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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제주판 살인의 추억' 피고인은 왜 무죄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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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기자의 사후담] 보육교사 살인사건

10년 만에 재판 열렸지만…1심 법원 무죄 선고

CCTV 영상, 미세섬유 등 증거 대부분 인정 안해

'절치부심' 검경 곧바로 항소…"사건 해결 의지"

제주CBS 고상현 기자

노컷뉴스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고인. (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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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시사매거진 제주-고 기자의 사후담>
■ 채널 : 표준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17:05~18:00)
■ 방송일시 : 2019년 7월 17일(수) 오후 5시 5분
■ 진행자 : 류도성 아나운서
■ 대담자 : 제주CBS 고상현 기자

◇ 류도성> 제주지역의 사건사고 뒷이야기를 들여다보고, 행정 당국의 후속 대책을 점검하는 '고 기자의 사후담'. 오늘은 어떤 주제를 들고 오셨나요.

◆ 고상현> 지난주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 사건이죠. 제주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리는 제주의 대표적인 장기미제사건인 보육교사 살인사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류도성> 법원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 대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왜 그런지 궁금한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 고상현> 네. 어제(16일) 검찰이 항소했습니다. 앞으로 2심 재판에서도 증거 부분과 관련해 쟁점이 될 거 같아서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 류도성> 일단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청취자 분들을 위해서 사건 내용부터 설명해주시죠.

◆ 고상현> 피고인 50살 박 모 씨는 10년 전인 2009년 2월 1일 새벽 자신이 몰던 택시에 탄 보육교사 A 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제주시 애월읍 고내오름 인근 농업용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 류도성> 박 씨는 당시에도 유력 용의자였죠?

◆ 고상현> 네. 하지만 DNA 등 직접 증거가 없어 풀려났습니다. 사건은 장기미제로 남았다가 2016년 2월 수사가 재개됐습니다. 증거를 보강한 수사 당국은 박 씨를 지난해 12월 구속했고, 올해 1월 강간 등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깁니다.

◇ 류도성> 그런데 1심 재판부죠.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에선 무죄를 판결했습니다.

◆ 고상현> 네. 법원이 검찰이 제시한 증거물이 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증거물은 CCTV 영상, 미세섬유가 대표적인데 증명력이 떨어진다고 봤습니다.

◇ 류도성> 하나씩 짚어보죠. CCTV 영상 증거는 무엇이죠?

◆ 고상현> 피고인의 택시로 보이는 하얀색 소나타 차량이 녹화된 CCTV 영상입니다. 범행 경로를 따라 주요 지점 네 곳에서 촬영된 건데요. 검찰이 피해자가 사건 직전 피고인의 택시에 탔다고 보는 증거입니다.

◇ 류도성> 그런데 법원은 증명력이 떨어진다고 봤다고요?

◆ 고상현> 10년 전에 촬영된 영상이라 해상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영상과 분석 결과만으로 영상 속 차량이 피고인의 택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 류도성> 그렇군요. 미세섬유 증거는 무엇이죠?

◆ 고상현> 검찰이 피해자와 피고인 간 상호 접촉이 이뤄졌다고 보는 증거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의류 섬유인데요. 보통 몸싸움 등 격렬한 신체 접촉이 있어야만 떨어집니다.

◇ 류도성> 수사 당국이 미세섬유는 어디에서 확보했나요?

◆ 고상현> 택시 안과 피고인이 착용했던 옷에서 피해자가 입었던 옷과 유사한 미세섬유가 발견됐고, 피해자의 가방과 치마, 신체에서도 피고인이 입었던 옷과 유사한 미세섬유가 발견됐습니다.

◇ 류도성> 이 증거가 혐의 입증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 고상현> 이 증거가 지난해 12월 21일 피고인이 구속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증거인데요. 미세섬유의 종류나 발견된 장소가 여러 곳 아닙니까? 그만큼 피고인과 피해자 간 상호 접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겁니다.

◇ 류도성> 이 증거도 1심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 고상현> 네. 피해자의 신체에서 피고인의 옷 섬유와 유사한 진청색 면섬유가 검출됐는데, 대량으로 생산되는 진청색 면섬유의 특성상 피고인의 옷 섬유와 동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택시에서 검출된 피해자의 무스탕 털도 무스탕 제조 과정에서 동시에 여러 종류의 동물털이 사용되는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와 접촉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 류도성> 재판부가 검찰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무죄를 선고했군요.

◆ 고상현> 네. 검찰이 혐의를 적용한 게 강간 등 살인인데요. 이 죄명의 형량이 무기징역이거나 살인으로 무거워서 재판부가 엄격하게 증거를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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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당시 사건 현장. (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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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도성> 선고 당시 재판정 분위기는 어땠나요.

◆ 고상현> 무죄가 나왔기 때문에 선고 직후 구속 상태였던 박 씨는 곧바로 풀려났습니다. 선고될 때 박 씨는 한숨을 크게 내뱉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 류도성> 대법원 결과까지 지켜봐야겠지만, 나중에 무죄가 확정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할 수 있겠네요.

◆ 고상현> 네. 피고인의 법률 대리인은 재판 직후 기자들과 만났는데요. 얘기를 한번 들어보시죠.

[녹취 : 법무법인 오현 최영 변호사] "무죄를 예상했다. 2009년 사건 발생 당시 증거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수사 당국이 피고인을 용의자로 한정해 다른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 문제였다.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향후 구속된 기간을 고려해 절차를 거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 류도성> 1심결과를 보면 경찰이 10년 전 사건을 다시 꺼내서 재수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노력이 있었는데, 허탈했겠습니다.

◆ 고상현> 네. 사실 DNA 등 직접 증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10년 전 사건을 재수사하는 게 경찰로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이 사건 해결을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구속까지 이끌어냈는데, 1심에서 결국 무죄가 나왔습니다.

◇ 류도성> 수사 당국이 항소했죠.

◆ 고상현> 네. 사실 경찰이나 검찰도 미세섬유나 CCTV 영상 증거를 개별적으로 봤을 땐 혐의 입증에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이 증거들이 종합됐을 때 피고인을 범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 류도성> 지금까지 고상현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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