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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전문가의 세계 - 이명현의 별별 천문학](34)별빛 관측의 기술 우주 비밀 풀다가 인류 삶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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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방법론 응용

경향신문

천체로부터 오는 빛을 모으거나 분산시킨 후 분석하는 것이 천문학 관측 연구의 중요한 핵심이다. 천문학 관측 기술은 의학은 물론 데이터 처리, 지구온난화 연구, 고화질 영상 등에 응용되고 있다. 사진은 MRI, 디지털 X레이 기기, 적외선 체온계, 내비게이션 등 천문학 기술을 응용한 기기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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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업으로 병원으로 연구영역 넓혀가는 천문학자들

별 탄생 관측 응용한 암 진단…데이터 처리·GPS 원천 기술 등

천문학의 기술이 의학서 경제·사회적 활용까지 인류 발전 ‘첨병’ 역할

‘암흑물질’ 같은 연구가 또 어떤 기여를 할지 누가 알겠는가


같은 학교에서 나보다 먼저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친구가 학문적 경력을 이어가지 않고 바로 회사에 취직을 했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던 나는 당시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천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으면 그냥 학교든 연구소든 들어가서 연구를 이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덜란드 국적의 그 친구는 전파망원경으로 나선은하를 관측해서 물리적 특성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관측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서 쓰는 일이 많았다. 프로그래밍에도 능숙하고, 이미지 프로세싱에도 능했다. 그 친구가 취직한 회사는 네덜란드의 기업인 필립스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의료기기를 만드는 곳에 취직했을 것이다. 관측한 천체를 분석하는 기술에 능통하다보니 그 기술을 기업에서 탐냈던 것이다. 순수 학문 분야인 천문학에서 쓰이는 기법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도움이 되는 형국이었다. 그 후로도 같이 공부하던 동료 여럿이 회사에 취직을 했다. 현미경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한 친구도 있었다. 이미지 프로세싱에 정통한 덕분이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 한 명은 병원 연구소에 취직을 했다. 천체를 관측한 데이터를 이미지 프로세싱 기법으로 분석하면서 진짜 신호를 찾아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는데, 그 방법을 암세포를 찾아내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잡음 속에서 고립된 천체를 찾아내는 방법이나, 정상적인 세포 속에서 암세포를 찾아내는 방법에 공통점이 있을 것도 같았다. 그 친구의 후일담은 듣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기업의 현장으로 몰려가는 것을 목격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깝게 지내던 후배 한 명이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병원에 취직을 했다. 네덜란드가 아닌 한국에서 최근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한참 전에 네덜란드에서 목격했던 일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천문학을 전공했지만 다른 분야에서 그 방법을 응용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전 그 후배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2019년 6월30일부터 7월4일 사이에 영국의 랭카스터대학교에서 열린 영국왕립천문학회 2019년 정기학회(National Astronomy Meeting 2019) 발표 논문 중 일부를 소개한 사진이었다. 여러 분과 중 하나였을 것이다. 분과의 주제가 ‘Impact of astronomy: ideas, inventions and people’이었다. ‘Astro-ecology: using astrophysics to help save the world’라는 발표가 눈에 띄었다. 천문생태학이라니! 국내 언론 보도를 살펴보니 이 학회의 발표 내용과 관련해서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가 쓴 ‘별 관측 기술로 암세포 찾아낸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영국 엑서터대학교 찰리 제인스(Charlie Jeynes) 박사 연구팀이 발표한 ‘Applying an astrophysics modeling tool to improve the diagnosis and treatment of cancers using theranostic nanoparticles’라는 논문 내용을 소개한 기사였다.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유방암과 피부암의 조기 발견에 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천문학은 빛에 대한 의존이 강한 학문 분야다. 천체로부터 오는 빛을 모으거나 분산시킨 후 분석하는 것이 천문학 관측 연구의 중요한 핵심이다.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별이 탄생하는 성운을 연구할 때도 빛의 산란, 흡수 그리고 재방출 관측을 하고 분석을 해서 성운의 내부 구조를 파악한다. 인체는 성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크기지만 이런 방법론을 적용하면 신체의 내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찰리 제인스 연구팀은 천체 관측에 사용하는 방법을 인체에 적용해서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정아 기자가 여러 가지 예를 정리해 놓은 대로 천문학의 기술이 다른 분야나 일상에 활용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어쨌든 매년 영국에서만 6만명 정도의 유방암 환자가 발생하고 1만2000명 정도가 사망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번 발표가 반가운 것이 사실이다.

‘천문우주과학이 인류 사회에 기여한 중요 성과와 창조경제를 위한 역할 가능성 및 투자의 타당성’이라는 문건이 있다(http://policy.kasi.re.kr/_prog/_board/common/download.php?code=insight&ntt_no=246&fbclid=IwAR2_bNm2CfYzJUdTZQhsjI87bKJSXvVyQx9P1S8EukYvgSYdNpv9_fTQOdo).

