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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자율형 사립고와 교육계

[인터뷰]“자사고 왜 지금 줄여야 하나? 10년 고착된 고교서열화 부술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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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육이 너무 수능중심에 획일적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에 자사고가 늘어난 것인데, 이 학교들이 더 수능중심을 택한 거죠. 사실 예견된 부작용이었어요.”

요즘 가장 뜨거운 교육 관련 키워드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다.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받은 전국 24개 학교 중 절반 가까운 11개가 탈락하면서 자사고의 존재 가치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재지정 평가 결과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자사고가 교육의 다양성 확대라는 목적을 이미 상실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만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역 상관없이 우수한 학생들을 받아 잘 양성해온 명문학교들의 입지를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전북 상산고가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것을 놓고서는 여당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너무 지나치다는 의견을 내놨다.

우리는 왜 지금 자사고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입학사정관제 도입부터 자사고가 대폭 확대되던 2008~2010년 사이 교육현장에서 준비 작업을 도맡아한 전경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장(하나고 교사)은 “자사고가 초기 설립 목적과는 달리 고교 서열화만 공고하게 만들었다”며 “이제는 자사고를 정리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 하나고 학내 비리를 고발했던 공익제보자이기도 하다. 전 소장과 지난 16일 만나 최근 자사고를 둘러싼 논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경향신문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하나고 교사).사진·김정근 선임기자


-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가 입학사정관을 거쳐 자사고(하나고) 개교준비위원으로 일했다. 자사고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 대학에서 국문학 박사를 하고 2002년에 서울 목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가자마자 고3 수업을 맡았는데, EBS 문제집을 가지고 수업을 해야했다. 여기는 학원이 아니라 학교인데 선생님들은 EBS 문제풀이를 열심히 해주고, 아이들은 고개숙이고 문제를 열심히 풀었다. 그렇게 7년 정도 문제집을 열심히 풀어주다가 어느 순간 회의를 느껴서 학교를 그만뒀다. 수능 위주의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학교수업이 달라질 수 없겠다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2008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서 서울 한 대학의 입학사정관실 초대 책임연구원으로 갔다.

학교현장에 있으면서 ‘평가’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됐다. 가르치는 사람(교사)이 배우는 사람 평가를 하는 게 교육의 대원칙이다. 그런데 학교현장에서 교사들이 누구보다 학생을 잘 알고 열심히 가르치는데, 평가는 갑자기 국가기관이 등장해서 획일적으로 한다. 그러니까 철학, 기술·가정, 음악같은 과목은 다 소외되고, 교실이 무너진다. 교실을 살리고 학교를 살리려면 현장 중심, 수시 중심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입학사정관실을 거쳐서 2009년에 하나고 개교준비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3월까지 하나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잠시 휴직하고 전교조에 나와있다.

- 자사고 이전에도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는 ‘자립형 사립고’가 있었고, 상산고·민족사관고도 자립형 사립고였다가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로 전환했다. 예전부터 있던 형태인데 지금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자사고가 이렇게 대폭 확대된 취지가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서인데, 10년 동안 그 취지와 맞지 않는 교육을 해온 곳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한국 고등학교 교육이 너무 획일적이고 수능 중심적이라는 비판은 계속 있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때 ‘교육의 다양성’ 확보를 이유로 자사고를 대폭 확대했다. (2010년 자립형 사립고는 7개였으나, 현재 자율형 사립고는 42개다) 자사고에 자율성을 부여하면 다양한 교육이 가능해지고 일반고까지 그 영향이 와서 선순환될 것이라는 취지였는데, 제한을 풀어주니 자사고들이 더욱 수능 중심 교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초·중·고 교육은 모두 대학입시 제도에 종속된다. 그런데 수능이 견고한 이상 아무리 자사고라고 해도 교실현장에서 EBS 문제 풀어주는 교육이 종식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2010년 자사고 확대 시부터 이같은 자사고 확대 정책이 특권학교, 귀족학교를 만들고 고등학교를 입시학원화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었다.

- 우수한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모아놓은 자사고는 ‘수월성 교육’(학생수준에 따라 교육과정을 달리 해 학생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키는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 수월성 교육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자사고 형태와 개수는 수월성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교서열화만 공고하게 만들 뿐이다. 현재 한국의 고교서열화는 부모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심각하다. 전국 8개 영재학교-20여개 과학고-외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전국 단위 자사고-광역 단위 자사고-일반 단위 자사고 순으로 서열화가 무척 견고하다. 영재학교, 외고 등을 다니는 상층부 학생들이 고스란히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다.

