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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외환보유액,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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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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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경제학 시즌2-9] 최근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들이 매입한 우리나라 국채 규모는 대략 100조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국인들이 보유한 우리 국고채의 절반 이상은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투자한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적인 무역 마찰과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우리 정부가 발행한 채권이 안전자산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분명히 반가운 소식이다. 더욱이 1997년 헤지펀드를 비롯한 해외 투자자들이 아시아 경제의 건전성을 의심하고 자금을 긴급히 회수하는 바람에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경험했던 우리 입장에서는 격세지감까지 느낄 만한 뉴스이다.

이처럼 20여 년 전과는 정반대로 주요 중앙은행들까지 한국의 국고채를 안전자산 포트폴리오에 포함하게 된 배경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채권을 발행하는 주체인 정부 재정의 안전성을 평가할 때는 여러 변수가 고려된다. 투자 대상국의 실물 경제가 얼마나 믿을만 한지 판단하려면 정부의 재정건전성, 경상수지, 경제성장률 등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 가운데 채권을 발행하는 정부의 채무 상환 능력을 평가할 때 빠지지 않는 살펴보는 변수가 바로 외환보유액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바닥이었던 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9억달러였다. 대략 4000억달러 수준인 지금의 100분의 1 수준이다. 외환보유액 정의는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국제수지 불균형을 보전하거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보유하고 있는 대외지급준비자산'이다. 다시 말해 수입 상품 대금 지불과 외화로 빌렸던 대규모 대출을 갚아야 할 상황들이 겹쳐 민간에서 전액을 동시에 모두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가 급락했을 때 통화당국이나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비상금이다. 즉 투자자들이 국외에 있는 기관이나 기업에 돈을 빌려주거나 물건을 판매하고 제대로 대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할 때 최후의 보루로 확인하는 지표가 바로 외환보유액이다. 외환위기 당시 동남아시아를 시작으로 아시아 실물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의심하기 시작했고, 자금을 급히 회수하기 시작했다. 만일 97년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했다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한국 경제까지 전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헤지 펀드와 같은 투기 세력들이 외환 시장에서 원화 가치를 급락시키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충분한 외환보유액은 뱅크런(Bank Run)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예금자보호제도와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다. 또 원화가치가 급락했을 때 정부가 응급처방으로 외환시장에 보유하고 있던 달러화를 매각하고 원화를 매입하면 일시적으로 원화가치가 급락하는 시장흐름을 진정시킬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당시 외환보유액이 부족해 받았던 상처로 외환보유액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형성되었고 2010년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면서 외환보유액은 꾸준히 증가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외환보유액은 '정부가 비상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외국돈이니 금고에 많이 보관할수록 좋겠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물가, 환율, 이자율 등과 같은 다른 거시 경제 지표들과 마찬가지로 외환보유액 역시 지나치게 많거나 적은 것보다는 적정한 것이 좋다. 외환보유액이 넉넉하면 우리나라의 외국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 담보 능력이 상승했으므로 대외신용도가 상승할 수 있다. 높은 국가 신용도는 정부와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는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국의 화폐가치가 외환시장에서 급락했을 때 자국의 화폐 가치를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외환보유액을 확대하려면 외국통화를 매입하는 대신 자국 통화를 추가로 유통시켜야 함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 증가한 통화량을 중앙은행이 다시 흡수하려면 통화안정증권과 같은 국채를 발행해 증권시장에서 매각해야 하는데 채권을 발행하면 그만큼 이자비용이 통화당국이 부담하게 된다. 또 수입에 비해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의 화폐는 외환 시장에서 수요가 증가한 만큼 화폐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다른 외부 요인이 없다면 경상 흑자가 지속되면 원화가치가 상승해 명목환율이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게 된다. 이렇게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 상품의 가격이 상승해 경상수지는 자연스럽게 균형으로 맞춰진다. 그런데 통화당국이 외환보유액을 증가시키려고 달러화를 매입하면 외환시장에서는 인위적으로 달러화 수요가 늘고, 원화 공급이 증가해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원화가치 상승 압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따라서 외환을 정부가 과다하게 보유할 경우 교역 상대국으로부터 의도적으로 원화가치를 저평가한다 의심을 받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도 있다. 뿐만아니라 외환보유액은 대부분 유가증권, 현금성 자산, 금과 같이 유동성이 높은 안전 자산 형태로 보유된다. 다른 투자 안에 비해 수익률이 높지 않다. 이는 가계나 기업이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 때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것과 같이 정부도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는 과정에서는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이 지불하게 된다.

국제 통화정책과 외환 관리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기관인 IMF(국제금융기구)와 BIS(국제경제은행)에 따르면 모든 국가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 적정 기준은 마련하기 어렵다고 한다. 나라마다 외국과의 무역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특수성들 다르기 때문에 각 국의 상황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고 한다. 다만 두 기관 모두 수출액, 외화 부채, 외국인들의 투자액 등이 적정 외환보유액을 산정하는 데 공통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4000억달러이다.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는 데 연간 1%의 비용만 발생한다고 해도 40억달러, 우리 돈으로 대략 4조7000억원의 비용을 지출하는 셈이다. 이제는 외환위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외환보유액은 많을수록 좋다는 중상주의 사고방식을 넘어 적정 수준의 외환보유량에 대한 논의와 정교한 설계가 필요해졌다.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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