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군 비판에는 군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존중마저 결여돼 있다. 9·19 군사합의를 공격하던 차에 북한 어선 사태까지 터지자 두 사안을 엮어서 기다렸다는 듯 무차별 공세를 펴고 있다. 오랫동안 운용돼온 군의 경계근무 실태 등 안보 현실은 깡그리 무시한 채 오로지 문재인 정부 비판을 위한 도구로 군을 활용하고 있다. 한국당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결의안을 걸어 추경을 막고 있지만, 이 정도 사안으로 국방장관을 해임한 사례는 없다. 한국당은 과거 집권 시 천안함 폭침과 목함지뢰 도발은 물론 일명 ‘노크 귀순’ 때 자신들이 어떻게 했는지는 애써 무시하고 있다. 황교안 대표가 지난 5월 전방부대를 방문해 군인들에게 “군은 정부와 입장이 달라야 한다”고 말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주적’이라는 인식을 빼면 한국당이 스스로 안보정당이라고 일컬을 만한 근거는 이제 없다. 가관인 것은 군 출신 인사들이 이런 공세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량한 지식을 활용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얄밉게 군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군을 지휘하던 시절에는 더 많은 은폐와 조작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안다.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는 여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군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과도하게 이를 부각해 군의 입지를 흔들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옛 국군기무사의 계엄 문건에 대한 대응이 과도했다는 점은 관련 수사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데서도 확인되고 있다. 국방개혁에서도 미래 지향적인 안목을 보여주지 못한 채 병사들의 복지 등 인기에 치중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보수야당의 대척점에 서는 이념성 강한 정책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군을 필요 이상으로 두들긴 후과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이달 초 동해에서 북방한계선을 넘어오는 새떼를 북한 비행기로 의심해 쫓더니, 그제는 서해에서 북한 잠수함을 본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5시간 동안 수색하는 소동을 벌였다. 이제 군 지휘관들이 할 일은 불 보듯 뻔하다. 담당 작전 구역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는 데 부대의 역량을 결집할 것이다. 사소한 빈틈도 보이지 않아야 진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이 자초한 일이라거나 군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한 진통이라고 할지 몰라도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손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관계와 더불어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 군사 정세가 크게 변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군을 잠재적 적국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정황들이 나오고 있다. 주변국과 전쟁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북한 어선 한 척에 온 나라가 매달릴 때가 아니다. 군은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집단이고, 그 군의 임무를 선택하는 것은 시민이다. 군은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서 자신들이 어떤 임무를 우선 수행해야 할지를 국민에게 묻고 있다. 북한의 도발에도 대응하고, 대양에서 국익도 보호하고, 그러면서 북한 어선의 침투까지 물 샐 틈 없이 다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민을 대표하는 정치권이 군의 임무를 정해줘야 하는데 “모든 것을, 그냥 무조건 다 잘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또 그걸 못하면 회초리 한 대로 충분한데 몽둥이로 3박4일간 두들겨 패고 있다. 이것이 지금 정치권이 하고 있는 일이다.
미국의 정보 당국자가 수년 전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는 데는 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고 한다. 최근 이 말을 전한 정치인은 “지금은 공중급유기에 F-35까지 도입했으니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위했다. 역사학자 한명기는 임진왜란·병자호란은 중종 이후 선조 때까지 근 100년간 조선의 조정이 만주와 일본 열도에서 일어난 변화, 즉 동북아 정세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한다. 정치권이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가 기울고 백성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난리가 터진 뒤에 선조가 잘못했느니, 율곡의 10만 양병설이 어떠니 갑론을박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집안에서 학대받은 자식이 집안의 안위를 위해 몸을 던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군을 마냥 두들길 때가 아니다. 정치권이 유념해야 할 일이다.
이중근 논설위원
▶ 최신 뉴스 ▶ 두고 두고 읽는 뉴스 ▶ 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