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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정가 인사이드] "강아지 사료 챙겨라"...의원실은 괴롭힘 방지법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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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냄새 안 나는 전자담배는 피워도 괜찮지?”

직장인 A씨의 상사 B씨는 매일 회의실에서 전자담배를 피운다. 전자담배는 냄새가 안 나니 괜찮다는 논리다. A씨는 솔직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대신 B씨에게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B씨는 과연 상사에게 “싫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지 말이다.

소위 갑질로 불리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뿌리 뽑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16일 시행됐자. 하지만 취재 결과, 정작 이 법을 마련한 국회는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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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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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사례는 국회 직원들의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지난 5일 게재됐다.

‘강아지 사료를 챙겨달라’, ‘아침 식사를 차려달라’, ‘속옷을 챙겨달라’, ‘택배를 수령해와라’ 등 온갖 의원들의 갑질 행태를 성토하는 다른 사례들도 대나무숲에 심심치 않게 올라와 있다. 업무와 관련 없는 허드렛일을 반복하는데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직원들에게 화풀이용 지시를 일삼기로 유명한 의원실도 있다.

최근 국회 주요 당직을 놓고 같은 당 의원과 치열한 자리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의원실이다. 익명의 제보자는 “해당 의원은 문자메시지 대화 기록을 출력하라는 지시를 곧잘 내린다”며 “모두 출력하면 수백장에 달하는데 정작 의원은 이를 확인하지도 않는다. 화풀이용으로 시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 사례 모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위반했을 소지가 다분하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근로계약서상 명시되지 않은 허드렛일 ▲사적 심부름 등 개인적인 일상생활과 관련된 일을 하도록 반복 지시 등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 매뉴얼엔 이외에도 ▲음주·흡연·회식 참여 강요 ▲근로계약서에 등에 명시돼 있지 않은 힘든 업무 반복 지시 ▲개인사 뒷담화 ▲집단 따돌림 ▲욕설 ▲모욕적 언행 등 16개 예시가 포함됐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공사 구분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바쁘니 이런 잡무는 너네가 한다’는 식으로 업무와 무관한 지시를 내린다”며 “수행비서나 행정비서 같은 직군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위법성 판단 여부와 관련, “피해자 중심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해자는 (괴롭힐 의도가)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피해자가 ‘괴롭다’고 생각해 불편함을 토로할 수 있고, 이 같은 행위가 한 번이 아닌 여러차례 반복된다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위반) 해당된다.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는지 여부와 관계없다”고 봤다. 앞서 언급된 사례 모두 ‘괴롭힘’ 유형에 해당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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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대한항공직원연대가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젊음의 거리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 퇴진을 촉구하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2018.06.21 leeh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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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상시 근로자 5명 이상이 근무하는 사업체에 모두 적용된다. 사실상 사업체 대부분이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국회의원실도 예외는 아니다. 박 위원은 “근로계약서만 작성한다면 5명 이상 일하는 의원실도 (법 적용대상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다수다.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다는데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괴롭힘으로 느낄 만한 갑질을 당하더라도 신고할 곳도, 해결할 방법도 없다”며 “견디기 힘든 직원이 나가는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는 탓이 크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사용자는 새로 바뀐 법에 따라 피해자에 근무지 변경, 유급 휴가, 전환배치 조치 등을 취해야 한다. 다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이 관계자는 “겨우 대여섯명 규모로 일하는 의원실에선 근무지 변경, 전환배치 같은 조치는 언감생심”이라며 상사의 갑질을 감내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아가 “설사 가해자 처벌 규정이 만들어져도 상하관계 중심의 수직적 구조인 이곳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곳에서 계속 일하려면 개인 평판을 신경써야 하는데 (신고도 어렵다)”는 회의적 반응도 보였다. 그는 이어 “법이 만들어진 입법기관에서 이런 모순적 상황이 벌어지는데 회의감도 든다”고 덧붙였다.

chojw@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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