2013년 한국천문연구원 정책전략실이 만든 문서다. 당시 요구되던 ‘창조경제’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내세운 부분이 씁쓸하긴 하지만 천문학이 어떻게 실제 생활에 기여할 수 있는지 정리해 둔 중요한 문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문서의 여러 목적 중 하나는 기초과학인 천문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촉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런 전략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이 문건은 자체로서도 흥미롭다. 기초과학인 천문학이 경제·사회적으로 활용된 사례를 다양하게 정리해 놓았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천문학은 천체로부터 오는 빛에 크게 의존하는 학문이다. 빛은 좀 더 전문적인 말로는 전자기파라고 부른다. 빛은 파장의 크기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 눈에 보이는 파장 영역의 빛을 가시광선이라고 한다. 가시광선 영역보다 짧은 파장 영역 쪽이 자외선이다. 이보다 파장이 더 짧으면 X선 영역이 된다. 더 짧은 파장 영역의 빛을 감마선이라고 부른다. 가시광선 영역보다 파장이 긴 바로 바깥 영역은 적외선이다. 파장이 더 긴 영역을 전파 영역이라고 한다. 천체는 거의 모든 파장 영역에서 빛을 내지만 특성에 따라서 특정 파장 영역에서의 활동이 활발하다. 천체의 다양한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자면 각 파장 영역의 빛을 관측할 수 있는 관측기기가 필요하다. 가시광선 영역을 관측하려면 그 영역의 빛을 모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광학망원경이다. 천체로부터 오는 적외선 영역의 빛을 감지하려면 그 영역에 민감한 관측기기가 필요하다. 적외선 망원경이 그것이다. 전파망원경은 천체로부터 오는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장비다. 이렇게 여러 파장 영역의 빛을 모으고 분석하는 것이 천문학 관측의 핵심이다. 따라서 천문학에서 개발한 관측기기가 대상을 달리해서 응용되고 적용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이 문서에 정리해 놓은 것처럼 정밀한 전자기파 포착이 목적인 산업에 천문학에서 개발된 기술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천문학은 아주 미약한 빛의 신호를 받아서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민감한 기기가 요구된다. 빛을 관측한 후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로 만드는 작업도 천문학에서는 일상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 프로세싱 같은 작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X선 영상 촬영과 분석 기기 같은 것도 거의 대부분 천체 관측 기술로부터 온 것이다. 천문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해서 유방암과 피부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는 논문 발표가 있었지만 사실 X선으로 유방의 구조를 스캔해서 암을 진단하는 기술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국제천문연맹이 2019년 4월 발행한 ‘From Medicine to Wi-Fi: Technical Applications of Astronomy to Society’라는 문서가 있다(https://www.iau.org/static/archives/announcements/pdf/ann19022a.pdf?fbclid=IwAR164CydhCuf4LnPqt9zq-913nCyBdJ2dsbAm_XNSmmJecOvb7Gus5IhYvk).

이 문서에서도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기술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 제일 처음 의학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서술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천체라고 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거시적인 대상의 내부를 관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은 곧 인체의 내부를 겉에서 손상시키지 않고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번에 발표된 기법처럼 얼마간의 실험을 거치면 직접 의료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게 많다. 이 문서는 금성의 대기 연구로부터 지구온난화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금성 대기 연구로부터 시작된 온실효과 연구가 이제는 지구상의 가장 중요한 기후변화 문제로 확장되었다. 천문학은 그런 인식을 갖게 한 중심에 있다. 엄청난 천체 관측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습득된 데이터 처리 기술은 일상의 많은 데이터 처리 기술의 원천이 되었다. GPS 위성의 발전은 정확한 시간과 위치를 기반으로 한 산업의 시대를 열었다. 고화질 영상 시대를 연 것에도 천문학의 이미지 포착과 그 분석 과정에서 얻은 기술의 기여가 컸다. 전파천문학의 발전은 인터넷 시대에 전파 간섭을 효율적으로 차단하면서 질이 높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우리들의 일상의 삶과는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순수 기초과학인 천문학의 관측기기 발달이 어느덧 거의 모든 현대인들의 삶과 얽혀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천문학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따질 때 관측 기술 발달의 영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천문학에서 파생된 기술이 사회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연구를 하다보니 이런 기여를 하게 된 것이다. 천문학은 인간과 우주의 근원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학문이다. 일상 속 바쁜 삶을 살아가다가 문득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때 그에 대한 당대의 과학적 답을 전해주는 것이 천문학이다. 점점 더 천문학적 연구가 사회적으로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심화되고 있지만 사실 이 자체만으로도 천문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에서 후한 점수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의 문서에 적시된 것처럼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 같은 것에 대한 연구가 어느 날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지 또 누가 알겠는가.

▶필자 이명현

경향신문

초등학생 때부터 천문 잡지 애독자였고, 고등학교 때 유리알을 갈아서 직접 망원경을 만들었다.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 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외계 지성체를 탐색하는 세티(SETI)연구소 한국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스페이스> <빅 히스토리 1>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 | 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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