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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전문의 “故 정두언 전 의원, 높은 자의식에 당일까지도 방송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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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17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정 전 의원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 논객으로 활발히 방송 활동을 해온 故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6일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강한 자의식도 있을 것이란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우울증 치료 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배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했을 듯”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17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극단적 선택 전엔 대부분 징후가 있다”며 정 전 의원 같은 경우 과거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경험이 가장 강력한 사전징후라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은 과거 여러 방송과 인터뷰에서 공무원 퇴직금을 모두 털어 16대 총선을 치렀지만 낙선 후 우울증에 걸려 나쁜 마음까지 먹었었고 4선에 실패했을 땐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건진 경험을 전한 바 있다.

손 전문의는 고인이 과거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우울증도 잘 치료받으면 충분히 완치가 가능하고, 관리가 가능한 질병”이라며 “(정 전 의원이) 심리상담을 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배웠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본인의 우울증 치료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꺼렸을 수 있다. 굉장히 자존심이 센 분들은 ‘이건 내가 스스로 극복해야지, 내가 해결해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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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전 의원이 지난 2010년 2월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신임당직자 조찬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행정고시 출신 등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고 나름 소신있는 의정활동을 펼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후 정치 평론가로 맹활약한 정 전 의원이 높은 자의식 때문에 다른 이로부터 도움받기를 꺼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손 전문의는 “우울증은 사실 약물치료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우울증을 의지로 극복하면 좋겠지만, 사실은 그게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의학적 질병으로 분류가 되어서 정신과 전문의가 처방하게끔 되어 있다”며 “정 전 의원이 그런 치료를 얼마나 잘 충실히 받으셨는지, 그런 부분이 조금 의아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자아강도 높으면 주변 도움받기 꺼리는 성격”

정 전 의원이 사망 당일 아침까지도 한 시사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에 대해 손 전문의는 “(고인의) 자아의 힘, 심리적인 힘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부분”이라며 “사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분들은 대개 정리를 하면서 며칠 동안은 준비한다. 그런데 이분은 바로 몇 시간 전까지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나름대로 ‘내가 갈 때 가더라도 뭔가를 좀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식의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런 면에서 자아강도가 한편으로는 굉장히 높았던 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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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0월 당시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장인 정 전 의원이 `한국의 보수 비탈에 서다'' 출판기념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정 전 의원은 굉장히 정치적 이상향을 그렸던 것 같다. 그런데 현직은 지금 정치인이 아니고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아마 본인의 어떤 한계에 부딪히고 스스로 계속적인 좌절감을 맛보지 않았을까”라며 “그런 부분이 상당 부분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이어 “주변에 털어놓고 도움을 처하는 것도 용기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굉장히 똑똑하신 분들은 그런 것들을 잘 오히려 못하는 것 같다”며 “자존심이 세니까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영향을 주는 것만 생각하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영향력 받는 것을 조금 부끄러워한다. 혹시 주변에 그런 분들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내 가까운 친구, 이웃, 가족에게 털어놓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 부검 실시하지 않기로

한편 경찰은 17일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은 점과 유족의 뜻을 존중했다”며 부검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날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와 현장감식 및 검시, 유족 진술 등을 종합해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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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경찰이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정 전 의원은 전날 오후 4시22분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북한산 자락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이날 오후 2시30분쯤 서울 북한산 자락길 인근에서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차에서 내린 뒤 산 쪽으로 올라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의원 부인은 오후 3시58분쯤 남편이 자택에 유서를 써놓고 서울 홍은동 실락공원 인근으로 나갔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드론과 구조견을 투입해 실락공원 인근을 수색했고, 정 전 의원의 휴대전화 위치값을 추적해 정 전 의원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 전 의원 자택에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족 뜻에 따라 유서의 나머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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