- 그게 왜 나쁘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 예전에는 대입에서 인생이 결정됐다면, 이제는 고입에서 인생이 결정되도록 상황이 변한 것이다. 중학교 때 공부했던 성적으로 평생의 자존감이 영향받고, 좋은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면 자기 뜻대로 다시 희망을 펼치면서 ‘재기’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거의 ‘신분제’에 가까운 서열화다. 고교서열화는 배움의 단계에 있는 청소년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이 만든 것인데, 고통받는 것은 학생들이다. 일반고에 간 학생들의 자존감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말도 못할 정도다. 사회에 나가보기도 전에 계층화된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교육 문제도 너무 심각하다. 영재고, 과학고에 가려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2~3학년 때 중학교 교육과정을 다 마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탄압 수준의 가혹한 생활을 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이런 교육을 어떻게 ‘수월성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구분짓기다.

- 고교서열화가 없는 고등학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 대학 입학사정관실에서 일하면서 하버드, 예일 등 미국 유수 대학에 가서 어떻게 학생을 선발하는지를 봤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양성’이다. 인종, 계층, 종교 등 여러 가지 기준에 따른 비율을 정해놓고 어느 한 부분에서 너무 많은 학생이 들어오지 않도록 살핀다. 우리 일행 중에 한 명이 “그럼 한 국가에서 성적이 매우 뛰어난 학생들이 대거 지원해도 다 합격시키지 않고 떨어뜨린다는 말이냐”고 학생 선발 담당자에게 물어봤는데, 단호하게 답을 내놓더라. “SAT(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가 만점에 가까운 학생들일지라도 구성원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떨어뜨릴 수 있다. 다양성이 성적보다 중요하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공부해야만 우리 학생들이 졸업 후 실제 세계로 나갔을 때 더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우리는 성적이라는 기준만 절대적으로 중시해왔는데, 앞으로의 학생선발은 그렇게 가서는 안 된다. 하나의 공동체인 교실공간을 어떻게 구성했야만 아이들의 성장의 폭이 커지고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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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7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사고 지정취소에 따른 일반고 종합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개교 당시에는 ‘특혜 학교’라고 비판받았던 하나고가 지금은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 ‘감사·특별장학’ 관련 항목에서 12점 감점을 당했음에도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통과했을 정도다. 하나고의 사례로 자사고가 가야할 방향을 설명할 수 있을까.

= 하나고 개교준비를 할 때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교육과정의 가장 중심에 뒀다. 수능 공부를 아예 안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문제풀이식 수업만은 지양할 것, 학생 한 명당 음악·미술, 체육 분야에서 2가지씩 특기를 가지는 1인2기 교육을 할 것 등이다. 처음에는 우리끼리 ‘3차 대전’이라고 부를 정도로 학부모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지만, 계속 밀고 나갔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완전히 자리잡았다. 토론하고 글쓰는 수업이 다른 고등학교에 비해 훨씬 많고, 학생들이 매일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운동장에서 뛰거나 악기를 다룬다.

하나고는 사회적배려대상자(사배자)를 뽑는 사회통합전형으로도 정원의 20%를 선발한다. 이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재단과 서울시에서 장학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지원자가 많아서 정원의 20%를 채울 수 있다. 사회통합, 공동체 정신에 걸맞는 학생 선발이다.

다만 하나고를 모든 학교가 따라야할 모범답안처럼 얘기할 수는 없다. 하나고는 ‘특혜 학교’로 출발했다는 비판을 초기에 받았기 때문에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운영에 개입을 많이 해서 ‘공영형 사립학교’처럼 운영됐다. 강남·서초·송파구 학생을 신입생의 20% 이하로 제한해서 선발하고, 사회통합전형을 정원 20% 유지해온 것도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 이번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가장 논쟁적으로 거론되는 학교는 상산고다. 자사고 지정 취소를 하면 지역의 ‘명문고’가 없어진다는 날선 시각도 많다.

= 상산고는 의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로 유명했다. 의대·약대·치대 진학에 맞게끔 교육과정을 적합하게 교육과정을 짜고 3년 동안 철저히 가르쳐서 이뤄낸 성과다.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자사고의 설립 취지에는 부합하지 않는 학교인 것이다. 상산고 졸업생들은 졸업 후 수도권 명문대에 가거나, 전북 지역 의대를 졸업하고나서도 수도권으로 간다. 지역 사회 기여라는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상산고 문제에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많이 가지는 이유는, 상산고를 자사고로 인정하느냐 아니느냐가 고교서열화 전반에 대한 기조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첨예한 욕망이 대립하는 지점에 상산고가 있다.

- 자사고에서 실현되지 못한 ‘교육의 다양성’ 가치는 일반고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자사고를 줄였으니, 일반고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이야기해야할 시점이다.

= 일반고 수준을 상향평준화로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는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자사고에 주어졌던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을 일반고에도 허락하고,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교학점제와 그에 발맞춘 교육과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제조건 없이 자율권을 부여하면 학교 현장이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수능과 내신을 지금처럼 상대평가로 하지 말고, 절대평가로 전환해야만 한다.

또 하나는 고교학점제를 기반으로 수업을 늘리고 학생 선택권을 늘리려면 교사의 업무경감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지금과 같이 행정업무와 수업과 상담과 학생지도를 교사가 다 하면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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