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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영화 '알라딘'의 메시지, 오늘날이라 더 시의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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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램프가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영화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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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알라딘>(2019) 메인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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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는 영화 <알라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3일 개봉한 <알라딘>은 '도둑 알라딘이 자스민 공주를 만나 역경을 이겨낸다'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 '알라딘'의 실사판 영화로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하며 16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1024만1672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외화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일은 좀처럼 보기 힘든 만큼 <알라딘>의 어떤 색다른 매력이 한국 관객들을 감동시켰는지 그 내막을 살펴보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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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알라딘>(2019)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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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할 게 없는 사람은 그 자신이 가진 것만을 자랑한다

실사판 영화 <알라딘>(2019)은 여러모로 시의적절하게 재해석된 영화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디즈니가 설정을 적절히 바꾼 듯하다. 극 중 자스민(나오미 스콧) 캐릭터는 그 스스로 당당히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뽐내며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 여성으로 변했다.

이처럼 <알라딘>을 향한 세간의 평가는 대체로 자스민 공주에게 맞춰져 있지만, 실로 주목해야 할 것은 '알라딘'이다. 극 중 알라딘(메나 마수드)은 그 존재 자체로도 속앓이를 앓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먼저 알라딘의 직업인 '도둑'의 특성을 주목해보자. 도둑은 기본적으로 남을 속이는데 도가 터야 하는 사람이다. 타인의 물건을 감쪽같이 훔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연습이 필요한데, 그래야만 발각되지 않고 안전하게 물건을 훔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알라딘'의 삶은 '자기 자신을 지우는 데 도가 튼'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지워야 하는 사람. 그가 도둑질로 연명하면서 계속 자기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설령 도둑질로 나라를 통째로 훔친다 한들 그걸 어디서 떳떳하게 밝히겠는가(물론 그런 경우에는 이미 도둑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얄팍한 수로 사람을 마음을 훔치는 일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자기 자신을 지워가면서 얻은 마음은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밝힐 수가 없는 것이다. 자스민 공주의 마음을 훔쳤으면서도 '자기를 드러내면서' 무언가 얻어본 적이 없는 알라딘은 자기 가치를 인식하는 데 실패하고 엉뚱한데서 그 괴리를 채우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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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알라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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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자에게 램프가 불행의 씨앗 될 수도

진짜 문제는 알라딘이 그 괴리를 단박에 해결해줄 '지니'(윌 스미스)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지니는 놀라운 능력으로 알라딘에게 '겉으로는' 완벽한 왕자의 모습, 그리고 심지어 그를 수행하는 시종과 병졸들까지 만들어준다. 하지만 왕자로 살아본 일이 없는 알라딘은 수시로 어색함을 드러내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껍데기인 외연에 대해 두 가지 메시지를 얻는다. 첫째로 외연이 휘황찬란하다고 해서 그것이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같은 상황까지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둘째로 휘황찬란한 외연을 둘러쓰려면 그 외연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만한 내면의 체력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영화 후반부에 들어 알라딘은 지니를 통해 얻은 자신의 것들에 집착하는데, 무한한 탐욕을 부리는 것도 자기 자신을 지운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도둑질과 다르지 않다. 탐욕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오인하는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은 분명히 지워진다.

때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들어맞기도 하지만,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것은 '거대한 범선을 움직이기 위해 연거푸 물장구를 쳐야 하는 일'이 되고 만다. 처음엔 작은 돛단배로 그저 바다를 건너면 그만이었지만, 범선에 매인 순간 바다를 건너겠다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범선에 매달린 가련한 '인간 노'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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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알라딘>(2019)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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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긴 하지만... 탐욕의 말로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자파

끝내 욕망의 허무함을 깨달은 지니가 인간으로 되돌아가고, 무한한 탐욕에 빠져버린 자파가 인간의 형태를 잃고 '제2의 지니'가 되어버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외연은 그것을 추구하고 자신을 갈음하려 할수록 자기 자신을 지운다. 자스민 공주가 끝내 술탄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오랫동안 추구된 국가의 전통을 지우며 자신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또한 알라딘이 자스민 공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가진 것이 없어 도둑질이나 하면서도 훔친 것을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그 자신만의 따뜻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재물을 동원해도 바꿀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가치들, 예컨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땅히 선호하고 추구하는, 정의로움, 상냥함, 신의와 같은 것들은 절대 우리가 '가진 것'들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그런 요소들은 분명히 나의 행동과 말, 품행에서만 드러나기 마련이다. '정의로운 행동'은 드러날 수 있지만, '정의로운 물건'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듯이 말이다.

외연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 사회에서, 사람들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 인간성을 포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는 지금, <알라딘>이 던지는 메시지는 과연 시의적절하다. 자기 자신의 고유성과 인간성이 아닌 겉에 걸치고 있는 것들을 자랑하고 다니지는 않는가. 혹 그런 외피들이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착각하지 말라. 번지르르한 외피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오만함과 탐욕의 수치는 나타낼지언정, 진정 자기 자신을 떳떳하게 여긴다면 사람들이 기꺼이 경외심을 가질 만한 고유성,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지 되물어볼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외피가 형편없다고 해도 전혀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외연은 우리를 거쳐가는, 있다가도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정의하는 고유한 인간성을 갖고, 대체 불가능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저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이야기할 때 그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은 필요없는 당당한 인간이 되란 말이다. 자랑할 것이 없어 가진 것을 늘어놓다가 비교나 당하는 삶을 살겠는가. 아니면 비교할 필요 없는 '고유한 나'를 가진 자신을 갖겠는가.

황경민 기자(Pistol474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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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황경민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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