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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유통 빅블러] 레드오션 된 뷰티·패션, 닥치는 대로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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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회사서 에스테틱 기기·건기식 판매

패션회사지만 중국서 화장품 대박…男화장품도 판매

장기 불황에 화장품 1% 미만 성장률…패션 2년째 역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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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미래학자인 스탠 데이비스는 1999년 '블러 : 연결 경제에서의 변화의 속도'라는 저서에서 '블러(blur)'라는 단어를 혁신적 변화에 따라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의미로 썼다. 그로부터 20년 뒤 인터넷의 발달로 일상생활에서 온오프라인이 통합되자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하는 '빅 블러(Big Blur)'가 생존을 위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빅블러는 '생산자-소비자, 소기업-대기업, 온오프라인, 제품 서비스간 경계융화를 중심으로 산업·업종간 경계가 급속하게 사라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2013년 ‘당신이 알던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조용호 저)’에서 최초로 제시됐다. 아시아경제는 깊어지는 불황의 그늘 속에 생존을 위해 경계를 허물고 영역 파괴에 나선 유통업계의 변신에 대해 총 5회의 시리즈를 통해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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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차민영 기자] '위기가 기회다' 장기 불황이 국내 생활소비재 시장을 잠식하면서 패션ㆍ화장품 기업들이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리스크 줄이기에 골몰하고 있다. 프로젝트성 컬래버레이션만으로는 근본적 문제를 타개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기업들로 하여금 자발적 강수를 두게 만드는 것으로 풀이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ㆍ주문자위탁생산(OEM) 전문기업인 한국콜마는 다음달 에스테틱 디바이스 출시를 앞두고 있다. 작년 말부터 리프팅ㆍ타이트닝 기기 개발 전문업체인 메딕콘과 협업하며 국내 성형외과 및 피부과를 대상으로 기업대기업(B2B) 영업망을 확대 중이다. 콜마가 축적해 온 화장품 제조 기술력이 에스테틱 기기와 맞물려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제와 비누 제품 등을 토대로 종합생활용품 업체로 출발했던 애경산업도 생활뷰티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일명 '견미리 화장품'으로 홈쇼핑 채널에서 대박을 터뜨린 '에이지투웨니스'의 성공에 힘입어 서브 브랜드인 '루나'를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화장품 사업 매출비중도 2016년 26%에서 2018년 51%로 늘었다. 국내 최대 화장품기업 아모레퍼시픽도 건강기능식품과 이너뷰티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메디컬 뷰티 자회사인 에스트라는 건강기능식품 라인을, 바이탈뷰티는 이너뷰티 사업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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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산업 루나 '코어 핏 파운데이션 썸머 에디션'


패션기업들의 화장품 사업 진출은 더욱 활발하다. 지난해 6월 이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해빙 무드가 확산하고 있는 데다, ODM 산업 발달로 진입장벽도 낮기 때문. 브랜딩과 콘셉트 마케팅에 특화된 패션기업에는 더욱 유리한 측면도 있다. 특히 동대문표 패션기업 '스타일난다'로 출발해 자체 화장품 브랜드 '3CE'를 만들어 글로벌 화장품 회사 로레알에 6000억원에 매각한 김소희 전 대표의 사례는 업계 귀감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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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인터내셔날 비디비치 '스킨일루미네이션'


대형 패션기업 중에서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이 화장품 기업으로 카테고리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해외 패션 브랜드 수입ㆍ유통 전문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12년 적자였던 비디비치를 인수하는 모험 끝에 6년여만에 브랜드 리빌딩에 성공했다. 이에 화장품 부문의 영업이익 비중도 올 1분기 기준 81.3%에 달해 패션ㆍ라이프스타일(18.7%)을 압도했다. 현재는 한방화장품 '연작'에서 제2 성공을 타진 중이다.

패션 사업에 집중했던 LF는 종합 생활문화 기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력 브랜드인 '헤지스'에 뿌리를 둔 남성 전용 화장품 '헤지스 룰 429'도 작년 9월 브랜드 론칭 후 월별 두자릿수 매출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백화점 계열 한섬도 3월 주총 때 사업목적에 화장품을 추가하며 신호탄을 쐈다. 캐시미어 전문 브랜드인 '더캐시미어'에서 립밤과 핸드크림을 판매하던 차원에서 벗어나 화장품군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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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F_헤지스 맨 룰429 제품들


이 같은 다양한 변화 시도는 근본적으로 경기불황에 레드오션 문제가 주효하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8년 화장품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 0.91%에 그쳐 글로벌 성장률(6%)에 비해 한참 부진했다. 패션시장은 정체가 더 뚜렷하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2018년 국내 패션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0.2% 줄어든 42조원대에 머무른 것으로 추정했다. 2017년에 이어 2년 연속 후퇴한 것. 인구밀도와 관련이 깊은 생활소비재 시장 특성상 내수 시장에서 혁신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든 것으로 관측된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패션과 뷰티는 뗄 수 없는 분야로 주 소비자층이 겹쳐 사업 진출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기존 패션 사업으로 확보해 놓은 유통망을 통해 간접 진출도 가능해 초기 투자 부담이나 위험이 적다"면서 "뷰티는 패션보다 매출 대비 이익 기여도가 높고 해외 진출도 용이해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말했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회사 입장에서는 요즘 같은 경기불황에서 인적ㆍ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고 포트폴리오 다각화는 좋은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최근 소비 트렌드도 상품 구매 목적보다 기업의 라이프스타일, 즉 문화 자체를 소비하는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의류나 화장품, 생활용품 등 업종별 경계는 되려 희미해지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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