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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중동에서 빙하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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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위에 지어진 도시에 물이 이렇게 흔하다니

'아랍에미리트' 하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이 160층짜리 초고층 건물 '부르즈 칼리파'를 생각하실 겁니다. 이 건물은 특히 바로 옆에 있는 '두바이 분수'와 짝을 이뤄 분수와 건물 조명, 음악을 이용한 쇼를 선보이는 두바이의 대표적 관광명소입니다. 그런데 이 분수쇼를 보다 보면, 이 물이 바닷물이 아니라 민물인 것 같은데, 어디서 끌어오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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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즈 칼리파와 두바이 분수쇼 출처 : 두바이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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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뿐만이 아닙니다. 아랍에미리트 대도시의 아파트나 커뮤니티는 대부분 수영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운 나라니까 물을 데울 필요는 없어서 온도 조절에 필요한 유지비는 적게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수질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물을 갈아줘야 할 텐데, 필요한 물의 양이 적지 않을 겁니다. 여기에다 시내 곳곳 있는 가로수와 관목들도 '물 먹는 하마'나 마찬가집니다. 비가 자주 오지 않으니 가로수마다, 화단마다 물을 공급하는 플라스틱 파이프들이 설치돼 있습니다.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가 물을 이렇게 자유롭게 쓰다니, 새삼 놀라게 됩니다. 물론 아랍에미리트에도 130개 정도의 댐과 저수지가 있습니다. 특히 오만과 가까운 동부지역은 바위로 된 산악지대여서 비가 오면 물이 고이기 때문에 댐들이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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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동부 지역에 있는 하타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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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 담수화로 물 소비량의 42%를 공급하지만…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겠죠. 그래서 아랍에미리트는 바닷물에서 소금기를 빼내서 민물로 만드는 '해수 담수화' 방식을 많이 사용합니다. 화석연료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폐열이 있는데, 이 열로 물을 증발시키기도 하고, 역삼투압 필터링 방식 등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아랍에미리트에 이런 담수화 시설이 70곳이 있는데, 전체 물 소비량의 42%를 이런 담수화를 통해 공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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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의 발전 담수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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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담수화 과정에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소금기와 여러 불순물을 걸러 낸 뒤에는 이 물질들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담수화 시설 인근에 있는 바다의 염분 농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심하면 수중생물이 살 수 없을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물 공급량을 늘리려면 담수화 시설을 추가로 지어야 하는데 이 비용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남극에서 빙하를 끌고 오겠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남극의 빙하를 아랍에미리트까지 끌고 와서 필요한 민물을 얻자는 겁니다. 아랍에미리트의 사업가 압둘라 알셰히라는 인물이 이런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황당무계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 사업가가 영국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15년 동안 자국의 가스산업 분야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니 나름 엔지니어링의 전문가일 듯한데, 정말로 실현 가능한 계획인지 호기심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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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사업가 압둘라 알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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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계획은 이렇습니다. 일단 위성으로 쓸만한 빙하를 물색한 다음에, 특수 제작된 금속 벨트로 이 빙하를 둘러싸 배로 끌고 온다는 겁니다. 오는 동안 다 녹아버리지 않겠느냐고요? 이 사업가에 따르면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듯, 빙하 대부분은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가 있는데, 이 부분의 수온은 그리 높지 않아서 녹는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다는 겁니다. 남극에서 아랍에미리트까지 끌고 오는 동안 30% 정도만 녹거나 증발할 것이라는 게 이 사업가의 계산입니다. 또 비교적 덥지 않은 겨울철에 빙하를 끌고 온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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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량도 늘리고 관광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는데…

게다가 이렇게 빙하를 끌고 오면 부수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빙하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구름을 만들어 사막에 비를 뿌릴 수도 있고, 중동 앞바다에 떠 있는 빙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관광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게 이 사업가의 구상입니다. 사막의 나라에 실내 스키장을 만든 나라니까 무슨 생각인들 못 하겠습니까?

돈은 얼마나 들어갈까요? 이 사업가의 계산으로는 1억에서 1억 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는 약 1,170억 원에서 1,765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물의 양은 100만 명이 5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데, 새로 담수화 시설을 짓는 것보다는 돈이 적게 든다는 게 이 사업가의 주장입니다. 이 사업가는 일단 올해 후반기에 남극에서 남아프리카나 호주까지 빙하를 끌어오는 사전 실험을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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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운반 구상도 출처:걸프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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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구상이 처음 나온 건 아닙니다. 이미 1975년에 프랑스의 과학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런 제안을 했는데, 당시에는 기술 부족으로 2년 만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40년 넘게 기술이 발전했으니 지금은 가능하다는 게 압둘라 알셰히의 주장입니다.

실현 가능성보다 걱정되는 건 기상이변

정말 실현이 가능할까 의심쩍지만, 자기 돈으로 뭔가 해보겠다니 굳이 말릴 필요까지야 없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데, 몇 킬로미터 크기의 빙하를 중동까지 끌고 오는 동안 기상이변이 더 심각해지는 건 아닐까요? 예상치 못한 홍수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사업의 실현 가능성보다 더 궁금한 건 인간의 도전 정신을 자연이 어느 선까지 용인할 것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박석호 기자 (parkseokh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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