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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하다] “고교 졸업까지 끌어주겠다” 로펌 블루오션 된 학폭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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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학폭위, 이대로 괜찮은가 <하>

졸업하면 사실상 처벌 효과 없어

가해자, 낮은 징계도 대입 치명타

부모들 소송 불사 … 평균 1년 걸려

소송 과정 피해학생 2차 피해도

“경찰대 출신 변호사들이 직접 지휘하는 증거수집 전담팀!”

“초동대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포털 검색창에 ‘학교 폭력’이라고 치면 이런 문구를 내세운 로펌 수십 개가 뜬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제도가 도입된 2011년 이후 학폭은 법조계에서 새로운 하나의 시장을 형성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가해학생에 대한 징계 처분은 가장 가벼운 서면사과부터 가장 무거운 퇴학까지 9개로 나뉘는데, 서면사과 조치를 한 번만 받아도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된다. 대학 입시 전형에서 생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가해학생과 부모 입장에선 이를 뒤집기 위해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애들 싸움’에 법정 소송도 불사하는 이유다.



시간끌기용으로 전락한 불복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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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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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송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학폭위를 앞둔 고3 가해학생의 부모라고 하고 학폭 전문으로 광고 중인 로펌 세 곳에 연락해봤다. 생기부를 활용한 수시 전형으로 대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자 시간을 끌라는 일관된 조언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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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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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로펌은 “곧 방학이니 학교에는 ‘피해학생과 화해를 시도해보려 한다’고 하면서 학폭위 개최를 최대한 미뤄달라고 해보라”고 했다. “방학이 되면 학폭위원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학폭위 자체를 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수시 원서 접수가 마감되는 8월 정도까지는 징계 여부가 확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다. A로펌에 내방해 2차 상담을 원할 경우 비용은 1시간에 10만원이었다.

B로펌은 “원서 넣을 때까지 시간을 끄는 방법이 있지만 결과를 100% 장담할 수 없고 비용도 400만원 이상 든다”면서도 “행정쟁송을 하면 거의 졸업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C로펌은 말을 꺼내자마자 “최대한 시간을 끌어봐야 한다. 1차로 재심 청구, 또 행정심판 등 할 수 있는 수단을 다 동원해 졸업 이후 결과가 나올 수 있게 노력을 다 해봐야 한다”고 했다.



재심·소송 거치면서 징계 실효성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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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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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간을 끌면 징계의 실효성도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 해가 바뀌어 가해학생이 졸업하거나 대입 전형이 끝나면 이후에는 생기부에 기재되더라도 사실상 처벌 효과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가해학생이 징계를 취소해달라고 제기한 사건 116건을 분석한 결과 학폭위 처분부터 판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361.5일이었다. 가장 오래는 966일이 걸렸다. 징계가 정당한지를 놓고 법원에서 다투는 사이 학년이 바뀐 경우는 95건이었다.



결론 지체되는 사이 2차 가해 우려도

피해학생 입장에선 이런 과정 자체가 ‘2차 가해’가 되기도 한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4학년 진영(가명)이는 지난해 6월 학폭위에서 중징계인 전학 처분을 받았다. 진영이가 “빵과 요구르트를 주겠다”며 뇌병변장애 5급인 동급생 혜민(가명)이를 집으로 부른 뒤 막대기로 30대 가량을 때렸기 때문이다.

전학 징계를 받자 진영이의 부모는 곧바로 변호사 7명을 동원해 이를 취소하라고 학교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 과정에서 진영이 부모는 “진영이 역시 발달 장애를 갖고 있는데 전학은 너무 무거운 징계”라며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진단서를 제출했다. 학폭위의 전학 징계 결정이 내려진 뒤 5개월이 지나서야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였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진영이의 ADHD를 인정하면서도 “진영이는 학교 반성문에서 애초에 때릴 마음으로 혜민이를 유인했다고 진술했고, 혜민이는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 판결은 올해 1월 나왔는데, 혜민이 입장에선 7개월 동안 진영이가 학교로 되돌아올 가능성 때문에 마음을 졸인 셈이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유모 양은 지난해 2월 새벽 같은 학교 친구로부터 “SNS에 너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확인한 뒤 큰 충격에 빠졌다. 동급생 김모 양이 자신에 대해 ‘남자한테 미쳤다’ ‘망치로 뼈를 부셔버리고 싶다’ 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성적(性的) 욕설과 비난을 담은 글을 전체공개로 올렸고, 댓글도 600개 가까이 달려 있었다. 유양은 손가락질을 당할까 봐 학교에 갈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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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피해학생에게는 가해학생 측의 학폭위 결정 처분에 대한 재심 청구, 소송 제기가 2차 피해로 다가오기도 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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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때문에 열린 학폭위에서도 김양은 “나는 걔한테 진심으로 잘해줬는데 왜 학교에 안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전학 징계를 받자 이번엔 이를 취소하라고 소송을 냈다. 김양은 “미선이가 최근에 SNS에 올린 글, 사진을 보니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고, 자살충동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겪는 것 같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김양의 소송을 기각하면서 “김양이 피해자의 SNS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추적한 것은 진심으로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도 소송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탐사보도팀=유지혜·정진우·하준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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