특목고(과학고·외국어고·국제고)-광역 단위 자사고-전국 단위 자율학교-특성화고/마이스터고-일반고 등 입학생의 성적과 대학 진학 실적으로 급속히 수직 서열화했다. 자사고 등장 이후 고교판 ‘스카이(SKY) 캐슬’을 향한 경쟁이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고, 고입 사교육과 선행학습은 이제 초·중학생들의 일상이 되었다.

특히 전국 단위 자사고는 자사고 위의 자사고로 존재하면서, 중학교 성적 우수자를 독점하고 이 선발 효과가 대학 입시 결과로 연결되면서 고교 서열화의 정점으로 군림하고 있다. 중학교 성적 우수 학생들이 자사고·특목고로 쏠리며 상향 평준화하는 사이, 상위권 학생들이 빠져나간 대다수 일반고는 성적에서도 학습 분위기에서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구조적으로 하향 평준화해 고교가 서열화되는 악순환을반복하고 있다.

② 교육과정 다양성은 어디에?

자사고는 특색 있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목적으로 지정된 학교지만, 그동안 대다수 자사고는 자율권을 남용해 일반고는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국·영·수 교과 중심의 입시 위주 교육과정을 운영해왔다. 다양한 학교를 만들라고 학생선발권이라는 특권을 주고 자율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라 했더니, 교육은 더욱 입시 중심으로 획일화되는 모순이 생겨났다.

“자사고가 일반고에 비해 국·영·수 수업 시간 비율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서… 우리는 일반고처럼 단순히 수능을 위한 수업이 아니라 수능과 무관한 ‘고급수학’ ‘생활영어’ 등의 수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런 시간을 포함하니 국·영·수 (수업) 시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 것 같다.”

지난해 12월14일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서 전국 단위 자사고 쪽 주장이다. 당시 자사고 쪽은 이 과목들의 편성은 수능과 무관하고 일반고와 같이 단순 수능을 위한 수업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과정을 다양화한 것이지 국·영·수 수업 시수를 늘려 입시 위주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능에서 여전히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킬러’ 문항이 출제되는 상황에서 이런 수업이 과연 수능과 무관하다고도 할 수 있을까. 고급수학·생활영어 등의 수업은 누가 봐도 그저 ‘수학’과 ‘영어’ 수업일 뿐이다.

③ 학력 격차와 분리교육

자사고는 학생선발권을 가진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8년 서울지역 일반고·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 신입생의 중학교 내신 성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국 단위 자사고 중 내신 석차 백분율로 비교할 수 있는 3개교의 경우 신입생 중 중학교 내신 성적 상위 10%에 해당하는 비율이 최대 평균 88.0%로 서울 지역 일반고 신입생의 8.5%보다 약 10.3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말은 전국 단위 자사고가 중학교 성적 최상위권 학생을 싹쓸이한다는 뜻이다. 자사고와 일반고의 학력 격차가 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 ‘선발 효과’다.

그다음은 경제적 배경의 차이다. 자사고에 진학하려면 학부모가 일반고보다 3배 이상 비싼 학비를 낼 수 있어야 한다. 2017년 기준 전국 단위 자사고 10개교의 연간 평균 학비는 1133만원인데, 서울 소재 일반고의 평균 학비 280만원과 비교하면 약 4배 이상이었다.

자사고를 희망하는 학생·학부모의 고입 사교육비 지출도 일반고 희망 학생들보다 훨씬 많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지역 일반고·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 신입생의 2017년 회계기준 학부모분담금을 분석한 결과를 보고,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3 학생들은 월평균 100만원 이상 고액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비율이 일반고 진학 희망자보다 최대 4.9배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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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해 ‘자사고 폐지’를



자사고 정책은 교육 양극화의 축소판이다. 자사고는 결과적으로 고교에서부터 계층 간 분리교육을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다 함께 살아가며 소통하고 공감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것일 텐데, 이렇게 동질적 집단으로 분리해 교육하는 환경에서 이런 능력을 배우기는 쉽지 않다.

현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는 고교학점제다. 정부는 처음에 고교학점제를 통해 고교 교육과정, 즉 수업과 평가를 학생 중심으로 개선하고 고교체제 개편과 대입제도 개선까지 이끌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고교 교육이 다양해지면 자사고·특목고 등이 필요 없는 환경이 돼, 결과적으로 고교체제를 단순하게 개편하겠다는 그림이다. 대입제도도 학생이 고교학점제를 통해 진로와 능력에 맞게 선택해서 이수한 과목의 학점이 진학하려는 대학의 전공과 연계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학교 유형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고교학점제로 일반고 안에 다양한 선택지를 두어, 학생이 진로와 관심에 따라 선택하도록 하고 각자가 수월성 영역을 발견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런데 맞물려 돌아가야 할 고교체제 개편과 대입 개편, 고교학점제가 계속 엇갈리고 있다. 자사고와 외국어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고교체제 개편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수능 중심의 정시 확대안을 발표하며 수능에 유리한 자사고·특목고 선호를 강화했다. 또 모든 일반고 학생에게 과목 선택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고교학점제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자유로운 과목 선택을 위한 내신 절대평가는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2025년으로 고교학점제 시행이 연기됐다.

자사고 정책은 분명 실패했다. 그런데 고교체제 개편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앞두고 정부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당초 계획한 2018년 고교체제 개편안은 2020년 하반기로 미뤄졌다. 사회적 합의로 고교체제를 개편하고 국가교육회의에서 결정하겠다고 하지만,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한 자리에 무엇을 채울지에 대한 청사진을 정작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평가는 자사고 폐지를 위한 적합한 수단이 아니다. 평가는 평가일 뿐, 공은 다시 정부로 돌아왔다.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의 지위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그 근거가 있다. 시행령 개정은 다른 모든 방안에 앞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조처이며, 정부 정책으로 가능한 사안이다. 해당 시행령의 근거 조항을 삭제하고, 해당하는 모든 학교의 신입생을 일반고 학생으로 선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대입 혼란을 막고 정권에 따른 정책 시행의 불투명성을 예방해 논란을 가장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학교와 학생을 서열화하고 줄 세우는 경쟁으로 내몰아서는 미래가 없다. 소수의 승리자를 위해 다수의 가능성 있는 아이들을 패배자로 전락시키는 제도 아래서는 개인의 경쟁력도 국가의 경쟁력도 키울 수 없다. 불공정한 출발선의 차이를 교정해 평등한 기회를 주는 ‘모든 학교가 특별해지는’ 고교체제로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근본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김은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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